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연극인생 60년 손숙 "다시 태어나도 내 선택은 연극"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8.07 18:07

수정 2023.08.07 18:52

19일 개막하는 신작 '토카타'
반려견마저 떠나보내고 홀로 지내는 노인 이야기
"내년에 여든, 내 얘기구나 싶어"
밤이면 눈 침침하고 몸 힘들어

올해로 연극인생 60주년을 맞은 손숙이 19일부터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되는 '토카타' 무대에 선다. 손숙은 "이 연극이 꼭 내 이야기 같다"며 "다시 태어나도 연극을 하며 살 것 같다"고 말했다. 신시컴퍼니 제공
올해로 연극인생 60주년을 맞은 손숙이 19일부터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공연되는 '토카타' 무대에 선다. 손숙은 "이 연극이 꼭 내 이야기 같다"며 "다시 태어나도 연극을 하며 살 것 같다"고 말했다. 신시컴퍼니 제공

"내 인생 3분의 1은 무대 위 인생이었다. 연극이 없었다면 내가 아직 살아있을까 싶을 정도로 굴곡 많은 인생에서, 연극 덕에 힘든 현실을 잊었고, 위로를 받았다.
"

배우 손숙(79)의 인생에서 연극은 떼려야 뗄 수 없다. 1963년 대학 시절 '삼각모자'로 데뷔한 그는 이 작품으로 '여배우 탄생'이라는 찬사를 얻었고, 당시 상대 배우였던 김성옥(1935~2022)과 2년 뒤 결혼했다. 그리고 어릴 적부터 자신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했던 연극을, 배우를, 직업으로 삼았다. 양반가 며느리였던 어머니는 "딸이 기생이라도 되는 줄 알고" 격렬히 반대했지만, 무소의 뿔처럼 나아간 그는 1970년대부터 박정자와 연극계 쌍두마차로 활약했다.

연극인생 60주년 기념 연극 '토카타'


단출한 무대에 여자가 걸어나와 말한다. "오랜만이에요. 벌써 2년쯤 됐나? 우리 못 만난 지가." 그는 어느새 바닥에 앉아 달 뜬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여전해 당신은. 어쩌면 이렇게 부드럽고 따뜻하고 다정한지."

한쪽 의자에 앉은 병든 남자도 과거의 찬란한 순간을 떠올린다. "글쎄, 무슨 마음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난 그걸 만지고 말았지… 그냥 아무 생각 없었어." 빈 공간을 채우는 독백 사이로, 가끔 피아노 선율이 흐른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의 독백이 마치 대화하듯 교차한다. 그리고 '춤추는 남자' 정영두가 등장한다. 그는 가만히 한 손을 하늘로 뻗었다가 그 손으로 자신의 몸을 어루만진다.

신시컴퍼니가 오는 19일부터 9월 10일까지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손숙 연극 인생 60주년 기념 연극 '토카타'를 올린다.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홀로 된 여인(손숙 분)과 바이러스에 감염된 극한상황에서 한때 화려했던 접촉을 생각하는 중년 남성(김수현 분) 그리고 존재론적 고독을 몸으로 표현하는 춤추는 사람(정영두 분)이 출연한다. 연극 '1945' '3월의 눈'과 창극 '리어' '트로이의 여인들'의 배삼식 작가가 손숙 데뷔 60주년을 맞아 새롭게 쓴 대본이다.

손숙은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했는데, 대본 보고 깜짝 놀랐다"며 웃었다. 배우 박정자가 잔치처럼 신나는 작품을 하자며 자신은 출연료 안받겠다고 했는데 소용없게 된 것이다. 손숙은 "근데 대본이 너무 품격 있고 신선했다. 대사에서 향기가 났다. 배우가 만들어갈 여지가 많고, 구석구석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며 만족해 했다.

배 작가는 "작가로서 최선을 다해 글을 쓰는 게 (예술가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며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 관객들에게 의미 있는 이야기를 썼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서사는 지난 2년, 팬데믹 기간 산책길에서 나왔다. 촉각은 우리 인간이 가진 감각 중 가장 오래됐는데, 팬데믹으로 인간 간 접촉이 위험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 촉각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었다. 순수한 목소리가, 무대에서 들려지게 꾸밈을 최대한 배제했다"고 부연했다.

손숙 "토카타가 나를 일으켜 세웠죠"


'토카타'는 애초 지난 3월 개막 예정이었다. 하지만 손숙의 갑작스런 골절로 5개월가량 연기됐다. 그는 "결과적으로 이 작품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며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 3개월 걷지를 못했다. 꼼짝없이 집에 있다 보니 매일 한 두 번씩 작품을 쭉 봤다. 눈이 나빠져 대본을 녹음해 밤마다 들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이걸 하려면 빨리 일어나야지, 생각하게 됐다. 연극이 연기돼 주변 사람들에게 죄송했지만, 나로선 모노드라마나 다름없는 긴 대사를 외우고, 완성도를 높이는데 굉장히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신작을 하면서 데뷔 초기 설렘을 느꼈다. 그는 "노인이 되면 설렘을 느낄 일이 아주 드물다. 솔직히 몸은 무척 힘들다. 그런데 오랜만에 머리가 맑은 느낌이 든다. 신앙심 깊은 우리 딸은 내가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에게 닿아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이 연극이) 꼭 내 이야기 같다. 나도 지난해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독거노인이 됐다. 극중 반려견마저 잃은 여자가 혼자 밥먹고 청소한다는 이야기를 쭉 늘어놓다가 마치 스위치를 끄듯 내 이런 생활을 딱 끄고 싶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번에 크게 아프면서 나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돌이켰다. "손진책 연출이 선생님이 우시면 안돼요, 감정에 빠지면 안돼요, 관객이 울어야 한다고 말한다."

요즘 부쩍 '웰다잉'을 고민한다는 그는 손녀 얘기가 나오자 화색이 돌았다.
"('헤일로'의 주역 하예린) 손녀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타는 순간을 상상하면서 그때까지 살아있어야 되는데 생각한다. 평생 열심히 연극하며 살았다.
근데 다시 태어나도 연극할 것 같다"며 웃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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