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일반

청와대 ‘비밀 정원’… 나무마다 얽힌 영욕의 세월을 듣다 [정순민의 종횡무진]

정순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7.02 20:18

수정 2023.07.02 20:18

대통령의 나무들
지난 6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진행된 '수목 탐방 프로그램: 대통령의 나무들' 사전 행사에서 '청와대의 나무들' 저자인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관저 앞에 있는 소나무 세 그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뒤쪽 두 그루는 노태우 대통령이, 앞쪽 한 그루는 노무현 대통령이 심은 소나무다. 사진=박범준 기자
지난 6월 30일 오전 청와대에서 진행된 '수목 탐방 프로그램: 대통령의 나무들' 사전 행사에서 '청와대의 나무들' 저자인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관저 앞에 있는 소나무 세 그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뒤쪽 두 그루는 노태우 대통령이, 앞쪽 한 그루는 노무현 대통령이 심은 소나무다. 사진=박범준 기자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가 활짝 열렸다. 74년만이다.
청와대의 총면적은 25만3505㎡(약 7만6685평)로 축구장 36개 넓이다. 이곳에는 총 208종 5만여 그루의 나무가 있다. 바늘잎나무(침엽수)가 31종, 나머지 177종이 조경수, 유실수 등 넓은잎나무(활엽수)다.

이중 눈여겨봐야 할 나무는 대통령들이 직접 심은 기념식수다. 청와대에는 12명의 역대 대통령 중 윤보선 대통령을 제외한 11명의 대통령이 심은 총 32건 35그루의 기념식수가 있다. 적게는 1번, 많게는 5번 기념식수를 했고, 가장 많이 심은 수종은 소나무와 무궁화다.

청와대를 관리·운영하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들 나무를 일반에 공개하는 탐방 프로그램을 1일 시작했다. '대통령의 나무들'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은 청와대 바깥쪽(헬기장)에 있는 최규하 대통령의 기념식수를 뺀 대표적인 기념식수 10그루를 선정하고, 이들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현장 해설을 하루 두 차례(오전 11시, 오후 4시) 제공한다.

탐방 프로그램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6월 30일 오전 청와대를 직접 돌아봤다. 상춘재를 출발해 백악교→관저→옛 본관터→본관→소정원→영빈관 순으로 둘러본 탐방에는 '청와대의 나무들' 저자인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가 동행했다. 박 교수는 지난 2019년 대통령경호처 의뢰로 청와대 경내의 수목을 조사했던 나무 전문가다.

문재인 대통령의 동백나무
문재인 대통령의 동백나무
전두환 대통령의 백송
전두환 대통령의 백송
이승만 대통령의 전나무
이승만 대통령의 전나무

■문재인의 동백나무와 이승만의 전나무

가장 먼저 탐방객을 맞이하는 나무는 상춘재 앞에 있는 동백나무와 백송이다. 녹지원과 이어지는 상춘재 동쪽 끝에 있는 동백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9년 식목일을 맞아 심은 나무다. "동백나무는 원래 남쪽에서 자라는 나무인데 문 대통령의 고향이 거제도이다 보니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이 나무를 심은 게 아닌가 추측된다"고 박 교수는 말했다.

그 맞은편에 있는 백송은 지난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이 심었다. 백송은 이름 그대로 하얀 껍질이 특징이다. 어릴 때 푸른빛이던 줄기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얘지지만 이상하게도 이 나무는 아직도 흰빛이 덜하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백송은 기념식수로 인기가 많아 다른 대통령들도 심었다는 기록이 일부 있지만, 현재 청와대 경내에 있는 백송은 이 나무 한 그루가 전부다.

상춘재에서 백악교를 지나 옛 본관터로 올라가는 울창한 숲길에는 하늘 높이 뻗어있는 전나무가 몇 그루가 있다. 이중 한 그루가 이승만 대통령이 지난 1960년 심은 나무로 추정된다. 박 교수는 "이승만 대통령이 1960년 3월 전나무를 기념식수 하는 사진이 남아 있는데, 당시 사진으로 볼 때 수령 10살 정도인 이 나무의 식수 위치는 청와대 상춘재 옆 계곡으로, 지금 그 자리에 70살이 조금 넘은 키 25m의 전나무가 자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소나무
노무현 대통령의 소나무
김영삼 대통령의 산딸나무
김영삼 대통령의 산딸나무
노태우 대통령의 구상나무
노태우 대통령의 구상나무

■노무현의 소나무와 김영삼의 산딸나무

지난 1990년 10월 지어진 관저 주변에도 대통령들의 성격과 취향, 관심 등을 추정해볼 수 있는 나무들이 있다. 관저 앞 회차로에는 두 대통령이 심은 소나무 세 그루가 서 있는데, 두 그루는 노태우 대통령이, 나머지 한 그루는 노무현 대통령이 심었다. 1991년 봄 관저 준공 기념으로 노태우 대통령이 소나무 세 그루를 심은 뒤 한 그루가 죽자 노무현 대통령이 2003년 취임하면서 빈자리에 연생이 비슷한 소나무를 심었다는 게 박 교수의 설명이다. 박 교수는 "전직 대통령이 심은 나무가 죽은 자리에 나무를 다시 심은 것은 파격적인 면모"라며 "보통 기념식수는 20~30년생을 심는데, 당시 조경 직원의 얘기에 따라 굵기를 맞춰 심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옛 본관터에 있는 산딸나무도 재미있는 사연을 품고 있다. 지난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이 나무는 기독교와 연관이 깊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쓰인 나무가 바로 산딸나무다. 꽃말이 '희생'인 이 나무가 '십자가 나무'라고도 불리는 이유다. 박 교수는 "김영삼 대통령이 독실한 크리스천이었기 때문에 이 나무를 기념식수로 선택하지 않았나 싶다"며 "김 대통령 외에도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직전 산딸나무를 심었다"고 말했다.

본관 앞에 우뚝 서있는 구상나무도 이야깃거리가 많다. 지난 1988년 서울올림픽 성공을 염원하며 노태우 대통령이 심은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희귀 품종으로, 학명에 한국을 뜻하는 '코레아나(Koreana)'가 들어가 있다. 노태우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이 기념식수를 했는데, 구상나무 외에도 소나무, 감나무, 주목, 은행나무 등 모두 여덟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팝나무
박근혜 대통령의 이팝나무
박정희 대통령의 향나무
박정희 대통령의 향나무
이명박 대통령의 무궁화
이명박 대통령의 무궁화
김대중 대통령의 무궁화
김대중 대통령의 무궁화

■박근혜의 이팝나무와 박정희의 향나무

이번 탐방에선 박정희, 박근혜 부녀 대통령의 나무도 한 그루씩 만날 수 있다. 본관 아래쪽 소정원에 있는 이팝나무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3년 대통령 취임 후 국회의원 시절 지역구였던 대구 달성에서 가져다 심은 나무다. 박 교수는 "이팝(이밥)나무는 흰꽃이 꼭 쌀밥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보릿고개를 극복했다는 의미로 이 나무를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16년간 청와대에서 산 박정희 대통령은 수차례 기념식수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공식적으로 확인된 기념식수는 영빈관 가는 길목에 있는 가이즈카 향나무가 유일하다. 기념식수는 통상 식목일을 전후해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나무는 1978년 12월 영빈관 준공을 기념해 언 땅을 파고 심었다. "그만큼 영빈관 준공이 보람 되고 기뻤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박 교수는 추측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무궁화를 심었다. 나라꽃인 무궁화는 기념식수 단골 수종으로, 영빈관, 본관, 소정원, 상춘재 앞 등 청와대 경내 곳곳에 있다. 청와대 삼거리 옛 궁정동 안가 터에는 아예 무궁화동산이 만들어져 있기도 하다.


그중 제일 탐스럽게 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는 영빈관으로 올라가는 서쪽 계단 앞에 있는 무궁화다. 이 무궁화는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이를 기념해 심은 것으로, 당시 무궁화 전문가로 알려진 성균관대 심경구 교수에게 가장 좋은 무궁화를 기증받아 기념식수했다.
심을 당시 18살이었던 이 나무는 올해 41살이 됐다.

jsm64@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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