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간토대지진 100주년, "조선인 학살 인정 안하는 日 역사 왜곡" [김경민의 도쿄 혼네]

김경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8.31 10:26

수정 2023.08.31 10:26

일본 정부 "사실 관계 파악할 수 있는 기록 발견 안 됐다"
일본 교과서에도 실린 간토대학살 사건
도쿄신문 "역사 직시하지 않으면 비판 부를 것"
간토대학살로 희생된 조선인의 시신. 독립기념관 제공
간토대학살로 희생된 조선인의 시신. 독립기념관 제공

【도쿄=김경민 특파원】 올해 9월 1일은 간토대학살 100주년을 맞는 가운데 1923년 간토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日정부 '우리는 모르는 100년 전 일'

도쿄신문은 31일 간토대학살과 관련해 일본 정부가 "사실을 의문시하거나 부정하는 말이 끊이지 않아 역사 왜곡이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신문은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 관방장관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평론을 피하는 모양새였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마쓰노 장관이 '반성'과 '교훈'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며 "부의 역사를 직시하지 않으면 비판을 부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날 마쓰노 장관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에 대한 정부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정부 조사에 한정한다면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이에 신문은 마쓰노 장관이 '조선인 학살'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고, 추가 조사에도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고 평가했다.


고이케 유리코 도쿄 도지사는 올해도 간토 대지진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추모문을 보내지 않을 방침이다.

그는 취임 이듬해인 2017년부터 7년 연속 추도문을 내지 않았다. 극우였던 이시하라 신타로 전 도쿄도지사까지 포함해 역대 도지사는 모두 추모문을 보냈다. 하지만 고이케 도지사는 지난달 추도식 주최 기관의 추도문 요청을 또 다시 거절했다.

간토학살100주기추도사업추진위원회 관계자 등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간토학살 국가책임 인정하라’ 간토학살 100주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민사회종교단체가 모여 결성된 추진위는 간토대학살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간토제노사이드 국제학술회의 개최, 100주기 한국 추도문화제 개최, 일본 현지 추도행사 참가 등을 주요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뉴스1
간토학살100주기추도사업추진위원회 관계자 등이 지난 23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 간토학살 국가책임 인정하라’ 간토학살 100주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시민사회종교단체가 모여 결성된 추진위는 간토대학살진상규명 및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과 간토제노사이드 국제학술회의 개최, 100주기 한국 추도문화제 개최, 일본 현지 추도행사 참가 등을 주요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뉴스1

교과서에도, 정부 보고서에도 생생한 기록

후지모토 야스나리 일본 평화포럼 대표는 "일본은 9월 1일을 '방재의 날'로 기리지만 많은 조선인이 군인 경찰 민간인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며 "기록이 없다는 식으로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일본 교과서에도 실려 있다. 일본 정부 중앙방재회의에서도 2009년 "학살이라는 표현이 타당하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했다.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는 "국제연맹 상임이사국이던 일본은 당시 외무성이 이 문제를 조사해 중국에 대해 20만엔 배상을 준비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이는 당시 일본 정부가 국가로서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학살 사실을 외면하는 식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일본 도쿄도 스미다구 아라카와 인근에 있는 간토대지진 한국·조선인 순난자 추도비. 일본 시민단체 봉선화가 2009년 세웠다. 연합뉴스
일본 도쿄도 스미다구 아라카와 인근에 있는 간토대지진 한국·조선인 순난자 추도비. 일본 시민단체 봉선화가 2009년 세웠다. 연합뉴스

"대지진은 조선인 때문" 6천명 대학살

간토대지진은 일본 수도권이 있는 간토 지방에서 1923년 9월 1일 일어났다. 진도 7.9의 지진이 일어나 10만여명이 사망하고, 200만여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당시 혼란스러웠던 일본 사회에는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 '방화를 저지르고 있다', '조선인이 열도를 흔들어 지진이 났다' 등의 유언비어가 삽시간에 퍼졌다.

조선인을 혐오하는 이 같은 헛소문으로 약 6000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과 중국인 800명 이상이 일본 경찰과 군대, 자경단에게 무차별적으로 살해됐다. 이를 간토대학살이라고 부른다.

일본 정부는 유언비어를 믿었던 주민들이 일으켰던 학살이라 정부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2017년 아베 정권은 기록이 없다며 진상 수사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일본의 극우 단체들은 한국인 희생자 수가 부풀려졌으며 당시 한국인들이 실제로 폭동을 일으켰고, 그런 이유로 학살은 정당한 방어라고 주장하고 있다.

간토대지진 100주년을 맞은 내달 1일에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 동경본부가 주최하는 추념식이 열린다. 주일 한국대사관 및 재외동포청이 후원하는 이 행사는 도쿄 중심가 대형 전시장 도쿄국제포럼에서 '제100주년 관동대진재 한국인순난자 추념식'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될 예정이다.

일본에는 '혼네'(本音)와 '다테마에'(建前) 문화가 있습니다.
혼네는 진짜 속마음이고, 다테마에는 밖으로 보여주는 겉마음입니다. 개인보다는 조직·사회적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인들은 좀처럼 혼네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보는 일본은 다테마에의 파편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km@fnnews.com 김경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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