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갈수록 앞당겨지는 사교육 출발선…유아는 영유·초등은 의대반

윤홍집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8.22 12:57

수정 2023.08.22 13:05

['사교육 공화국' 대한민국]
교육부 관계자가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소재 유아 영어학원을 대상으로 서울시교육청과 합동점검을 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교육부 관계자가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소재 유아 영어학원을 대상으로 서울시교육청과 합동점검을 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파이낸셜뉴스]국내 사교육의 출발선이 갈수록 앞당겨지고 있다. 초등학교 입학 전후로 간단한 학습지를 푸는 수준은 이미 넘어선 지 오래다. 학부모가 거액을 들여 영유아는 유아 영어학원(영어 유치원), 초등학생은 의대 입시반에 다니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사교육비 경감 의지를 표명하고 나선 가운데 사교육의 출발점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초등 입학 전부터 4~5시간씩 영어공부
22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유아 영어학원이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한다고 보고 편·불법 운영에 대응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소재 유아 영어학원을 대상으로 서울시교육청과 합동점검을 실시하기도 했다.

강남 대치동 등에서는 한달 등록비가 100만원을 훌쩍 넘는 영어 유치원이 성행해왔다. 이들 학원에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인 5~7세를 대상으로 하루 4~5시간씩 영어, 예체능, 한글 등을 교습한다. 이르면 4세부터 영어 유치원에 다니기도 하고, 3세부터 영어 유치원에 대비해 과외를 받는 사례까지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3세부터 과외를 받는 이유는 월 100만원을 넘게 지불한다고 해도 아무나 영어 유치원에 등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치동에서 이름 난 영어 유치원은 입학 전 '레벨 테스트'가 필수다. 레벨 테스트에선 영어 발음에 대한 유아의 이해도 등을 따진다. 학부모 입장에선 초등학교 선행학습을 위한 선행학습을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현행법상 유아 영어학원은 공교육 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영어 유치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해선 안된다. 교습 과목을 영어로 신고한 뒤 수학·예체능 등을 가르치고 교습비를 부풀리는 것도 불가하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교육부는 지난 3~5월 전국 유아학원 847곳을 전수조사해 영어 유치원 등 명칭 위반을 한 사례 66건, 교습비를 초과징수한 사례 62건을 적발했다. 전수조사에 따르면 영어 유치원의 월 평균 학원비는 176만원에 달했다. 이는 사립유치원 한달 평균 비용인 약 55만원보다 3배 이상 비싼 금액이다.

학부모들은 영어 유치원에 대한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지만 감수할 가치가 있다는 입장이다. 6살 자녀를 유아 영어학원에 보내고 있다는 이모씨는 "시작 단계부터 앞서 나가야 초중등까지 기세를 이어갈 수 있다"라며 "영어 유치원과 일반 유치원은 교육의 질이 다르다. 공교육 수준이 사교육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미적분 배우는 초등학생…공교육은?
초등학교에서는 때이른 입시 준비로 의대입시반 광풍이 불고 있다. 의대·치대·한의대 등 의학계열 학과의 인기가 치솟으면서 초등학교 입학부터 준비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학부모 사이에서 '영어 유치원-초등 의대반-자사고'는 의대 입학에 가장 가까워지는 '로얄로드'로 꼽힌다.

이들 학원가에선 초등학교 때 수학을 다져놓지 않으면 의대는 꿈도 못꾼다는 말까지 나온다. 의대 입학을 위한 학생·학부모의 경쟁이 점점 치열해져 수능 수학영역 미적분·기하에서 초고득점을 받아야만 승산이 생긴다는 이유에서다.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의대에 준비하는 연령대가 갈수록 낮아지는 추세"라며 "학부모가 나서서 초등학교 입학전부터 의대 입시를 위한 로드맵을 그리고 이에 맞춰 움직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 출발선이 점점 앞당겨지기 때문에 중학교 때 시작하면 늦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유아 공교육을 강화해 사교육 수요를 흡수한다는 구상을 그리고 있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연계하는 이음학기를 신설해 초등학교 적응을 돕겠다는 방안도 최근 발표됐다.

하지만 교육계 안팎의 반응은 미덥지근하다. 정부가 나서 초등학교 입학 전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이 선행학습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사인이 될 수 있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신소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팀장은 "학부모에게는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대비해야 한다는 시그널로 전해질 가능성이 크다"라며 "결국 조기 선행교육만 강화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 팀장은 공교육을 보완하기에 앞서 입시제도부터 고쳐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공교육이 사교육을 흡수하기 위해 현행 입시에 최적화돼 수업을 한다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까"라며 "공교육은 상급 학교에 아이를 진학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학생과 학부모에게 불안감을 심어주는 대입제도를 바꾸고, 대학의 서열화를 개선하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