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뻔한 전통시장은 싫다" MZ도 반한 강릉 중앙시장

김기섭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7.30 13:25

수정 2023.07.30 13:25

동해안을 대표하는 강릉 중앙시장. 지하에는 어시장이 들어섰고 1층은 공산품 매장과 분식류 식당, 2층은 삼숙이탕 등을 파는 식당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기섭 기자
동해안을 대표하는 강릉 중앙시장. 지하에는 어시장이 들어섰고 1층은 공산품 매장과 분식류 식당, 2층은 삼숙이탕 등을 파는 식당들이 영업을 하고 있다. 사진=김기섭 기자
【파이낸셜뉴스 강릉=김기섭 기자】 "해장에는 삼숙이탕이 제대로래요~"
표준어로는 '삼세기'지만 경남에서는 '탱수', 충남 서산과 태안에서는 '꺽쟁이', 전라도에서는 '멍텅구리'라 불리는 쏨뱅이목에 속하는 이 물고기는 강릉에서는 '삼숙이'로 불린다. 머리가 납작하고 눈이 크며 등지느러미가 가시처럼 삐죽삐죽 솟아 있는 못생긴 모습을 한 삼숙이는 '탕' 거리로 제일로 친다.

예전 어획량이 풍부했을 때는 어부나 서민들이 고된 하루를 보내고 난 후 쓴 소주에 곁들이는 소박한 안주였지만 이제는 MZ세대들도 동해안 여행을 와서 찾을 정도로 인기 만점의 매운탕 재료가 됐다.

지난 21일 강릉 중앙시장을 찾았다.
20여년 전 보름간의 출장 기간 동안 숙취에 힘든 속을 달래줬던 삼숙이탕이 그리워서다. 전통시장 취재는 뒤로하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이 중앙시장 2층에 있는 해성식당(간판은 해성횟집이지만 회는 팔지 않는다)이다. 2016년 백종원의 3대 천황으로 유명세를 얻었다고 알려졌지만 사실은 그 이전부터 현지인들에게는 맛집으로 소문나 있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앞서 막 들어간 또다른 일행이 눈에 들어왔다. 낫 익은 반가운 얼굴이다. 춘천에서 강릉으로 출장을 온 고교 동창 친구도 삼숙이탕이 그리웠던 모양이다. 수년간 못보던 녀석을 어찌 이곳에서 조우할 줄이야.

20여년 만에 맛 본 삼숙이탕은 '그래 이게 해장이지'라고 외칠 정도로 강력한 추억의 맛을 소환해냈다. 고추장 베이스의 칼칼하고 얼큰하고 깊은 맛이 일품이다. 다른 전통시장을 뒤로하고 강릉 중앙시장을 먼저 찾을 만한 이유가 충분했다.

강릉중앙시장에 위치한 75년 전통의 광덕식당. 서민갑부에 출연한 백석연 대표의 영업 철학이 인상적이다. 그는 맛, 청결, 친절이 맛집 비결이라고 한다. 사진=김기섭 기자
강릉중앙시장에 위치한 75년 전통의 광덕식당. 서민갑부에 출연한 백석연 대표의 영업 철학이 인상적이다. 그는 맛, 청결, 친절이 맛집 비결이라고 한다. 사진=김기섭 기자


강릉 중앙시장에서 가장 핫한 메뉴인 김치말이 삼겹살. 젊은 사장 두명이 매대를 운영하고 있지만 넘쳐나는 손님들로 쉴 틈이 없다. 사진=김기섭 기자
강릉 중앙시장에서 가장 핫한 메뉴인 김치말이 삼겹살. 젊은 사장 두명이 매대를 운영하고 있지만 넘쳐나는 손님들로 쉴 틈이 없다. 사진=김기섭 기자

강릉 중앙시장 2층 해성식당의 삼숙이매운탕. 지역 주민은 물론 외지 여행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매운탕으로 인기가 높다. 사진=김기섭 기자
강릉 중앙시장 2층 해성식당의 삼숙이매운탕. 지역 주민은 물론 외지 여행객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매운탕으로 인기가 높다. 사진=김기섭 기자

■전통과 혁신이 어우러진 핫플레이스
보통 전통시장하면 허름한 건물과 정리되지 않은 환경, 젊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공간이라는 인식이 많다. 그럼에도 전통시장에는 전통과 인심, 추억이 녹아있다. 서민들의 애환이 남아있고 생존을 위해 일하는 일터이기도 하다. 4차산업혁명 시대 AI 로봇과 챗GPT가 일상을 파고 들어도 여전히 전통시장은 우리가 이용하고 찾아야 하는 공간이다. 물론 빠른 시대 흐름에 맞춰 전통은 지키되 시장 내부로부터의 혁신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야만 외면받지 않고 대중들의 발길이 이어질 수 있고 일터로서의 존재감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통은 살리고 혁신을 거듭하며 보통의 전통시장과는 달리 규모가 커지며 관광객들이 꼭 들려야 할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는 시장이 바로 강릉 중앙시장이다. 생산을 파는 어시장과 장칼국수, 순댓국, 소머리국밥 등 전통 음식은 물론 MZ세대와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 김치말이삼겹살, 어묵크로켓, 닭강정, 커피빵 등 다양한 신메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여기에 야경이 예쁜 월화거리까지 조성돼 강릉 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동해안 대표 상설시장
강릉은 예부터 동해안을 대표하는 도시로 농산물과 수산물, 임산물 등이 풍부했고 태백산맥 너머의 영서 지역과 교역을 해오면서 전통시장도 자연스럽게 발달했다.

강릉시내 정중앙에 위치한 중앙시장은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상설시장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전통시장으로 등록된 것은 1980년이다. 당시 2층 규모의 건물에는 320여개의 점포가 입점해 있었으며 시장 주변에는 금융권과 고층빌딩, 대학로 등 상권이 활성화돼 있다.

이곳에서는 식품, 의류, 잡화, 수산물, 농특산물 등 다양한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봄에는 두릅, 곰취, 곤드레 등 각종 산나물을, 여름에는 옥수수와 감자, 가을에는 송이 등이 장터 매대를 가득 메운다.

특히 시장 지하는 어시장이 형성돼 있으며 영동지역에서 어획하는 각종 수산물과 신선한 회, 젓갈 등을 구매할 수 있다. 1층에는 제수용품과 포목, 주단, 건어물 등을 판매하는 상가와 튀김, 닭강정, 순대 등을 파는 분식점들이 있고 2층에는 삼숙이탕, 알탕 등 얼큰하고 푸짐한 찌개류를 파는 식당들이 있다.

바닷가 어판장에서 들여오는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해 건강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으며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음식을 맛볼 수 있어 지역 주민 뿐 아니라 외지인들도 많이 찾는 시장이다.

중앙시장 건물을 둘러싼 주변 노점들은 2009년 비가림막 시설을 하고 ‘성남시장’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하기 시작했고 중앙시장 맞은편 영동선 철길 아래에도 예부터 작은 노점들이 있었는데 이 노점들 또한 비가림막 시설을 하고 먹자골목으로 변신했다.

강릉 중앙시장과 인접한 월화거리에서 버스킹 공연이 열리고 있다. 월화거리는 최근 야시장까지 개장하면서 낮은 물론 밤에도 여행객들로 가득찬다. 강릉시 제공
강릉 중앙시장과 인접한 월화거리에서 버스킹 공연이 열리고 있다. 월화거리는 최근 야시장까지 개장하면서 낮은 물론 밤에도 여행객들로 가득찬다. 강릉시 제공
■ MZ세대도 반한 맛집 천국
이곳은 전통 음식 뿐만 아니라 최근에 개발된 신메뉴들이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먹방 유튜버들이 즐겨찾는 성지순례지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여행객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가장 핫한 메뉴는 김치말이 삼겹살. 중앙시장 간판을 끼고 골목을 한참 들어가다보면 관광객들이 한군데 몰려 있는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에 '월화 김치말이 삼겹살' 가게가 있다.

젊은 사장님 둘이 운영하는데 매번 길게 늘어선 줄이 유명 맛집임을 한 번을 알 수 있게 한다. 사장님 한 분은 넓은 철판에 김치말이 삼겹살을 만들어 굽고 있고 또다른 사장님은 구워진 삼겹살을 깔끔하게 잘라 포장지에 담아 주문한 손님들에게 내민다.

김치말이 삼겹살은 삼겹살 안에 김치, 치즈, 양파, 당근, 깻잎을 넣고 말아서 철판에 구워낸 다음 위에 소스를 뿌린 음식으로 삼겹살 위에 바비큐소스, 칠리소스, 와사비마요네즈 등을 곁들여 내놓는다. 공중파나 먹방 유튜버들에게 소개되면서 외국인들도 강릉을 방문하면 빠지지 않고 들리는 유명 맛집으로 등극했다.

호떡집들도 불티가 나는 것은 마찬가지다. 중앙시장 초입부터 안쪽까지 모자호떡, 놀랄오떡, 웅스호떡 등 아이스크림 호떡집이 있는데 말 그대로 장사진을 이룬다.

닭강정집도 빼놓을 수 없는 맛집들이다. 1980년대 강릉 중앙시장은 동해안 대표 전통시장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닭집들이 과장해서 한 집 건너 하나 있을 정도로 많았다고 한다. 닭집이 많았던 이유는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대학생과 서민들이 횟집 대신 중앙시장 입구 통닭집을 찾아 소주잔을 기울였기 때문이란다.

대학생과 서민들의 도움을 많이 받은 또다른 곳은 소머리국밥집이다. 중앙시장 안쪽에 위치한 광덕식당은 75년된 중앙시장 터줏대감이다.

서민갑부에도 출연한 백석연(74) 광덕식당 2대 대표는 "옛날에는 한끼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맛과 영양, 건강 측면에서 평가를 많이 한다. 옛날에는 국밥이 서민음식이었는데 지금은 맛으로 결정짓는 시대인 거 같다. 맛이 있어야 하고 청결해야 하고 친절해야 한다. 이런 것들을 갖췄기 때문에 손님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고 인기 비결을 귀띔했다.

이밖에도 수제 어묵 고로케, 오징어순대, 육쪽 마늘빵, 칼국수, 중화짬뽕빵, 튀김 등이 젊은층 입맛을 사로 잡고 있다.

■문화가 입혀진 중앙시장과 월화거리
강릉 중앙시장이 MZ세대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맛집이 많다는 점도 있지만 중앙시장 인근에 문화 행사가 자주 열리는 월화거리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월화거리는 폐철도 길을 따라서 조성된 도심공원으로 강릉 고유의 설화이자 춘향전의 모티브가 된 ‘무월량과 연화부인’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주요 테마로 해 '월화거리'라고 이름을 지었다.

강릉역에서 중앙시장을 지나 부흥 마을에 이르는 2.6㎞ 구간에 거리 공원으로 조성된 월화거리에는 말 나눔터 공원, 임당 광장, 역사문화 광장 등의 공간이 있고 이곳에서 주말마다 무대 공연과 거리퍼포먼스, 야외공연 등 각종 문화행사들이 펼쳐진다. 또 가로수길을 산책할 수 있고 인접한 상상마당, 강릉역사박물관, 강릉미술관 등에서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다.


지역 주민인 전인수(57)씨는 "월화거리는 스토리가 있고 누구나 걷고 싶은 거리, 맛있는 음식과 공연, 전시 등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다"며 "중앙시장이 여느 전통시장과는 달리 전통문화를 유지하면서도 MZ세대와 외국인도 찾는 관광명소로 인기를 얻고 있는 이유는 유명 맛집과 함께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kees26@fnnews.com 김기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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