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에너지 불변 법칙으로 본 수능 변별력 확보 방안은[수담활론]

김영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8.19 06:00

수정 2023.08.19 06:00

[파이낸셜뉴스] [수담활론(手談闊論)]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글(수담)을 통해 우리사회 곳곳의 이슈들을 파악하고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마련됐습니다. <편집자 주>
에너지 불변 법칙으로 본 수능 변별력 확보 방안은[수담활론]

대한민국에서는 매주 크고 작은 사건이 꼭 하나씩은 터진다. 사건이 터지면 국민, 학계 전문가, 정부, 정치권, 언론은 개탄도 하고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안한다. 그러다 또 다른 사건이 터지면 이전 사건은 잠시 또는 영원히 우리 기억에서 사라진다.

그런 면에서 최근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킬러 문항이 세간의 관심을 끌었었다. 고교 시절의 필자는 동경대학교 입시 수학문제나 물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적은 있었지만 킬러 문항으로 고생한 적은 없다(고 생각했다).

서울대학교 산학협력재단(현 산학협력단) 본부장으로 근무하던 중 2007년 세계 최대 특허 관리 회사인 인텔랙추얼 벤처스의 한국 지사 초대 사장으로 취임했다.
국내에서는 인텔랙추얼 벤처스가 국내 제조업체들을 괴롭힐 '특허괴물'이라 의심했고,필자는 특허괴물의 두목 또는 '수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한가한 주말 조간신문을 읽던 필자의 눈은 사회면에 실린 한 칼럼에서 멈췄다. 칼럼의 제목은 '특허괴물은 무엇인가?'였다. 스스로도 특허괴물이 무엇인지 아리송할 때였기에 글자 하나하나에 집중해 읽었다. 그러다 마주친 칼럼의 마지막 문장은 '위의 내용을 읽고 특허괴물이 왜 탄생하였는지 설명하시오'였다.

알고 보니 그건 칼럼이 아니라 조간신문 편집진이 나름 신경써서 준비한 수능 필기시험의 예상 문제였다. 아주 일반적이고 이해도도 낮은 내용이었지만 특허의 '특'자만 아는 고교생들이 제대로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아마 칼럼의 내용을 나름의 논리에 따라 전개해 도출할 수 있는 표피적 정답을 추론하는 것이 출제자의 의도가 아니었나 짐작된다.

교과 과정보다 크게 줄어든 수능 수험 범위
에너지 불변 법칙으로 본 수능 변별력 확보 방안은[수담활론]

필자가 보기에 대한민국 대입 시험 제도는 수험생의 능력 증진을 통한 국가 발전 및 수험생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을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그 근거로 필자는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대입 시험 과목을 들고 싶다.

76학번인 필자는 예비고사와 본고사를 치룬 후 대학교에 입학했다. 당시 대학 본고사는 국·영·수, 사회, 과학, 제2 외국어 과목으로 이뤄졌다. 사회는 총 4과목(국사, 세계사, 지리, 윤리), 과학 역시 4과목(물리, 화학, 생물, 지학)이었다. 교련을 제외하면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거의 전 과목이 대학 입시에 반영되었던 셈이다.

반면 현 대입 시험인 수능은 국·영·수, 한국사, 탐구영역 등을 다룬다. 수험생은 사회·과학탐구 영역의 17개 세부 과목 중 최대 2개 과목을 선택할 수 있고 직업탐구 영역의 6개 세부 과목 중 최대 2개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또한 공통필수인 국어에서도 '언어와 매체'와 '화법과 작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수학에서는 '미적분'과 '확률과 통계' 중 하나를 고를 수 있다.

즉 국내 고교 교과 과정은 그림 (가)와 같이 국어, 수학, 과학, 사회 등 수많은 세부 과목으로 이뤄져 있지만 정작 수험생들이 머리 싸매고 진지하게 준비하는 수능은 그림 (나)와 같이 그 중 일부에 머물게 된다. 따라서 수험생들은 상대적으로 성적이 잘 나오는 과목을 선택하고 까다로운 물리나 숙달에 시간이 소요되는 미적분을 기피하게 된다.

이른바 스카이 대학 동료 교수들이 왜 매년 2월이면 이공계 신입생들을 겨울 방학 중 소집해 미적분을 가르치는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확률과 통계만 공부한 이공계 대학 신입생은 당장 대학 개강 후 이공계 수학을 따라올 재간이 없기 때문이다.

수능에도 적용되는 에너지 불변 법칙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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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우주의 진리를 습득해가는 교육 과정에서 시험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시험의 속성은 변별이 그 목적일 것이다. 변별력은 같고 다름을 가리는 능력이라 하고 시험의 변별력은 시험이 측정하고자 하는 능력을 수험생이 보유하고 있는 지 아닌 지를 효과적으로 가려내는 능력이라 한다.

따라서 자녀를 더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려는 학부모들은 더 많은 재원을 사교육에 투자한다. 단 질 좋은 사교육을 접하는 수험생이 모두 좋은 결과만 얻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도 자연 법칙, 일종의 에너지 보존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에너지(Energy) = 파워(Power) x 시간(Time)'
물리학에서 파워는 일률, 즉 시간 당 성취할 수 있는 일을 의미한다. 이 일률을 시간과 곱하면 에너지가 된다.

수험생 역시 두뇌를 쓰며 일(공부)하고 더 오래 일할수록 더 많은 지식을 쌓아 시험에 대비할 수 있다. 단 수험생의 일률이나 시간에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즉 예외적인 천재들을 제외하면 수험생이 달성할 수 있는 일률에 한계가 있고 수험생이 자지 않고 공부하는 시간 역시 한계가 있다. 따라서 수험생이 시험을 준비하며 쏟아 넣을 수 있는 에너지 총량에도 한계가 존재한다.

현재의 수능은 그림 (다)와 같이 수강생이 충분한 에너지를 투입하는 한 어느정도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시험이다. 즉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한 가운데 수능 과목의 수가 한정되고 문제도 교과 과정 내에서 출제된다. 따라서 과목 당 투입되는 에너지의 양이 증가하기에 학교에서 수업을 제대로 듣고 어느 정도 사교육도 받고 웬만한 에너지를 투입하는 수험생은 문제들의 정답을 도출할 수 있다. 그 결과 시험의 변별력은 낮아지게 된다.

(라)
(라)

그러다 보니 대학교가 요구하는 변별력과 사교육이 추구하는 수익에 의해 탄생한 것이 킬러 문항으로 생각된다. 즉 웬만한 수험생은 풀 수 없는, 그림 (라) 상부에 표시한 악마의 뿔이 바로 킬러 문항이다. 투입되는 에너지의 총량은 일정하고 과목 수효도 여전히 작지만 특정 문제의 높이(난이도)를 비약적으로 증가시켜 사교육을 통해 반복적으로 스킬을 습득한 수험생만 풀 수 있다.

킬러 문항을 풀게 된 신입생들이 추후 제7세대 인공 지능을 개발하고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하며 명왕성까지 일곱 시간만에 왕복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할 수 있다면 납득이 된다.

하지만 킬러 문항은 자기들만의 로직으로 작동하는, 변별력만을 위해 탄생한 사생아이다. 킬러 문항은 수험생의 지적 수준 향상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학문적으로도, 실생활에서도 도움이 안된다.킬러 문항은 단지 학부모 은행 계좌와 사교육 사이의 초고속 일방통행 하이패스일 뿐이다.

수능 변별력 '열쇠'는 과목 수효 확대
정부는 변별력을 유지하면서도 킬러 문항과 사교육에 의한 폐해를 줄이는 방법을 고안 중이라 한다. 하지만 위의 그림 (다)와 같이 에너지 보존 법칙의 결과는 준엄하다. 즉 현재의 고교 교육 과정과 수능 제도에 의하면 킬러 문항 없이 변별력을 창출하기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필자는 킬러 문항과 현행 고교 교육 과정의 대대적인 개편 없이 변별력을 가진 수능을 시행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수능에 출제되는 과목의 수효를 증가시켜 수능이 충분한 변별력을 가지도록 하는 전략이다.

(마)
(마)

혹자는 수능 과목을 증가시키면 수험생들만 더 희생되고 학부모의 사교육 경비만 늘릴 것이라 염려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염려는 기우에 불과하다. 여기에도 에너지 불변의 법칙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고등학교 시험 끝물 세대로 1973년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해 1976년 졸업하였다. 한 학년은 720명이었으며 졸업과 함께 600명이 스카이 대학에 진학했고 나머지 120명 중 절반은 재수 후 스카이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에도 지금과 같이 과외가 있었고 학원도 있었다. 하지만 동창 중 3분의 1 정도는 국영수 과외를, 3분의 1 정도는 국영수 학원을, 나머지 3분의 1은 학교에서 준비한 자습실에서 자습하며 스카이 대학에 진학했다. 그렇다면 자습실에서 자습하던 동창들은 어떻게 스카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을까. 그래도 부유한 집안의 동창들이 과외를 받거나 학원을 다니면 더 유리하지 않았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에너지 보존 법칙 상 시험 과목이 많기에 수험생이 원하더라도 모든 과목을 과외나 학원으로 보충할 수 있는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결국 각각의 수험생은 그림 (바)와 같이 자신에게 최적화된 전략에 따라 대입 시험을 준비했다.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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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례로 이과 수험생은 배점이 15~20점인 수학 문제 1개를 더 풀기 위해 총 배점이 25점인 세계사 또는 지리 교과서 암기를 거의 포기했다. 준비해야 할 과목이 많은 대입 시험은 충분한 변별력을 가졌었고 특정 과목을 잘 하는 수험생은 스카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반면 문과 수험생은 상대적으로 약한 수학, 과학보다 국어, 영어, 사회 과목에 전념해 상대적 우월성을 입증할 수 있었다.

따라서 출제할 수 있는 과목의 수효가 충분했던 출제자들도 변별력을 가진 문제를 쉽게 출제할 수 있었다. 또한 수험생들도 자기 전공에 필수적인 과목을 전략적으로 공부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이공계 대학 신입생들은 미적분, 확률, 통계에 웬만큼 숙달돼야 대입 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필자와 같은 이공계 수험생들이 태생적으로 지리, 윤리, 세계사를 혐오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필자도 지리, 윤리, 세계사에서 100점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했기에 지리, 윤리, 세계사 과외나 학원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교육 전문가들은 필자의 경험담이 지나간 20세기의 '라떼(나때는 말이야)'이기에 당연히 이를 무시하려 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수능에서의 변별력은 수험생이 준비해야만 하는 시험 과목 수효(제1 변수)와 수험생이 투입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제2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이다.

특히 유의할 점은 변별력을 결정하는 제2 변수인 에너지(의 최대치)는 거의 상수라는 것이다.
그 결과 현재 수능 제도에서 변별력을 증가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전략은 수능 과목 수효의 증가라 생각된다. 수능 과목 증가는 킬러 문항의 태생적 근거를 말살시킬 것이고 학부모가 감당해야 할 사교육비도 감소시킬 것이며 그 결과 사교육의 폐해도 어느 정도 경감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수능 과목 수효를 전략적, 효율적으로 증가시키면 더 많은 수험생들을 고교 학업 과정으로 유인해 수포자도 줄일 수 있을 것이고 21세기 다이나믹 코리아가 필요로 하는 후학들을 더욱 효율적으로 양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심영택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객원교수 및 ㈜퍼스트페이스 공동대표

※이 글은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이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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