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전국

"뻥 뚫린 시장통, 천장엔 쿨링시스템… 대형마트보다 쾌적하네요" [길 위에 장이 선다]

김원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8.13 18:08

수정 2023.08.13 18:08

(16) 청주 육거리종합시장
하루 2만명 발걸음 전국 5대 전통시장 우뚝
조선 후기 무심천변 땔나무·우시장 서던 곳
시장 중심부 '팔각형 남석교’ 새 랜드마크로
청주육거리종합시장 주출입구에 설치된 전통기와 지붕 문주 (門柱).
청주육거리종합시장 주출입구에 설치된 전통기와 지붕 문주 (門柱).
【파이낸셜뉴스 청주=김원준 기자】 지리한 장마가 끝나고 섭씨 35도의 가마솥 더위가 십 수일째 이어진 지난 6일 오후 충북 청주시 상당구 석교육거리 대로변. 도로 건너편으로 전통 기와 지붕 모양의 거대한 조형물 위에 '육거리종합시장'이라고 쓴 간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처마 밑에 원색의 청사초롱을 달아 전통 미를 한껏 살린 이 곳은 청주 대표 명소 육거리종합시장의 주출입구다.

입구부터 좌판들로 빼곡한 여느 전통시장과는 달리 넓직한 통로가 시장 안쪽으로 시원하게 뻗었다. 방문객들이 많은 주말이지만, 자전거 두어 대가 사람들 사이로 지나다닐 정도로 시장통이 여유롭다. 시장 초입 청과상에서는 매대 앞 쪽을 차지한 잘익은 복숭아와 자두, 참외, 수박 등 여름 과일이 단내를 풍긴다. 청과상 맞은편 어물전에서는 손님과 상인의 흥정이 한창이다.


시장 안쪽으로 몇 걸음 옮기자 후덥지근한 바깥 공기와는 사뭇다른 상쾌함이 느껴진다. 아케이드 지붕아래 '쿨링 포그(Cooling Fog)'가 내뿜는 시원한 물안개가 얼굴에 와닿는다.

골목 중간쯤 생과일주스 가게 앞은 빙수 한 잔에 더위를 잊으려는 사람들로 북새통다. 대형 약재상 옆 정육점 주인은 고기를 잘라 포장하느라 손길이 분주하다. "떨이~떨이~"를 외치던 한 야채 노점상은 파장하려는 듯 '1000원에 가져가라'며 양손에 든 양상추 두 개를 불쑥 내민다.

1973년 충북 청주 상당구 석교동육거리 모습. 왼쪽 블럭이 육거리시장이다.
1973년 충북 청주 상당구 석교동육거리 모습. 왼쪽 블럭이 육거리시장이다.
청주육거리종합시장 메인 골목. 다른 전통시장에 비해 시장통이 넓은편이다.
청주육거리종합시장 메인 골목. 다른 전통시장에 비해 시장통이 넓은편이다.

■팔각형 남석교 조형물 새 랜드마크

안쪽으로 100여m쯤 들어왔을까. 자동차 두어 대는 너끈히 지날 정도의 넓직한 사거리가 펼쳐진다. '임금 왕(王)'자 형태로 형성된 육거리시장의 중심부다. 천장에는 흑백 돌다리 사진이 붙은 팔각형의 대형 구조물이 걸렸고, 바닥에는 둘레에 '육거리종합시장'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지름 1.5m남짓의 원형 동판이 박혀있다. 동판은 육거리시장의 상징인 남석교가 묻힌 지점을 표시한다. 남석교는 국내에서 길이가 가장 긴 돌다리로 고려시대에 놓였다. 너비 4.1m에 길이 80.5m로, 돌기둥을 세운 뒤 널빤지 모양으로 다듬은 화강석을 대청마루 놓듯 이어놓은 모양새로 지어졌다. 1906년 청주 무심천 대홍수로 물길이 바뀐 뒤 남석교 바닥에는 점차 흙이 쌓여 다리로서의 기능을 잃었다. 일제는 1932년 청주 석교동 일대 둑 공사를 하면서 다리를 흙으로 덮어버렸다. 한국관광공사 글로벌명품시장 육성사업단은 지난 2018년 남석교가 묻힌 이 곳에 팔각형의 라이트 캔버스를 설치, 육거리시장의 새 랜드마크로 탄생시켰다.

이병수 청주시문화산업진흥재단 문화도시본부장은 "1500년 역사문화도시 청주만의 로컬문화와 스토리텔링이 집약된 곳이 육거리시장"이라며 "매력적 콘텐츠 개발과 남석교 복원 등 획기적인 전략을 통해 K-관광의 새로운 문화관광거점으로 도약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청주육거리종합시장 메인 골목. 다른 전통시장에 비해 시장통이 넓은편이다.
청주육거리종합시장 메인 골목. 다른 전통시장에 비해 시장통이 넓은편이다.
청주육거리시장 중심부에 설치된 팔각형의 라이트 캔버스와 원형동판. 이 곳은 국내에서 가장 긴 돌다리인 남석교가 묻힌 지점이다. 사진=김원준 기자·충북도 제공
청주육거리시장 중심부에 설치된 팔각형의 라이트 캔버스와 원형동판. 이 곳은 국내에서 가장 긴 돌다리인 남석교가 묻힌 지점이다. 사진=김원준 기자·충북도 제공

■먹자골목엔 '전 거리'…노포 맛집 즐비

시장 구경도 식후경. 곧바로 발길을 옮긴 곳은 전통시장의 '핫플' 먹자골목이다. 먹자골목은 주출입구 오른쪽에 나 있다. 입구 지붕 '먹거리 골목'이라고 쓴 간판에는 주걱을 들고 함박웃음을 짓는 마당쇠 캐릭터가 정겹다. '청주의 맛집은 다 모였다'고 할 정도로 육거리시장에는 맛집이 널렸다. 골목으로 몇 발짝 들어서자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양쪽으로 늘어선 전집들에서 새 나오는 냄새다. 육거리시장 먹자골목의 테마 구역인 전 골목이다.

기름 자박한 넓은 철판에 반죽을 펴는 상인 아주머니의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철판 앞 매대에는 번지르르 색깔 고운 온갖 종류의 부침개가 다소곳이 쌓여있다. 김치전부터 두부전에 동그랑땡, 호박전, 깻잎전, 버섯전, 동태전, 꼬치전 등등. 이름 모를 전들도 수두룩하다. 한 가게 안에는 손님 서넛이 원탁에 둘러앉아 부침개를 놓고 막걸리를 주고받는다. 전집 끄트머리 쯤엔 대기줄이 늘어섰다. 요즘 각종 매스컴을 타면서 전국구 맛집으로 뜬 '소문난 만두'다. 쫄깃한 만두 피에 육즙 가득한 천연 만두 소로 '식객'들의 입맛을 사로 잡고 있다. 국내 최고의 대기업과 은행에 다니던 젊은 부부가 '꿈의 직장'을 내던지고 가업을 승계한 것으로 알려져 유명세가 더하다.

먹자골목 외에도 육거리시장에는 대를 잇는 노포 맛집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시장 북쪽 골목에 자리한 '금강설렁탕'은 시장의 터줏대감. 중소벤처기업부의 '백년가게'에도 선정된 이 집은 50여년에 걸쳐 내려오는 씨 국물을 사용해 한결같은 맛을 낸다. 1980년대 '갬성'이 돋는 육거리시장의 대표 맛집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다녀가기도했다.

잡냄새없는 구수한 국물이 일품인 '새가덕순대'와 '서민갑부'·'백종원의 3대 천왕' 등 TV프로그램에 소개되며 널리 알려진 '꼬마족발'도 육거리시장과 수 십년을 동고동락했다. 먹거리 골목을 따라 똑바로 걷다보면 의류거리가 나온다. 골목 좌우를 가득메운 옷가게에는 갓난아기 옷부터 중고 구제의류까지 형형색색의 옷가지가 걸려있다. 발걸음을 멈추자 가게 주인이 "그 거 시원하고 좋아요"라며 굳이 옷가지를 들어보인다.

■전국 5대 시장 명성…하루 2만명 방문

육거리시장은 전국 5대 전통시장으로 꼽힐 만큼 메머드급이다. 사방에 흩어져 있던 12개의 시장이 합쳐져 자연스럽게 형성된 중부권 최대 전통시장이다. 전체 면적은 총 9만9000㎡(옛 3만평)에 입점 점포수는 1200여곳, 종사자수는 3300여명에 이른다. 하루 2만명 이상의 방문객이 찾고, 연매출액은 3000억원이 넘는다.

시장은 모두 10개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지난 1999년 구역별로 난립했던 9개 상인회를 연합회로 결성, 현재 10개 상인연합회를 운영중이다. 그러나 의류거리를 제외하고는 구역별로 특화된 품목을 취급하지는 않는다. 한 구역에 여러 품목의 상점들이 섞여있는 자연발생적 시장이다. 육거리시장은 다양한 품목을 취급하는 시장으로도 유명하다. 없는 것 빼놓고 다 있다. 농·특산물은 물론 농기구와 건어물, 식료품, 육류, 축·수산물, 혼수, 한약재, 그릇, 의류, 잡화 등 웬만한건 모두 구할 수 있다.

육거리시장에서 45년째 가방가게를 운영하는 반광환씨(68)는 "1978년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 월세가 2만원이었는데 지금은 100만원이 넘을 만큼 시장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면서 "전통시장이 예전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애정을 갖고 찾아주는 손님들이 있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충북선 연장 개통으로 번성누려

육거리시장의 태동은 조선 후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부터 활발한 거래가 이뤄졌던 청주읍성 남문 밖 청주 장(場)은 당시 9개의 장이 운영될 정도로 활성화돼 있었다. 무심천변에 우(牛)시장과 농산물, 땔나무 장사가 있었고, 국밥집과 대장간 등이 있었는데, 이 것이 육거리시장의 시초다. 과거 청주 우시장은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큰 규모를 자랑했다. 지금도 '축산물' 간판을 내건 가게들이 유난히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1905년 경부선 철도 개통으로 상권이 막 살아나던 이듬해인 1906년 대홍수로 청주 장이 물에 잠기면서 장터는 400여m남쪽인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 때를 기점으로 보면 육거리시장은 117년의 역사를 지녔다.

영남과 호남,충청도의 물자가 모여드는 중심지에 위치한데다 충북선이 연장 개통하면서 시장은 날로 번성했다. 육거리시장이라고 불리기 시작한 때는 1970년대 초반. 당시에는 '육거리 시장에서 돈을 못벌면 아무데서도 벌 수 없다'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로 호황을 구가했다. 육거리는 여섯 개의 길이 만나는 곳에 있어 붙은 이름이지만, 두 갈래 길이 시장으로 연결돼 사실은 사거리다. 상설시장으로 자리잡은 지금도 2일과 7일에는 어김없이 오일장이 선다. 새벽에는 '도깨비시장'도 열린다. 오전 5~8시 3시간 동안 열리며 농민들이 직접 생산한 신선한 농산물을 직거래한다.

■파이낸셜뉴스 국토디자인대전서 장관상

우리나라 전통시장 가운데 아케이드 지붕이 가장 먼저 설치된 곳이 바로 육거리시장이다. 지난 2002년 전국 전통시장 최초로 육거리 시장에 아케이드가 설치됐다. 그만큼 시장 현대화에 가장 먼저 눈을 떴다. 2003년에는 전국 처음으로 시장 상품권 발행하며 전국 전통시장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기도 했다. 특히 '일일 테마가 있는 거리'사업으로 무질서한 간판을 개성있게 바꾸고 가로환경도 깨끗하게 가꿔 파이낸셜뉴스와 국토교통부가 공동개최한 '2016국토경관디자인대전'에서 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금도 시설 개선사업과 다양한 시장 활성화 프로그램은 계속 추진중이다. 최근에는 노출전선 정비와 화장실 및 고객지원센터 리모델링, 쿨링 포그 분무기 설치를 마쳤고, 현재는 청주시가 대형버스와 승용차 80여대를 수용할 수 있는 제 3주차장을 건설중이다.


성낙운 청주육거리종합시장 상인회장은 "시장 현대화사업과 함께 젊은 고객을 유인하기 위한 이벤트와 볼거리 마련에 노력하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찾고 있는 만큼 상인들에게 간단한 외국어 소통 교육도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kwj5797@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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