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선

[강남시선] 묻지마 칼부림이 미국서 일어났다면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8.09 06:00

수정 2023.08.09 17:50

[강남시선] 묻지마 칼부림이 미국서 일어났다면
무차별 총기 테러와 다름 없었다. 서현역, 신림동 '묻지마 칼부림 사건'이 만약 미국에서 일어났다면 범인은 그 자리서 사살됐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 미국 경찰은 범죄현장에서 시민의 추가 피해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면 총기 사용을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사건이 개인과 연관된 범죄가 아닌 묻지마 테러라면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이 두 사건은 일면식 없는 불특정 다수를 향해 흉기를 휘두르고 무고한 시민을 살상했다는 점에서 사실상 테러였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이 같은 범죄를 테러로 규정하고 있다.
테러 행위는 국가 체제를 뒤흔들기 때문에 어느 나라나 초기부터 가장 강력한 대응을 하며, 이에 따른 법 적용도 최고형을 적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저녁 예약 다 취소됐어요." 평소 저녁 예약이 별따기로 힘든 강남의 한 레스토랑 사장이 볼멘 소리로 내뱉었다. 온라인에 살인 예고글이 잇따른 지난 금요일 저녁, 이른바 '불금 장사'가 테러 예고에 다 날아간 것이다. 이 업소만의 일은 아니었다. 급기야 강남역 사거리엔 철갑을 두른 장갑차와 기관총을 든 경찰특공대까지 등장했다. 인터넷에선 호신용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심지어는 방검복까지 주문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번잡한 인파 속에서 옆을 지나는 사람이 무서운 세상이 됐다.

이쯤 되면 묻지마 테러는 국가전복 기도와 다름없다. 형법은 내란죄에 대해 1인이 아닌 다수로 한정하고 있지만 '폭동에 의하여 국가의 존립과 헌법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주동자는 최고 사형의 형량을, 범죄 모의만 해도 3년 이하의 징역형을 받는다.

최근 살인 예고글을 올린 용의자 중 54명이 붙잡혔다. 그러나 범행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그냥 경범죄 처벌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만약 경찰이 서현역, 신림동 범죄 때 테러 행위에 준해 피의자를 총기 등을 이용해 제압했거나, 이후 법정이 사형을 선고했다면 이 같은 유사 범죄가 잇따르고 모방범죄 예고가 줄 이었을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는 범죄 행위자의 인권만 존중할 뿐 이들에 의해 희생당하는 피해자의 인권은 뒷전인 게 현실이다. 경찰이 총기 사용을 주저하는 것도, 사형 집행이 1997년 이후 사라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인생 폭망했다고 자포자기에 빠져 묻지마 범죄를 저질러도, 자신들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런 사람에게 영문도 모른 채 잔인하게 피습당한 사람은 그냥 운이 나빴을 뿐이니 억울해하지 말아야 할까. 이제는 자신의 울분을 해소하기 위해 죄 없는 시민의 목숨을 앗아가는 순간 본인도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해야 한다. 또 이들의 행동을 영웅시 해 테러 예고 글을 올리는 사람도 나이 불문하고 반드시 구속수사 후 내란 예비죄에 준해 처벌해야 한다.


'테러 청정국 대한민국'은 이제 없다. 지금은 국가 체제가 뿌리째 흔들리는 위기다.
국민 모두가 '일벌백계'를 외치는 진짜 이유다.

kwkim@fnnews.com 김관웅 생활경제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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