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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종범의 정책진단] 정책은 생물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07 18:21

수정 2023.09.08 05:56

정치가 올바른 정책 막아
사전·사후평가 제대로 안해
포퓰리즘에 '방향타' 잃어
[안종범의 정책진단] 정책은 생물

흔히들 정치는 생물이라고 한다. 정치는 변화가 많고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을 빗댄 말이다. 그런데 정책도 생물이다. 정책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든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치가 생물일 때와는 달리, 정책은 생물이라는 걸 미리 인지하고 준비하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유명한 사례가 1696년 영국에서 도입된 창문세이다.
창문세는 창문 수를 기초로 세금을 거두고자 했던 것인데, 150년간 이어지면서 창문을 메우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도록 했다. 스웨덴은 2005년부터 상속세 폐지를 발표하자 사망률이 폐지 직후 잠시 높아졌다는 사례도 있다. 세금이라는 정책이 조금 더 살아 상속세를 피하겠다는 의지까지 만들 정도로 무서운 생물이었던 셈이다.

"종부세 낼 돈 없으면 이사 가라!" "2% 부자에게 거둬 98% 국민에게 준다!" 노무현 대통령이 부동산 세금을 강화하면서 한 말이다. 10여년 후에 문재인 대통령도 세금으로 투기를 잡고 집값을 안정시키겠다면서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런데 두 정부 부동산 대책은 같은 이유로 실패했다. 공급대책 없이 세금으로 수요억제를 하려다가 집값과 전월세비는 감당하기 힘들게 올랐다. 두 정부는 집 가진 자를 투기꾼이나 불로소득자로 규정한 뒤, 세금 피하려 온갖 수단을 동원한다고 비난했다. 부동산 중개사도 악덕 투기몰이꾼으로 간주해서 국세청을 총동원해서 감시·감독했다.

왜 같은 실수를 반복했을까? 정책을 과학이 아닌 정치로 했기 때문이다. 생물인 정책이 가져올 예상 효과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기보다는 국민이 듣기 좋은 말로 정책을 포장하는 데 더 신경을 썼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책은 시행하기 전에 이 정책에 따라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일까를 고려하여 잘 만들어야 한다. 사전평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행 후에 기대했던 대로 사람들이 움직이고 나라 전체적으로 효과가 나타났는지를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사후평가도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사전·사후평가를 제대로 안 해서 포퓰리즘에 시달렸다. 금융소득종합과세는 외환위기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매도되어 1998년부터 3년간 유보되었고, 그 결과 분배구조가 악화되었다. 광우병 사태로 음식업이 막대한 피해를 보고, 민영화하면 수도요금 백배 오른다는 수도요금 괴담으로 공기업 개혁 기회를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사드 괴담으로 과일농가가 피해를 보고, 탈원전으로 막대한 한전 부채와 원전 수출이 중단되는 크나큰 손실을 본 적도 있다. 코로나를 핑계로 그리고 국가채무비율 40%를 꼭 지켜야 하느냐면서 시작된 방만재정으로 50%에 육박하는 국가채무가 우리 경제와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옥죄고 있기도 하다.

미국에서 성공했다고 평가받는 1996년 복지개혁은 사전·사후평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클린턴 정부가 이 개혁을 하기 전 10년 동안 사전평가가 이루어졌고, 개혁 이후에도 10년 이상 사후평가위원회가 구성되어 과학적인 평가작업이 이루어진 결과이다. 더 나아가 미국에서는 2018년 '증거 기반 정책 법'을 제정하여 데이터와 과학적 분석을 기반으로 한 정책평가를 의무화하기까지 했다.

우리도 정책을 정치가 아닌 과학과 증거를 기반으로 만들고 평가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정치가 정책을 막고 있다. 언론이 때론 이를 더욱 부추기기도 한다. 정치 기사는 독자의 관심을 끌고자 자극적으로 쓰거나 분열과 대립 상황을 과장 보도한다.
한편 정책 보도는 최소화한다. 정책은 국민이 관심을 갖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기에 정책 기사는 늘 정치 기사에 묻혀버린다.
그래서 필자는 이번에 '정책진단'이라는 연재를 시작하며 큰 책임감을 느낀다.

■약력 △64세 △위스콘신대학교 경제학 박사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연구위원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 △성균관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한국재정학회 회장 △제19대 국회의원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 정책조정수석

안종범 정책평가연구원 원장 전 청와대 경제수석
box5097@fnnews.com 김충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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