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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팬 톡] '가라앉던 거함' 히타치는 어떻게 살아났나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8.29 18:24

수정 2023.08.29 18:24

[재팬 톡] '가라앉던 거함' 히타치는 어떻게 살아났나
일본 대표 기업인 히타치 제작소는 '잃어버린 30년'을 상징하는 기업이었다. 히타치 제작소는 전자제품, 반도체, 컴퓨터, 디스플레이, 통신기기, 조선, 의료기기 등 돈 되는 모든 것을 만들고, 팔던 '문어발' 회사였다. 한때는 자회사 숫자만 400여개에 달했다. 미국 포브스는 세계의 기업 베스트 2000에 일본 기업으론 유일하게 '복합기업'으로 분류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기업 중에서는 LG전자와 절친이었다. LG전자는 전신인 금성사 시절인 1960년대 말부터 히타치와 제휴했다.
LG전자와 합작한 외국계 법인인 'HLDS'(히타치-LG 데이터스토리지)를 통해 CD, DVD, 블루레이를 공급했다.

히타치는 20세기 말쯤부터 여러 일본 기업들이 그랬듯 정보기술(IT) 혁명의 물결에 밀려났다.

2001~2010년에는 누적 적자가 1조엔까지 눈덩이처럼 불었다. 2008년 7880억엔 적자 기록은 일본 제조업 역사상 최대였다.

'가라앉던 거함'은 사업 분야를 제조업 중심에서 IT 중심으로 대대적인 사업재편에 돌입했다. 구조조정은 성공적이었다. 들쑥날쑥했던 실적은 2011년 이후 지진, 환율변동에도 매년 9조엔 이상의 매출과 흑자를 유지했다. 히타치는 최근 4분기 연속 순이익 5000억엔 돌파가 유력시된다. 회의적이던 시장도 '거함의 부활'을 확신하며 주가는 고공행진 중이다.

'못난 일본기업'의 대표 격이었던 히타치의 부활에는 어떤 디테일이 있었을까. 획기적인 히트상품이 나오면서 반전에 성공한 것은 아니다. 3·4분기 매출 전망치는 8조8000억엔으로 30년 전에 비해 1조엔이 조금 넘는 정도다.

회사는 오히려 몸집 불리기를 버리고, 이전에는 일본에서 금기였던 적극적인 사업매각을 통해 살 길을 찾았다. 일본에서는 회사를 공동체로 간주해 인재와 사업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금도 뿌리 깊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환경과 최첨단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최근에는 이런 일본식 자전주의가 문제로 지적됐다.

히타치도 낡은 생각을 과감히 폐기한 게 결정적 한 수였다. 히타치화학과 히타치건설기계 등 22개나 됐던 상장 자회사는 매각과 흡수로 올해 3월 모두 정리됐다. 현재 히타치를 이끄는 것은 파워그리드·철도·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X) 등의 인수 사업이다. 총액 3조엔에 이르는 일련의 매수를 지휘한 히가시하라 도시아키 회장은 "인수합병(M&A) 없이는 지금의 히타치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히타치의 성공은 일본 산업계의 패러다임을 전환시켰다.
차량용 반도체 기업인 르네사스와 미쓰비시중공업 공작기계(니덱에 인수)가 히타치의 뒤를 밟아 성공적인 M&A 사례를 남겼다.

이제 히타치는 새로운 이야기를 써 가고 있다.
엔저로 살아난 일본의 무수한 '히타치들'이 '다시 찾은 30년'을 준비 중이다.

km@fnnews.com 김경민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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