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사설

[fn광장] 가르친다는 것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8.22 18:05

수정 2023.08.22 18:22

[fn광장] 가르친다는 것
8월 헝가리국립무용대학교에서 주관하는 여름특강에 초청되어 2주간 세계 각국의 무용 전공학생들을 가르치는 경험을 했다. 그동안 해외에서 공연한 적은 많았지만 외국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처음이었는데 시대가 변하여 세계 각국의 학생들과 발레라는 이름으로 자유롭게 만나고 다양한 정보도 쉽게 접하게 되어 해외에 있는 발레학교에서 유학, 특강, 워크숍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지금의 환경은 더 이상 놀라운 것이 아니게 되었다.

30년 전 1992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에 유학을 갔던 때와 지금은 너무나 다르다. 바가노바 발레아카데미는 1738년 설립된 280년 전통을 가진 학교로, 바가노바 메소드의 체계적인 시스템을 바탕으로 1~8학년의 단계별 교육이 진행되며 학년별로 테스트에 합격해야만 고학년으로 진학할 수 있는데 매년 3000명 넘는 10세 미만 아이들이 지원하지만 60명 정도만 입학하여 졸업 시기에 25명가량만 남는 어려운 커리큘럼을 가진 학교이다. 어렸을 때부터 러시아 무용수들의 발레비디오를 보며 꿈을 키운 나는 열네 살 때 춤 하나만 보고 가족과 친구들도 없는 곳으로 홀로 유학을 떠났고, 1년 정도 되자 향수병과 사춘기가 한꺼번에 와서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 러시아는 사회주의 체제의 막이 내리고 자본주의 체제로 이행하는 과도기 상태로 휴대폰은 물론 인터넷, 이메일도 없어서 현재처럼 즉각적으로 연락하기 힘들었다.
전화 연결도 힘들어 1주일에 한 번 전화 교환원을 통해 한국에 있는 가족과 통화를 했고, 편지나 소포를 주고받는 데도 무척 오래 걸렸다. 겨울에는 영하의 엄청난 추위에도 더운물이 나오지 않아 찬물로 손세탁을 했고, 식료품 같은 것도 힘들게 샀는데 빵을 사기 위해 2시간을 기다렸으나 내 앞에서 모두 소진되어 허탈하게 되돌아 와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뛰어난 학생들 사이에서 이방인으로 혼자 견뎌야 하는 고독감이었으며, 그런 힘들었던 시간이 나를 강하게 만든 것도 있지만 가슴 한편에 작은 상처가 되어 남아 있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30년 전 학생인 나는 현재의 학생들과는 다른 환경을 겪었다. 그 당시 러시아나 한국의 선생님들은 도제식 교육의 영향으로 순종적인 학생과 엄격한 선생의 전통을 고수하여 상하 관계의 엄격한 규율이 있었다.

현대의 발레교육은 시대 흐름에 맞게 변화했지만 몸과 행위 위주의 실기로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보니 지식을 가르치는 수업과는 다르다. 발레 수업의 특성상 학생들의 잘못된 자세를 손으로 직접 만져서 수정해주는 행동이 지금은 조심스러워 항상 먼저 물어보고 하게 되었고, 학생의 자율성과 주도적 참여로 결과를 만들어내는 수업이 많아졌다.
과거보다 풍요로운 사회적 환경과 자유로운 교육 방식으로 순종적인 학생과 엄격한 선생님이 당연시되었던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며 서로의 책임과 의무를 바탕으로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어 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학생들은 스승을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꿈을 향해 노력하며, 스승은 그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올바르게 이끌며 인생의 계단을 좀 더 올라간 위치에서 빠른 길을 알려주기보다는 스스로 올라갈 수 있는 능력을 기르기 위해 수평선상에서 진심을 다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인생 선배로서 선생이 되길 바라본다.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