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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한국판 '브루킹스연구소'가 아쉬운 이유

정인홍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7.16 18:45

수정 2023.07.16 18:45

[강남시선] 한국판 '브루킹스연구소'가 아쉬운 이유
1696년 영국 윌리엄 3세 때 '창문세'(窓門稅·Window tax)가 있었다. 말 그대로 창문 수에 따라 내는 세금이다. 부과기준은 7개 이상이었다. 당시엔 구하기 힘든 유리로 만든 창문이 많을수록 부잣집일 것으로 봤다. 창문은 멀리서도 잘 보이니 개수 세기도 쉬웠다. 지금 이랬다간 국민들로부터 경을 치를 일이지만…. 직전엔 가구당 보유한 벽난로 수로 세금을 매기는 '난로세'가 있었다.
하지만 직접 집에 들어가 일일이 확인하는 과정에서 집주인과 승강이를 하는 일이 잦고 번거로우니 카운트가 쉬운 창문세로 대체됐다. 당연히 조세저항이 잇따랐다. 한 푼이라도 세금을 줄이려고 창문을 가리거나 아예 벽돌로 막아버렸다. 바람, 햇빛이 안 통하니 주거환경도 나빠졌다. 세금은 잘 안 걷혔지만 무려 150년간 부과됐다. 지금 와선 아주 잘못된 조세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지금 대한민국이 당면한 가장 큰 현안인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보자. 2006~2021년 15년간 약 300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혈세를 쏟아붓고도 사정은 더욱 악화할 뿐이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여성 1명당 평균 출생아수)은 0.78명에 불과하다. 국가별 순위도 사실상 꼴찌다. 300조원을 투입한 결과물치곤 너무 초라한 성적표다.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경제적 부담과 양육 및 보육부담 등으로 결혼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가 갈수록 팽배해지고 있다. 어린이집은 어느덧 요양원으로 바뀌고 산부인과,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은 턱없이 부족하다. '아이 낳으면 돈을 준다는 식'의 '대증요법'으론 밑 빠진 독에 물붓기다. 저출산정책 수립과 집행 단계별로 사전 또는 사후 정책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300조원을 뿌리고도 0.78명에 머물렀을까 아쉬운 대목이다.

국회도 사정은 비슷하다. 국회는 매년 새해 예산안을 짜기 전 '1년 살림살이'를 제대로 했는지 들여다보는 '결산심사'를 한다. 결산을 통해 허투루 쓰거나 방만하게 집행한 내역들이 나오면 새해 예산안을 짜는 데 '반면교사'로 삼기 위함이다. 하지만 문제는 결산에서 잘못된 부분이 발견돼도 새해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는 일이 다반사라는 점이다. 결산 따로, 예산 따로 노는 셈이다. 새해 예산안은 각 상임위원회를 거쳐 올라온 분야별 안을 국회 예산결산특위가 결정한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엔 속기록도 남지 않는, 비공개 밀실심사인 '소소위'가 최종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이른바 '쪽지예산' '카톡예산'도 난무한다.

이렇듯 나쁜 정책은 민생을 괴롭힌다. 좋은 정책은 국민을 편안하게 만든다. 정책이 좋으냐, 나쁘냐는 바로 제대로 된 정책평가에서 판가름된다. 하지만 지금 한국에선 합리적인 사전·사후 정책평가 과정을 찾기가 쉽지 않다.
물론 내로라하는 국책연구기관과 민간연구소들이 있긴 하지만 거의 정부나 대기업과 연결돼 있다. 미국의 대표적 민간 정책연구소인 '브루킹스연구소'는 미국 정부의 경제·외교·도시환경·교육정책 수립에 막대한 영향력을 갖고 있다.
'한국판' 브루킹스연구소가 아쉬운 이유다.

haeneni@fnnews.com 정인홍 정치부장·정책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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