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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원죄 없다? 한은 "신흥국도 자국통화로 대외자본 조달 충분"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8.14 13:19

수정 2023.08.14 13:19

'신흥국 원죄 가설' 맞지 않다…신흥국도 채권시장 확대 등으로 대외자본 조달
물가안정목표제 도입도 해외투자자의 신흥국 채권시장 유입에 기여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사진=뉴스1
ⓒ News1 김초희 디자이너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신흥국의 채권시장 규모가 커지고 물가안정성이 제고되면 선진국 대외자본의 채권시장 투자가 늘어난다는 분석이 나왔다. 신흥국도 충분히 자국통화로 대외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한바다 과장과 인천대학교 오태희·이장연 교수는 14일 'BOK 경제연구'에 실린 '신흥국 원죄의 소멸 원인에 대한 실증 연구'란 논문을 통해 '원죄가설'의 유효성에 관해 분석한 결과 이같이 나왔다고 밝혔다.

원죄가설이란 1999년 버클리대 배리 아이컨그린 교수와 하버드대 리카르도 하우스만 교수가 처음 주장한 것으로, 신흥국은 자국통화로 대외자본 조달이 불가능한 원죄(原罪)를 갖고 있다는 내용이다.

이 가설은 신흥시장국의 대외자본 조달의 구조적 취약성을 설명하는 이론으로 학계 및 정책당국 모두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한바다 과장은 "원죄가설은 신흥국은 해외에서 돈을 빌릴 때 자국통화로 빌리지 못한다는 것, 이 제약은 신흥국 자체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 못하는 성경의 원죄와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며 "이로 인해 신흥국은 지속적으로 금융불안에 시달려야 한다는 설명"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원죄가설의 정당성에 의구심이 제기됐으며 실제로 2000년대 중반 이후 선진국 투자자들이 신흥국 국채시장(신흥국 통화 표시 채권)에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원죄의 소멸'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한 과장은 "우리나라가 개도국으로 분류됐던 2000년대 적지 않은 외국인 자본이 채권과 주식시장에 들어왔다"면서 "이는 원죄가설에 반하는데, 이로 인해 원죄 소멸에 관한 논의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논문은 2005∼2019년 한국을 포함한 21개 국가 대상 패널 회귀분석 결과 국채를 중심으로 한 신흥국 채권시장 발달이 선진국이 신흥국 통화표시 채권 투자를 늘린 주요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실증분석에서는 공공부문 채권시장 규모와 외국인 보유 신흥국 통화표시 채권 잔액이 강한 양의 관계를 갖는 것으로 파악됐다.

논문은 "신흥국 채권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유동성이 좋아짐에 따라 신흥국 채권시장 투자 매력도가 높아진 데 기인한 것으로 사료된다"고 말했다.

2000년 이후 여러 신흥국이 물가안정 목표제를 도입, 물가안정성이 제기된 점도 대외자본의 신흥국 채권시장 유입 확대에 기여한 것으로 평가했다.

논문은 "신흥국 채권 보유 해외투자자들은 해당 국가의 통화가치 변동에 민감해 중앙은행 신뢰성을 중시하게 된다"면서 "실증분석 결과는 해외투자자들이 물가안정을 통화당국 신뢰성 평가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증거로 해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JP모건이 2005년부터 발표한 정부 채권 신흥국 지수(GBI-EM)도 글로벌 자본의 신흥국 통화표시 채권에 대한 투자 증대에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글로벌 자본이 신흥국 채권투자 시 GBI-EM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패시브 전략을 적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논문은 신흥국 주식시장 자본유입을 대상으로 한 실증분석에서도 시장 규모 및 유동성이 해외자본 유입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주식시장 규모(주식시가총액/국내총생산)와 외국인 보유 주식 잔액 간에 강한 양의 상관관계가 관찰됐고, 성공적인 물가안정목표 운영 또한 해외자본 유입을 촉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은 "자본시장 육성을 통해 유동성을 높이고, 물가안정을 통해 중앙은행 신뢰성을 확보하면 신흥국도 충분히 자국통화로 대외자본을 조달, 원죄가설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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