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구조와 특허소송 사법시스템[수담활론]

김영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7.15 06:57

수정 2023.07.15 08:59

[파이낸셜뉴스] [수담활론(手談闊論)]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글(수담)을 통해 우리사회 곳곳의 이슈들을 파악하고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편집자 주>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구조와 특허소송 사법시스템[수담활론]

청년일자리핵심 벤처 생태계 선순환 구축 막는 특허소송 시스템
최근 주요 대기업들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는 뉴스를 자주 접한다. 투자는 곧 일자리인데 안타깝게도 그 투자의 상당부분은 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우리 대기업도 글로벌 환경에서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주도의 산업구조를 통해 급속도로 선진국 반열에 올랐지만 국가의 발전수준과 비례해 높아진 우리 청년들의 기대수준을 충족시킬 좋은 일자리에 대한 고민은 다소 부족했던 것 같다.
높은 교육수준을 가진 우리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는 점점 줄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일자리의 미스매칭 속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임시방편으로 그 자리를 채우면서 정작 수많은 청년들은 실업상태로 방황하고 있는 현실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2023년의 벤처 생태계에 대한 기대는 2000년 외환위기속의 벤처붐과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가진다. 지금은 국가의 산업경쟁력 못지 않게 좋은 청년일자리 확보가 국가에 요구되는 최우선 과제이기 때문이다.

청년들을 위한 좋은 일자리 창출을 얘기할때 빠지지 않는 주제가 있다. 바로 기술 벤처기업을 비롯한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 구축이다. 특히 기술 벤처기업을 강조하는 이유는 서비스 분야의 창업은 대부분이 국내서비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적인 관점에서의 일자리 대책으로는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기술 벤처기업들은 안타깝게도 외국처럼 청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많이 제공하지도, 투자자들로부터 제대로된 투자를 받지도 못하고 있다.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기술확보-투자-회수-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의 벤처생태계가 아직까지도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게 크다. 기술 벤처기업들이 기술개발에 어렵게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거대자본기업이 이를 존중해주고 협업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자본력을 앞세워 기술벤처기업을 무너뜨리고 기술을 탈취하는 것이 비일비재한 현실이라고 할 것이다.

그럼 기술 벤처기업들의 연구 성과물을 제대로 보호해 주면 될 것인데 그렇게 안되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파고 들어가 보면 우리나라의 특허소송 사법시스템이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구조에 많은 장애물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 특허소송 사법시스템과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구조는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 것인가.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벤처기업이 연구개발을 통해 기술에 대한 특허권을 확보했는데 거대자본기업이 이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기술을 사용하고자 계획하고 있을 때를 상정해 본다. 거대자본기업의 법무팀은 우선 벤처기업이 가지고 있는 특허권을 무효시킬 수 있는지 여부를 검토할 것이고, 다음으로는 벤처기업이 제기할 특허침해소송에서 거대자본기업이 패소할 가능성을 검토해 볼 것이다.

특허청 자료에 의하면 대기업이 중소기업과의 특허분쟁에서 승소할 확률은 2021년 기준 75%에 달한다. 즉,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한 특허소송에서 이길 확률은 고작 25%에 불과하다. 여기에 대기업이 마음만 먹으면 무효심판 등을 통해 소송을 지연시키면서 대법원까지 특허침해소송을 이어가면 소송 기간만 최소 5년이 넘어가게 된다. 이런 환경 속에서 벤처기업이 거대자본기업을 상대로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면서 자기의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을까.

변리사 특허소송 대리인 참여로 벤처 가치 보호-중소로펌 기회 열어야
더 큰 문제는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벤처기업은 소송을 시작도 하기 전에 대리인을 선임하는 절차에서부터 좌절하게 된다는 점이다. 특허사건만을 전담하는 변호사와 변리사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로펌은 일반적으로 상위 5대 로펌인데 대기업을 상대로 하는 특허소송에서 벤처기업은 이들 로펌에 사건을 의뢰할 수 없다. 대기업 소송건이 절대적으로 많은 한국의 현실 속에서 상위 로펌들이 대기업과 불편한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는 측면도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해충돌' 우려가 크다. 상위 5대 로펌은 평상시에 대기업을 대리하는 사건이 많아 자신의 고객인 대기업을 공격하는 소송을 법적으로 맡지 못하는 이유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즉 기본적으로 벤처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특허소송을 할 때 소송 가액이 커서 변호사비용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특허소송 전문성을 가진 상위 5대로펌은 그들의 대리인이 되지 못하는 구조인 것이다.

이때 차선책으로 벤처기업은 중소로펌이나 지인의 소개를 받고 개인 변호사사무실을 노크하게 된다. 그런데 담당변호사는 특허사건의 경험이 적은 경우가 많고 이때에는 통상적으로 특허소송의 복잡성 때문에 특허법인의 변리사를 추가로 선임하여 팀을 구성하게 된다. 그런데 벤처기업은 여기에서 다시 한번 좌절한다. 특허의 내용을 꿰뚫고 있는 변리사가 고등법원인 특허법원에서는 특허의 무효와 권리범위를 다투는 사건에서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해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정작 쟁점이 동일한 특허침해소송이 진행되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소송대리인 자격이 없어서 벤처기업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특허소송 사법시스템은 결과적으로 벤처기업의 소송 승률을 까먹는 이유가 되고, 결과적으로는 벤처기업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벤처기업의 선순환 생태계를 가로막고있는 것이다.

그럼 이러한 구조를 어떻게 타파할 것인가. 벤처기업협회를 비롯한 대다수의 산업계와 과학계에서 요구하는 특허소송 사법시스템 개선방안은 선진 외국과 같이 변리사도 특허침해소송에서 대리인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는 일차적으로 벤처기업의 가치 상승과 관련되지만 특허전담 변호사를 고용하지 못하는 중소로펌에게도 변리사와의 역할 분담을 통해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부당한 침해사실을 알면서도 아예 포기하고 소송절차를 진행하지 않는 수많은 벤처기업에게도 정당하게 법적 보호를 받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현실적 기반이 될 것이다.

이러한 특허소송의 사법시스템이 정착된다면 벤처기업과 거대자본기업간의 특허소송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은 많이 개선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대기업들이 이러한 법률 리스크를 인식하고 벤처기업과 적극적으로 협력하는 선순환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대기업이 기술력을 인정받은 벤처기업을 1000억원에 우호적 인수합병을 진행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왜냐하면 그것이 벤처기업이 살 길이고,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기초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 법사위에 계류중인 변리사의 소송대리권 문제가 기득권들의 밥그릇 싸움이 아니라 벤처기업의 미래와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하루속히 통과되기를 기대해 본다.


/전종학 WIPA 세계한인지식재산전문가협회 회장

※이 글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