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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은, 절박한 푸틴 덕에 실리-외교 모두 챙겨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07 05:00

수정 2023.09.07 05:00

김정은, 이달 4년 만에 푸틴과 회동 예정...탄약 수출 논의
수출 대금으로 외화나 기술 달라고 할 듯, 바가지 씌울 수도
러시아와 밀착으로 한미일 동맹에 맞서...北 외교 입지 강화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이 2019년 4월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 도착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AP뉴시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이 2019년 4월 25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학에 도착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악수하고 있다.AP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이달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약 4년 만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만나 탄약 수출을 논의한다고 알려진 가운데 양측의 거래 내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탄약을 파는 대가로 외화나 기술 등을 요구하는 동시에 러시아와 동맹을 과시하며 한국과 미국, 일본의 군사 협력에 맞설 계획이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간) 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김정은은 10~13일 사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극동연방대학에서 열리는 8차 동방경제포럼(EEF)에 참석하여 푸틴과 만난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정부는 푸틴이 12일 EEF 본회의에 참석한다고 밝혔지만 김정은과 회담 여부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중국 이어 이란, 결국 북한에게 손 벌려
러시아는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단기전을 예상했다.

토니 라다킨 영국 합참의장은 같은해 12월 연설에서 "러시아는 포탄이 심각하게 부족한 상태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푸틴은 전쟁 기간을 30일로 예상하고 계획했지만 러시아의 총포는 이제 거의 300일 동안 발사되고 있다"고 말했다.

에스토니아 군사정보국은 러시아가 침공 당시 약 1700만발의 포탄을 가지고 있었지만 2022년 말까지 1000만발을 소비했다고 평가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러시아의 이스칸데르 미사일 보유량이 지난해 초에 900발에서 같은해 11월 말에 119발로 줄었다고 지적했다.

서방의 심각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는 첨단 미사일뿐만 아니라 재래식 탄약 생산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는 같은 옛 소련식 탄약 규격을 쓰면서 서방과 대치중인 이웃들에게 연락했다. 중국은 방탄복이나 무인기(드론), 반도체 등 비살상 제품은 기꺼이 내어 줬지만 무기와 탄약 공급은 머뭇거렸다. 미국은 지난 2월에 중국이 러시아에 살상 무기를 주면 강경 대응한다고 경고했고 독일 역시 다음달 비슷한 경고를 보냈다. 러시아와 달리 서방과 무역이 중요한 중국은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려고 노력중이다.

이란의 경우 자폭 드론과 탄약 등을 카스피해를 통해 러시아에 수출하고 있다. 영국 스카이뉴스는 지난 6월 보도에서 러시아가 이란으로부터 야포 및 전차 탄약과 로켓 등을 수입하는 23억원 규모의 계약서를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이란제 탄약으로도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북한산 탄약 구입을 모색하고 있다. 미 정부는 이미 지난해 11월 발표에서 러시아가 민간군사기업 바그너그룹을 앞세워 북한의 탄약을 구입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 5일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우크라이나 전역 어딘가에서 러시아군의 2A36 기아친트-B 152mm 야포가 불을 뿜고 있다.타스연합뉴스
지난 6월 5일 위치가 알려지지 않은 우크라이나 전역 어딘가에서 러시아군의 2A36 기아친트-B 152mm 야포가 불을 뿜고 있다.타스연합뉴스

외화 혹은 기술 달라고 할 듯
영국 BBC는 5일 보도에서 러시아가 북한에게 122mm 및 152mm 포탄을 구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다만 북한의 포탄 재고가 해외 수출이 가능할 만큼 넉넉한 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 2006~2008년 사이 북한 주재 영국 대사를 역임했던 존 에버라드는 북한의 포탄 재고에 대해 "상태가 매우 나쁘다"고 지적했다. 같은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북한에 300곳이 넘는 군수 공장이 있지만 제재로 인해 재료 확보가 어려워 생산 능력이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에버라드는 김정은이 푸틴의 절박한 상황을 알고 있다며 포탄 가격으로 "눈물이 날만큼 높은 가격을 부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 싱크탱크인 아시아태평양전략센터(CAPS)의 데이비드 맥스웰 부소장은 2일 미국의소리(VOA)방송을 통해 북한이 "러시아 루블은 아니겠지만 아마 미 달러나 중국 위안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돈이 아니라 기술을 달라고 할 수도 있다. 맥스웰은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술 이전을 요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올해 2차례에 걸쳐 ICBM 기술을 토대로 정찰 위성 로켓을 발사했지만 2번 모두 실패했다.

또 다른 미 싱크탱크인 랜드 연구소의 브루스 베넷 선임 연구원은 북한이 러시아에게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요구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미 백악관의 존 커비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지난달 30일 브리핑에서 러시아와 북한의 무기 거래를 언급하면서 북한이 포탄 값으로 식량을 요구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해 "그런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

5일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는 러시아가 첨단 기술을 재래식 무기와 바꿔야 할 만큼 위기에 처해 있으며 북한이 현재 상황을 이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정은 입장에서는 첨단 기술을 얻기 위해 해킹을 동원하는 것 보다 푸틴에게 직접 얻는 것이 낫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14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화면 속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술 미사일 생산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연합뉴스
지난달 14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화면 속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술 미사일 생산 공장을 시찰하고 있다.연합뉴스

한미일에 맞서는 외교성과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거래로 물질적 이익뿐만 아니라 외교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지적했다.

WSJ는 김정은이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이후 약 4년 만에 출국해 푸틴과 만날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신문은 김정은 정권이 이번 회동을 팬데믹 극복 사례 및 김정은의 해외 정치력 확대로 포장하여 선동에 이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동시에 한미일 동맹에 맞서는 북한의 입지는 러시아와 밀착으로 더욱 안정될 전망이다.

극동연방대학의 아르템 루킨 교수는 WSJ를 통해 "북한은 진정으로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김정은은 비록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만 한미 동맹이나 미일동맹에 비해 북한이 얼마나 약한지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7월 탄약 구매 문제로 북한을 방문했던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4일 러시아 인테르팍스통신과 인터뷰에서 북한과 합동 훈련에 대해 "당연히 논의 중"이라며 "북한은 이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1953년 정전 이후 다른 국가와 합동 군사 훈련을 한 적이 없지만 최근 한미일 3국이 군사 협력을 강화하면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북한의 리영길 국방상은 지난해 8월 중국 웨이펑허 국방부장(장관)에게 보낸 축전에서 중국군과 합동 훈련을 예고했다. 북한과 러시아, 중국을 포함하여 3국이 동시에 합동 훈련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한편 미국의 람 이매뉴얼 주일 대사는 5일 CNN과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제국을 재건에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지만 그 제국은 북한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가 북한 무기에 기대는 상황에 대해 "초강대국이 원치 않는 처지"라며 우크라 침공이 "얼마나 실패했는지 알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해 WSJ는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 침공으로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며 특히 시베리아와 극동 지역에 노동력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이 이번 거래 이후 해당 지역에 북한 노동자 파견 규모를 늘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지난 7월 27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러시아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왼쪽 첫번째)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 부위원장(왼쪽 세번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div id='ad_body3' class='mbad_bottom' ></div>뉴스1
지난 7월 27일 북한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러시아의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왼쪽 첫번째)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운데)이 리훙중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 부위원장(왼쪽 세번째)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뉴스1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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