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뉴스1) 양희문 기자 = "27살 나이에 돈, 꿈, 열정, 일상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사기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성실한 한 청년의 미래와 꿈을 잔인하게 앗아간 사건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부디 이 사건을 정의롭게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9일 오후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304호 법정에 선 27살 청년 최모씨는 자신이 쓴 엄벌탄원서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최씨는 "범인들이 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미필적 고의를 주장하는데, 이는 미필적 고의가 아니다"며 "이들은 타인이 피땀 흘려 번 돈을 쉽게 갈취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범죄단체를 꾸려 사기를 저질렀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이번 피해로 사회초년생인 저는 큰 빚을 지게 됐고, 정신적 피해도 상당하다. 그렇다고 형편이 어려워진 제가 형편이 나아지고자 미필적 고의로 범죄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지 않느냐"며 눈물을 훔쳤다.
최씨에게 사기를 친 보이스피싱 조직은 주식리딩 투자로 손해를 본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손실을 가상자산으로 보상해준다며 돈을 뜯어내는 일당이다.
이 조직은 소비자보호원과 금융감독원 산하의 투자그룹 피해보상팀 직원이라고 사칭하며 피해자들을 속였다.
이후 거래가 불가능한 가짜 가장자산 테더(USDT)를 지급하고 이를 현금화하는 데 공인서가 필요하다며 피해자들로부터 인증서를 받은 뒤 이를 이용해 비대면 대출을 받아 대포계좌로 송금 받는 수법으로 돈을 편취했다.
사건을 맡은 경기 남양주남부경찰서는 6월 중순 서울 강남구 한 사무실을 급습해 일당을 검거했다. 이 조직은 말레이시아로 사무실 이전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검거가 어려울 수 있었다.
결국 조직은 지난 4월19일~5월9일 최씨를 포함해 55명에게 약 29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 형사3단독(판사 이민구)은 이날 범죄단체조직·활동, 사기,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된 중국 국적 총책 김모씨(32·여) 등 7명에 대한 첫 심리를 진행했다.
각자의 삶터에서 열심히 살다가 하루 사이 모든 것을 잃어야 했던 피해자 20여명도 재판을 보기 위해 긴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달려왔다.
피해자들로 가득 찬 법정에서 김씨 등은 고개만 숙일 뿐 묵묵부답이었고, 변호인도 다음 기일에 입장을 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어떠한 얘기도 듣지 못했다는 답답함에 피해자들은 작은 소리로 욕설을 내뱉으며 분노를 쏟아내기도,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한 피해자는 "시간 끌려고 손쓰는 거잖아요. 저희는 인생이 다 망가진 사람인데…이게 무슨 X판이에요. 쓰레기장에 다 넣어야 해요. 이 사람들 처벌받고 나와도 그 돈 다 갚게 해주세요"라고 외치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이 판사는 "피해자분들이 많이 힘들어 하는 사실을 알고 있다. (피고인들이) 형사처벌을 받는다고 돈을 갚아야 할 책임은 없어지지 않는다. 돈 갚는 부분은 법적으로 따로 진행할 수 있으니 그 부분을 알고 계시면 좋을 것 같다"며 피해자들을 달랬다.
재판부는 오는 25일 속행 공판을 열고 공소사실에 대한 변호인 측의 주장을 듣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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