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나는 자살할 뻔한 교사입니다"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7.23 09:00

수정 2023.07.23 18:54

[강남시선] "나는 자살할 뻔한 교사입니다"
파이낸셜뉴스 사옥 뒤편으로 5분가량 걸으면 한 초등학교가 붙어 있는 사거리가 나온다. 식사 후 산책 삼아 다니던 길이었지만 이 학교 이름이 '서이초등학교'라는 사실은 지난주에 알게 됐다. 교사 한 명이 숨을 거둔 후 이 학교 3개 면이 화환과 꽃다발과 메모지로 뒤덮였다. 조문용 꽃다발을 들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충혈된 눈으로 벽에 쓴 메모를 읽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화환과 꽃다발이 계속 쌓이고 있다. 1학년 8반 학생들의 메모도, 주변 교사와 다른 학교 교사들의 사연도 보인다.


필자의 걸음을 한참 동안 멈추게 한 장문의 메모가 있었다. 손바닥만 한 메모지를 여러 장 출력해 붙인 글타래에는 우울증 걸린 채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한 교사의 사연이 적혀 있었다. 이 교사는 "나는 2017년에 자살할 뻔한 교사"라며 "학교 및 학부모위원 자녀 문제로, 학부모위원들 및 반 학부모들의 오해와 협박만으로 우울장애와 불안장애가 생겨 지금까지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이 교사는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여러 차례 항의를 받았다. 숙제하지 않은 학생에게 수업시간에 보여주는 영화 관람을 못하게 한 것은 인권침해로, 체육시간에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몇 분간 참여하지 못하게 한 행위는 수업권 침해로 문제가 제기됐다. 반 학생의 물건이 없어지자 모든 학생들의 동의를 받고 소지품을 찾아보게 했으나, 이 역시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게 학부모위원회의 판단이었다. 서로를 의심하는 분위기를 조성했기 때문이다. 수업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딴짓 하는 학생을 지적하자 이 학생은 "선생님이 나를 미워해서 거짓으로 지적했다"고 말했다. 학부모가 항의하자 이 선생님은 당시 주변 아이들의 의견을 받았다. 이 과정엔 다른 학부모위원의 자녀가 있었고, "우리 자녀가 공포심을 느꼈다"는 항의를 또 한 차례 받았다.

이 교사는 "저의 선택은 모든 학부모들을 모아놓고 학부모위원들이 원하는 대로 공개사과를 하는 것이었다"면서 "제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하나하나 사과할 때마다 '어머, 선생님 끔찍해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 교사는 "제가 자살을 결심한 때에 일기장에 적지도, 교육청이나 교권보호위원회에 이 사안을 올리지 않았다"면서 "자칫하면 아동학대죄로 고발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서이초 교사를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은 무엇일까. 죽은 교사는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다. 학폭사건과 학부모 문제제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해당 학급에서는 올해 학교폭력신고 사안이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가 어떤 고충이 있었을지는 이 학교 벽에 붙은 교사들의 메모로 충분히 짐작해볼 만하지 않을까.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 2016~2021년 5월까지 재직 중 사망한 교육공무원 중 11%는 극단적 선택 때문이었다. 서이초 벽에 붙은 메모는 학생 인권이 악용된 탓에 마녀사냥 당했던 교사들의 커밍아웃이다.
벽에는 이런 문구도 있다. "교실을 구해라. 교사를 구해라. 더 많이 죽기 전에".

ksh@fnnews.com 김성환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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