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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핵폐수 vs 먹방' 대신 청문회가 낫다

노동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6.26 17:57

수정 2023.06.26 17:57

[노동일 칼럼] '핵폐수 vs 먹방' 대신 청문회가 낫다
'1·6 의사당 폭동(Capitol Riot).' 2021년 1월 6일(이하 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의 미국 의회 난입사건은 미국인들에게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민주주의의 꽃인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무장폭도들이 민주주의의 상징적 장소를 유린하는 광경은 '끔찍한 악몽'이었다. 이후 구성된 의회 특별조사위원회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무장폭동 가능성을 알면서도 이를 막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1년여 동안 조사를 하고, 수차례 청문회를 개최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특히 캐시디 허친슨 전 백악관 보좌관은 지난해 6월 28일 청문회에 출석하여 중요한 증언을 했다. 허친슨은 마지막 순간 트럼프의 필사적인 행동을 묘사하며 한 사람의 미국인으로서 이는 '비(非)미국적이고 비(非)애국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증언했다.
위원회는 지난해 12월 트럼프 전 대통령을 내란선동 등의 혐의로 기소할 것을 권고하고 활동을 마감했다. 공화당 일부의 반발이 여전하지만 충격적 사건에 대해 의회 차원의 할 일을 일단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백악관 참모진의 당일 행적에 대한 정보도 청문회를 통해 공개함으로써 국민 각자의 판단 근거를 제공한 점도 의미가 있다.

지난 9일 여야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국정조사와 후쿠시마 오염수 검증을 위한 청문회 실시에 합의한 바 있다. 하지만 곧바로 이견이 노출됐다. 여당이 "선관위 국정조사는 감사원 감사 이후 실시하고, 오염수 문제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검증 결과가 나오면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청문회를 해야 한다"고 밝힌 것이다. 선관위 국정조사 문제는 일단 제쳐놓자. 후쿠시마 오염수 검증 청문회는 당장 여야가 특위 구성 등 협상에 나서야 할 사안이다. 일부이지만 소금 사재기가 횡행하고, 어민과 수산물 판매상 등에 대한 구체적 피해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IAEA 보고서와 추가 시료 분석 결과만 기다리며 세월을 보낼 때가 아니다. 이게 시급한 민생현안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야당은 부산, 인천, 강릉 등지를 돌며 연달아 장외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핵폐수'라는 말로 국민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여당은 야당에 대해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 등을 가리기 위한 괴담 유포 선동세력이라고 비난한다. 광우병, 사드 전자파에 이은 제3의 괴담이라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처리된 오염수를 마실지 말지를 놓고 말싸움만 거듭한다. 야당의 장외집회와 여당의 횟집회식, 참외 먹방이 평행선을 긋고 있다. 우리 국회와 정치의 유치한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모습이다. 여당은 야당을 장내로 끌어들여 과학적 논쟁을 벌여야 한다. 청문회가 개최되는 동안 야당이 어떤 명분으로 장외집회를 벌일 수 있겠는가. 야당은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와의 만남으로 사대주의 논란을 자초하는 등 탈국회 행보를 접어야 한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도 얼마든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논란과 진실'(백원필 등 공저)에서 저자들은 원전 사고에 관한 한 '안전과 안심'을 모두 잡아야 한다고 한다. '개인의 합리성'을 넘어 '사회적 합리성' 추구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도 중요한 대목이다.
개인이 듣고 싶은 것, 믿고 싶은 것만 취사선택하는 시대에 한자리에서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청문회는 그만큼 중요하다.

dinoh7869@fnnews.com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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