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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 칼럼] 과학이 오염된 정치를 꾸짖어야

노동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7.12 18:19

수정 2023.07.12 18:19

[노동일 칼럼] 과학이 오염된 정치를 꾸짖어야
지난 6일 코리아정보리서치(KIR)는 '일본이 오염수를 방류하더라도 국산 수산물을 소비할 의향이 있는지'를 물은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먹을 의향이 있다'는 54.3%, '안 먹겠다'는 42.4%였다. 하지만 지지정당별로는 극명하게 갈렸다. 국민의힘 지지자는 88.3%가 '먹겠다'고 한 반면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는 75.8%가 먹지 않겠다고 답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논란이 과학이 아닌 정치공방의 대상이 되어 버렸음을 말해준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주장을 객관적으로 들어주는 경우가 아주 귀하다.
대개는 그 주장을 들으면서 우선 자기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를 결정하고, 거기서 출발한다. 마음이 과학과 논리를 앞선다. 마음에 들면 마음에 들게 논리를 만들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지 않게 논리를 만든다." 우리 현실에 대한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의 진단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정치가 개입하는 순간 객관적 사실은 사라지고 정파적 창작 논리만 판을 친다. 아무 근거도 없이 세계적 권위를 인정받는 옥스퍼드대 교수를 '돌팔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원자력 분야 과학자들의 분석 결과를 담은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를 '깡통보고서'라고 일축한다. IAEA는 일본의 하수인이라고도 한다. 용감한지 무모한지 어안이 벙벙하다. 일부에서는 "IAEA가 보고서 내용을 책임지지 않는다고 했다"고 주장한다. 보고서를 읽지도 않았음을 대번에 알 수 있다. '보고서에 담긴 정보는 최대한 정확성을 기했지만 보고서의 사용 결과에 대한 책임은 IAEA가 담보할 수 없다'는 영어 문장을 이해 못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보고서를 바탕으로 방류 여부를 결정할 책임은 일본 정부에 있다는 뜻이다. "정치가 모든 지적 활력을 다 빨아들인 후 소진시켜 버리는 블랙홀로 기능한다"며 "이렇게 되어 버린 내 나라가 나는 너무 슬프고 무섭다"는 최 교수의 탄식에도 동의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2020년 10월호에서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비판하고 조 바이든 후보를 지지하는 글을 실었다. 175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로서 편집자들은 기후위기 부인, 백신음모론 등 트럼프의 반과학적 행태를 이유로 들었다. '사이언스' 등 다른 과학저널들도 트럼프 비판 입장을 밝히고 나섰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전직 소장 4명은 "과학을 이렇게 정치화한 대통령은 처음"이라는 의견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를 보도한 언론은 '비판'이란 단어 대신 '맹폭하다(blast)'거나 '꾸짖다(rebuke)'라는 표현을 썼다. 트럼프의 낙선이 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과학자들이 반과학적인 정치를 바로잡는 데 일조한 것은 분명하다.

오염수 문제와 관련, 지금도 많은 과학자들이 의견을 내고 있지만 아쉽게도 '돌팔이'들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정치가 우리의 지적 활력을 소진시켜 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조금 더 목소리를 내달라고. 과학의 이름으로 오염된 정치를 꾸짖어 달라고. 사실인지보다 누구 편인지 먼저 물을 게 뻔하다. 과학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도 안다.
하지만 과학이 반과학적 정치를 조금이나마 바로잡는 선례를 남겨야 한다. 좋은 과학이 좋은 정책을 보장하지 않는다.
좋은 정치가 있어야 좋은 과학도 의미가 있는 법이다.

dinoh7869@fnnews.com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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