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소기업

[fn이사람] "어르신 손으로 만든 달력 인기 상상 못했죠"

장유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8.08 18:10

수정 2023.08.08 18:19

심현보 아립앤위립 대표
폐지수거 종사자 등 노인채용 앞장
'신이어마켙' 열고 엽서·노트 판매
평균연령 83세 직원들이 직접 그려
[fn이사람] "어르신 손으로 만든 달력 인기 상상 못했죠"
"일하는 어르신 중에 만나는 날이 기다려져 밤잠을 설친다는 분도 있어요. 제가 일을 못 그만두는 이유 중 하나죠."

심현보 아립앤위립 대표(사진)는 8일 "어르신들이 일하는 것을 굉장히 즐거워하는데, 이런 모습을 볼 때면 보람을 느낀다"며 이같이 전했다.

지난 2017년 설립된 아립앤위립(我立 and we 立)은 '나를 세우고 우리를 세운다'는 뜻을 지닌 사회적 기업이다. 시니어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폐지 수거 등 저소득·빈곤 노인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있다. 현재는 시니어들이 쓴 글씨와 그린 그림을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신이어마켙'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심 대표는 친할머니가 폐지를 줍는 모습을 보고 창업을 결심했다. 그는 "친할머니가 무릎수술을 하고 소일거리로 폐지를 줍기 시작했는데 마음이 좋지 않았다"며 "비록 할머니는 취미로 하는 거였지만, 할머니 주변에는 생계수단으로 폐지를 줍는 분들도 많았다.
이분들을 보고 좀 더 괜찮은 일자리를 만들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아립앤위립에는 총 17명의 시니어 직원이 있다. 이 중 1명은 정규직, 나머지 16명은 파트타임으로 근무한다. 심 대표는 "정규직 1명을 비롯한 6명은 매주 수요일 오전에 만나 그림을 그리고 제품을 디자인하고 있다"며 "나머지 10명은 폐지 수거에 집중하는 분들이라 제품 포장 일이 있을 때 와서 일을 한다"고 설명했다.

시니어 직원의 평균 연령은 83살이다. 최고령 직원이 90살, 막내가 78살이다. 이들이 그린 그림과 글씨는 스티커, 엽서, 노트, 연필, 키링 등 각종 제품으로 만들어 판매된다. 서툰 그림, 삐뚤빼뚤한 글씨 '날것 그대로'가 상품이 된다.

심 대표는 "신이어마켙의 모든 제품의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하는 게 아니고 시니어 직원들이 한다"며 "디자이너들은 시니어가 한 걸 제품에 얹히는 작업만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날것 그대로를 쓴다는 게 신이어마켙의 가장 큰 차별점이고 강점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제품들은 젊은 세대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매년 달력을 만들고 있는데, 브랜드를 처음 론칭한 첫해인 2021년엔 총 200권을 만들어 100권을 겨우 판매했다. 하지만 그 이듬해 1500권, 지난해에는 3000권을 만들어 판매했다. 현재 '신이어마켙'의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관심고객 수만 1만8000여명에 달한다.

심 대표는 "브랜드가 이렇게 주목받을 줄 전혀 예상 못했다"며 "점차 브랜드가 알려지면서 재생산에 대한 것도 고민하게 되고 깜짝 놀라는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로부터 협업 요청도 쏟아지고 있다. 현재까지 투썸플레이스, 우아한형제들, 카카오 등과 협업을 진행했다.
심 대표는 "이런 브랜드와 협업할 수 있을 거라 상상하지 못해 얼떨떨하면서도 감사하다"며 "올 하반기까지 할 일은 꽉 차 있고 추가로 계속 제안이 오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심 대표는 앞으로 더욱 많은 시니어를 고용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더 많은 노인을 채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며 "폐지 수거 노인을 포함한 일하고 싶은 노인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기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welcome@fnnews.com 장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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