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노란봉투는 왜 애물이 됐나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7.12 18:19

수정 2023.07.12 18:19

[강남시선] 노란봉투는 왜 애물이 됐나
2000년대 초반까지 월급봉투는 한가닥 희망이었다. 월급봉투 속은 자기앞 수표부터 십원짜리 동전까지 실물 화폐의 종합판이었다. 얇은 봉투지만 그 자체가 행복이었다. 사회생활 초반 2~3년은 노란색 봉투(정확히는 누런색이었다)를 받았던 것 같다. 두어번 접어 양복 안주머니 깊이 넣고 조바심 내며 귀가하곤 했다.

월급을 노란봉투에 담은 유래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갑오개혁 때 녹봉제를 폐지하고 관리 월급을 화폐로 지급한 게 기원이라는 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순사 월급명세서가 황토색인 게 효시라는 설 등 다양하다. 어쨌든 땅의 기운을 담아 복을 기원하는 뜻이 담겼다고 한다.

가장의 자부심이자 가계를 책임지던 노란봉투가 애물이 됐다. 2014년 쌍용자동차 파업사태가 발단이다. 당시 파업 노동자들에게 47억원의 손해배상 판결이 나오자 한 시민이 4만7000원이 담긴 노란봉투를 언론사에 보냈다. 이 사실이 세간에 알려지자 시민사회 진영의 노란봉투 성금 물결로 번졌다.

9년이 흐른 지금 노란봉투가 돌아왔다. 그러나 희망의 상징은 더 이상 아니다. 경제계의 최대 골칫거리다. 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안의 별칭이다. 노란봉투법.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조원들이 거제도 조선소 도크를 점거했다가 470억원의 배상소송을 당하자 입법 논의가 급물살을 탔다.

개정안 2조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경우 사용자 범위에 포함했다. 2조가 시행되면 해고나 투자결정, 사업장 이전처럼 노동위원회나 사법기관에서 해결할 권리분쟁까지 합법적 파업 대상이 된다.

3조는 한술 더 뜬다. 불법파업 노동자의 가담 정도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을 기업이 일일이 나누라고 한다. 복면을 쓰거나 수백, 수천명 사이에서 적극적 가담자를 가려내는 게 과연 가능한가. 불법파업으로 공장이 멈춰도 법적 책임을 따지기 어렵다는 게 경제계 논리다.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최근 대법원이 2010년 발생한 현대차 파업 가담자에 대한 손배소를 개정안 3조와 비슷한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도 불을 지폈다.

이 와중에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7월 총파업 정국이 정점을 찍고 있다. 최대 산별노조인 금속노조의 양축인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노조가 12일 부분파업을 강행했다. 차량 수천대가 생산되지 못했다. 조선소는 잠시지만 정적만이 돌았다. 13일에는 보건의료노조가 총파업에 가세한다. 급한 환자들의 의료공백은 피할 수 없다.

이번 파업은 '정치파업'이다. 현 정권 퇴진에 기치를 올렸다. 노란봉투법 처리를 외치며 직장을 이탈했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헌법이 보장한 단결권, 단체행동권 보장을 누가 따지겠는가. 다만 시기가 최악이다. 대부분 기업들이 적자이거나 적자 직전이다.
7월 파업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싸늘한 이유다.

cgapc@fnnews.com 최갑천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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