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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엔 기술로, 기술엔 자원으로… 끝모를 G2 반도체 전쟁[글로벌리포트]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8.06 18:54

수정 2023.08.06 19:27

美, 동맹국 동원해 대중 포위망 확장
中, 핵심광물 수출 막고 자원 무기화
주고받는 보복에 기업 '막대한 손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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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베이징=정지우 특파원】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전쟁이 격화되고 있다. 미국이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중국을 향한 반도체 수출을 제재하자, 중국은 반도체 핵심 광물의 수출 길을 차단했고, 미국은 다시 구형 반도체까지 규제하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사이 미국은 자국 내에서 중국 반도체 기업의 설자리를 빼앗았으며, 주변국에겐 대중국 포위망에 동참할 것을 강요했다. 이에 맞서 중국도 미국 반도체 기업을 표적으로 삼았고, 한쪽으로 기울여진 외교를 하지 말라고 주변국에 경고했다.

반도체는 컴퓨터, 휴대폰, 무기, 에너지, 환경, 인공지능(AI), 선박, 항공, 우주 등 사실상 대부분의 첨단 장비에 들어가는 핵심 소자다. 그러나 아무나 개발하고 만들 수는 없다.
이 때문에 반도체는 국가 전략 자산으로 인식된다.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밀려나면 국가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반면 반도체 시장에서 점차 세력을 키워가는 경쟁국의 위협을 그저 바라보기만도 애매하다. 미중 각자의 입장에선 반도체 전쟁에 나름의 이유는 있는 셈이다. 그러나 세계 2대 강국이 보복전을 주고받는 동안 피멍은 힘없이 이리저리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애꿎은 주변 국가들에게 맺힌다. 기업들 역시 타격을 받게 된다. 현재의 모습이 이를 방증한다.

■바이든 출범 후 시작된 반도체 제재

중국을 향한 미국의 제재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 때부터 본격화됐다. 다만 당시는 반도체라는 특정 기술을 표적으로 삼기보다는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전방위적 관세를 부과하거나 화웨이에 대해 안드로이드 운영 체계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등 개별 기업의 시장 점유율을 급락시키는 전략을 사용했다.

반도체 제재는 후임 정권인 조 바이든 행정부가 꺼냈다. 엔비디아 등 자국 기업의 대중국 수출을 제한하고, 미국의 기술과 장비를 사용해 반도체를 생산했다면 해외의 경우라도 미국 상무부가 통제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을 견제하고 미국 중심의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 이른바 한국, 일본, 대만과 '칩 4 동맹'을 결성했다. 반도체법을 통해 미국에 투자하는 반도체 기업에겐 보조금을 지급하는 대신 여기에 동참할 경우 중국에 반도체 칩이나 생산설비를 수출하는 것을 제한했다. 미국은 '제안' 형태를 취했지만, 상대가 미국이기 때문에 표면 그대로 받아들인 곳은 사실상 없다.

■中희토류 기술 수출금지로 '경고'

중국은 다수의 핵심 광물 생산국이라는 이점을 내세워 자원 전쟁에 들어갈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보복에 착수했다.

중국은 지난해 말 핵심 전략물자인 희토류의 정제·가공·이용기술을 '수출금지 및 제한 기술 목록'에 포함시킨 뒤 한 달여 만에 명령 수정안에 대한 의견수렴까지 끝냈다.

수정안의 수출금지 품목에 들어 있는 사마륨코발트는 희토류계 원소인 사마륨과 고가의 전략 자원 중 하나인 코발트의 합금이다. 중국은 사마륨과 코발트 희토류 금속을 추출하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국가로 알려져 있다. 사마륨코발트 자석은 희토류를 원료로 하기 때문에 현존 자석 중 가격이 가장 비싸며, 중국 생산량은 70% 이상이다.

네오디뮴은 가장 널리 사용되는 희토류 자석의 주요 원료이며 네오디뮴 자석은 중국 생산량이 85%에 달한다. 전기차, 태양광·풍력 발전, 소비 전자 제품, 산업용 모터, 로봇 등에 모두 영구 자석이 들어간다. 세륨 역시 희토류 원소 중 하나다.

중국이 세계 희토류 정제 역량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만큼, 중국 지도부는 희토류 자체보다 정제 기술 자체를 강력한 무기로 보고 있다. 미국의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수출금지에 맞서는 조치로 읽힐 수밖에 없다. 수정안은 내부 결정 과정을 거쳐 시행 시기만 남겨 놓고 있다.

■그래도 계속된 반도체 고립 포위망

그러나 미국은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국 고립 전략을 멈추지 않았다. 네덜란드 정부는 유럽 최대의 반도체 기술 기업인 ASML 등 자국 반도체 기업이 중국에 관련 장비를 수출하는 경우 정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일본도 중국 기업들의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 장비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통제에 들어갔다.

중국이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통제에 착수한 것은 네덜란드의 새로운 규제 발표 며칠 뒤에 나왔다. 또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의 중국 방문 직전에 이뤄졌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에 이은 잇따른 미 고위급 인사 방중으로 미중 소통·교류 재개 분위기가 형성되던 시점과 어울리지 않는 조치였다.

이로 인해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들은 전문가를 인용, "미국과 유럽이 시행하고 있는 반도체 대중국 수출 통제에 대한 명백한 보복"이라며 "미국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 제재라는 반격보다 강하다"고 분석했다. 중국 상무부 또한 "국가의 안전과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국무원의 승인을 받은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이번에 갈륨·게르마늄으로 '맞불'

갈륨과 게르마늄은 중국에서 전략 자원이다. 갈륨은 은백색의 희귀금속으로 토양에서 함량이 적고 알루미늄, 아연 등 광물과 함께 생성되기 때문에 추출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년 동안 전 세계 갈륨 생산량은 300t 수준에 불과했는데, 이 가운데 290t이 중국에서 나왔다. 세계 갈륨 매장량은 27만9300t이며 중국 비중은 약 68%인 19만t에 달한다. 산화갈륨, 질화갈륨, 갈륨비소, 안티몬화갈륨을 비롯해 갈륨 대부분은 반도체 소재다.

게르마늄 역시 반도체 소재로 고주파 전류의 검출과 교류 정류용으로 쓰인다. 항공·우주 측정·제어, 핵물리학적 탐지, 광섬유 통신, 적외선 광학, 태양광 배터리, 화학촉매, 생물의학 등에도 활용된다.

중국은 세계 최대 게르마늄 생산국이자 수출국이다. 세계 게르마늄 제품의 71%를 공급한다.

이들 자원을 수출하려면 최종 사용자와 최종 용도 증명서, 수입업자에 대한 소개 등을 문서를 갖춰서 중국 상무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만약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형사책임을 추궁한다는 문구도 공고에 들어 있다. 중국산 반도체 소재가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사실상 정부가 통제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갈륨과 게르마늄은 유럽연합(EU)의 핵심 광물 리스트에 올라가 있다.

■美·中 '추가' 제재 vs. 보복 '만지작'

문제는 반도체 전쟁이 미중 화해모드와 별개로 전개되고, 점차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갈륨·게르마늄 이후 또 다른 제재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외신은 "미국과 EU가 중국에서 생산하는 레거시(구형) 반도체에 대한 새로운 규제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레거시 반도체 생산 확대에 대한 미국 및 유럽 당국자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어 이를 막기 위한 전략"이라고 보도했다.

레거시 반도체는 일반적으로 28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상 공정으로 만든 칩을 말한다. 스마트폰·자동차·군사 무기 등 사용 범위가 넓어 전체 반도체 시장의 75%를 차지한다.

반면 중국은 광물 수출 통제로 미국 등의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추가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컨설팅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의 전문가들은 "중국의 수출 통제는 하나의 '경고 사격'"이라면서 "미국, 일본, 네덜란드 등에 중국이 보복 옵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첨단 반도체에 대한 추가적인 대중 통제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웨이젠궈 전 중국 상무부 부부장도 차이나 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중국의) 추가적인 보복도 충분히 가능하며 더 많은 선택지가 있다"고 피력했다.

■'불똥'은 기업과 주변국

중국의 다음 통제 대상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은 희토류다. 정제하기 까다로운 희토류 기술 수출 금지로 경고를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발 더 나아가 희토류 자체에 대한 전면적인 수출 금지를 선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럴 경우 스마트폰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전투기 등 첨단산업에 두루 활용되는 중국산 희토류 의존 국가들의 충격 확대는 갈륨·게르마늄에 더해 불가피하게 된다.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미중 양국은 '기술 제재'와 '광물 통제'라는 전략 속에서 상대국 기업들을 괴롭히는 '흔들기 전술'을 쓰고 있다.

중국 관영 매체 환구시보 영문판 글로벌타임스가 "노골적으로 대중국 규제를 하는 서방 국가의 기업들은 대중국 규제에 동참하는 대신 중국 기업에 대한 불공정 관행을 중단하도록 자국 정부에 요청해야 한다.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첫 번째 대상은 중국에 유사한 제재를 가하고 중국의 핵심 이익을 해친 국가의 기업일 수 있다"고 날을 세운 대목에서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의 요구로 최첨단 AI 반도체를 중국에 납품하지 않는 미국 시스템 반도체 설계기업인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중순 바이든 미국 행정부 관계자들과 회동에서 "수출 통제가 기술 업계에 '엄청난 손실'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며 규제의 일시 중단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측 피해는 더 크다.
WSJ은 "미국이 인공지능(AI)·슈퍼컴퓨터 등에 사용할 수 있는 첨단 반도체 및 장비의 중국 수출을 통제하면서, 중국 기업들이 핵심 부품·장비를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면서 중국 해관총서(세관) 발표를 인용, 중국의 상반기 반도체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약 22%, 반도체 제조 장비 수입액은 약 23% 감소했다고 전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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