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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니코틴 살인사건' 대법원 파기 왜…"유죄 단정 못 해"[서초카페]

조윤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7.27 13:31

수정 2023.07.27 14:34

-자백 등 직접증거 없는 간접증거 살인죄 인정요건이 쟁점
ⓒ News1 DB /사진=뉴스1
ⓒ News1 DB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2021년 5월27일 한 남성이 자택에서 사망했다. 그의 사인은 '급성 니코틴 중독', 사망 추정 시각은 새벽 2시~4시 사이다. 그를 살해한 범인으로 지목된 이는 아내 A씨였다. A씨는 남편인 B씨에게 3차례에 걸쳐 건네 준 미숫가루와 흰죽, 물에 니코틴 원액을 넣는 방식으로 남편을 살해했다는 것이 수사당국의 결론이다.

이 사건은 직접증거가 없는 간접증거 만으로 살인죄를 입증해야 하는 수사당국으로서는 까다로운 사건이다. A씨가 끝까지 자신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데다 부부와 6세 아동만 있는 새벽 시간 주거지에 일어난 사건이라 목격자의 진술이나 범행 장면이 찍힌 CCTV 등 확실한 물증(직접 증거)도 없어서다.
직접증거가 없을 경우 수사당국이 사건 당사자 만이 알고 있는 범행 당시와 전후 상황, 연결고리 등을 빠짐없이 찾아내 상황을 완벽하게 입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2심 징역 30년…"아내 범행으로 보는 것이 타당"
그렇다면 간접증거 만으로 살인죄가 인정되는 요건은 무엇일까. 형사재판에서 유죄가 인정되려면 법관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확신할 수 있는 증거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반드시 직접증거가 아닌 간접증거에 의해서도 가능하지만, 간접증거가 인정되려면 합리적 의심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증명되어야 한다. 즉, 간접증거로 유죄의 인정은 범행 동기, 범행수단의 선택, 범행에 이르는 과정, 범행 전후 피고인의 태도 등 여러 간접사실로 보아 피고인이 범행한 것으로 보기에 충분할 만큼 압도적으로 우월한 증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판례다.

이 사건에서 A씨는 치사량이 넘는 니코틴 원액이 든 음식물을 먹여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재판부에 따르면 사망 전날인 2021년 5월 26일 출근하는 B씨에게 A씨는 미숫가루와 꿀, 우유를 섞은 음료를 햄버거와 함께 건넸다. 미숫가루를 마신 B씨는 출근 뒤 A씨에게 보낸 SNS메시지에서 "가슴이 쑤시고 타는 것 같다"고 통증을 호소했다. 귀가한 뒤에도 속이 좋지 않다며 식사를 거부하는 B씨에게 흰죽을 끓여줬고 이를 먹은 B씨는 극심한 고통으로 응급실로 이송됐다.

당시 B씨는 의료진에게 "상한 꿀을 먹은 것 같다"고 말했고 수액과 진통제를 맞고 상태가 나아지자 이날 자정께 귀가했지만 A씨가 건넨 찬물을 마신 뒤 결국 숨졌다.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의는 B씨 사인으로 '급성 니코틴 중독'을 지목하며 ""B씨가 응급실에 다녀온 뒤 A씨가 준 물을 마신 직후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술했다.

"간접증거 유죄, 압도적 증명돼야"…대법, 파기환송
하급심은 우선 B씨 사인이 급성 니코틴 중독이었던 만큼 자연사는 배제한 뒤, 가능성을 따져본 뒤 A씨의 범행으로 결론냈다. A씨가 범인이 아닐 경우는 B씨 스스로 복용했거나 제3자의 범행 등으로 압축될 수 있다. 그런데 B씨가 담배를 피지 않은데다 니코틴 구매 내역도 없고, 응급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일을 앞둔 아들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메시지가 "아빠가 아파서 미안해"였을 정도로 아들을 각별히 아꼈던 점, 주변인과의 원만한 관계 등을 종합하면 A씨 범행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취지다.

특히 A씨는 B씨와의 결혼 생활 중에 내연 관계인 남성과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오거나 자신이 운영하는 공방에서 같이 지내는 등 불륜을 저질렀고 여러 건의 빚으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온 점은 불리한 정황이었다. 2020년 8월부터 2021년 5월까지 한 담배가게에서 5회에 걸쳐 40여만원 상당의 니코틴 원액을 구매했고, B씨 사망 뒤에도 장례식장에 내연남이 머무는 등 상식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다만 1심은 미숫가루, 흰죽, 물 등 A씨가 피해자에게 3회에 걸쳐 건네 준 음식 모두에 니코틴이 들어있었다고 본 반면, 2심은 마지막 음식물인 물에만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A씨가 남편을 살해했다는 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하급심 판단을 뒤집었다. 니코틴에 노출 시 오심, 구토, 설사 등의 증상이 보통 15분 이내로 나타나고 직접 마셨을 경우 최고 농도에 이르는 시간은 약 30~66분, 투여 후 최고 농도 시기를 지나면 빠르게 회복된다.
그런데 B씨 체내 니코틴이 최고 농도에 이른 시각에 휴대전화 로그기록이 남아있었다. 또 A씨가 B씨에게 주었다는 물 컵에는 3분의2 이상 물이 남아있었는데, 이는 물의 양 등을 볼 때 니코틴 원액의 농도 등이 제대로 규정되지 않았다고 대법원은 지적했다.


압수된 니코틴 제품 중 사용분에 포함된 니코틴 함량은 B씨가 마신 것으로 추정되는 양과 비교할 때 그 차이가 상당히 커서, 이 제품이 피해자를 살해한 범행에 사용된 제품이라거나 그 존재가 피고인의 범행 준비 정황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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