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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희의 온스테이지] 조선시대 소방관 이야기, 뮤지컬 '멸화군'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7.31 13:02

수정 2023.07.31 13:03

조선 최초의 소방관 이야기를 다룬 창작뮤지컬 '멸화군' / 사진=뉴시스
조선 최초의 소방관 이야기를 다룬 창작뮤지컬 '멸화군' / 사진=뉴시스

뮤지컬 '멸화군'은 조선시대 소방관에 대한 이야기다. 멸화군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1426년 세종 8년에 한양에 대화재가 있어 이를 계기로 금화도감이 창설됐고, 이후 1467년 임금과 대궐의 식사를 관장하는 사옹원에서의 화재를 계기로 멸화군으로 개편됐다. 대형 화재를 막기 위해 만들어진 멸화군은 화재감시 및 예방 그리고 진압까지 화재에 관한 모든 업무를 소관했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불과 싸우고 각종 재난과 싸우면서 사람들의 생명을 지켜내는 소방관들의 고난과 희생은 계속되어 왔고, 여기에는 숭고한 감동의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다.

공연 시작 전 청아한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안내 멘트가 인상적이다. ‘멸화군은 불에서 시작해서 빛으로 끝나는 공연입니다.
’ 안내 멘트처럼 한양 도성에 화재가 발생한 장면부터 극은 시작된다. 한양 사옹원의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중림은 최선을 다하지만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동료였던 천수의 형을 끝내 구하지 못한다. 중림은 화재를 전담할 조직이 필요하다는 상소를 올려 멸화군이 창설된다. 그리고 천수는 형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멸화군에 지원하고, 연화는 이런 천수를 챙겨주며 지지하면서 중림과 천수에게 믿음을 심어준다. 멸화군은 함께 훈련하며 서로의 동료애를 쌓아간다. 1막 중간까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멸화군이 만들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닥칠 대형 화재와 이에 맞서는 소방관들의 고난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으로 예측되지만 극은 점점 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흑립을 쓴 방화범의 소행으로 사대부들의 집에 화재가 발생하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중림과 멸화군은 화재를 막고 범인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범인은 도리어 여론몰이를 통해 자신들의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멸화군이 스스로 벌인 일이라는 소문을 퍼트린다. 여기서부터 극은 방화범과 이를 막으려는 중림과의 심리 싸움으로 전환된다. 사대부에 대한 저항이라는 대의로 포장한 방화범은 동시에 불을 통제한다는 쾌감에 빠져 있기도 하다. 억울하게 투옥된 천수를 미끼로 중림에게 방화를 지시하며 협박한다. 불을 막아야 하는 사람이 불을 질러야 하는 극한의 상황이 만들어지며 극은 대단원을 향해 달려간다.

대학로 소극장 뮤지컬이지만 무대의 역동적인 활용을 통해 스펙터클을 만들어낸다. 소극장의 기대치를 뛰어넘는 무대와 영상은 관객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뮤지컬 넘버 역시 다양한 솔로와 듀엣 넘버들이 화려한 고음의 향연을 통해 관객들의 귀를 호강시켜주며, 이를 담아내는 배우들의 노래와 연기도 감동적이다. 멸화군을 연기하는 앙상블들의 춤도 소극장을 꽉 채워주면서 공연을 풍성하게 완성시켜준다.


화재와 싸우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넘어서 통제의 욕망, 피할 수 없는 희생, 동료를 위한 선택과 시대의 갈등 등 보기보다 매우 복잡한 관계의 매커니즘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다만 연화의 행동에 대한 캐릭터의 설정이 다소 아쉬운 지점으로 남는다.
뮤지컬 '멸화군'은 소재, 이야기, 배우, 무대 그리고 화려한 넘버들까지 소극장을 꽉 채워낸 매력적인 작품으로 더운 여름 무더위를 불로 제압해 빛의 감동으로 이어주는 매력적인 무대다.

김덕희 서울시뮤지컬단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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