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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강제규 감독 "국뽕이요? 이건 궤가 다른 국뽕이에요"

뉴시스

입력 2023.09.14 06:21

수정 2023.09.14 06:21

강제규 '1947 보스톤'으로 8년만에 복귀해 코로나·배성우음주운전 겹쳐 개봉 4년 걸려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내실 다지는 시간" 손기정·남승룡·서윤복 마라톤 영웅 그려내 "이분들 삶 그려낸 건 큰 행복이자 축복" 국뽕·신파 우려에 "이건 역사적 사실일 뿐"
(출처=뉴시스/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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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손정빈 기자 = 1947년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참가한 손기정 감독과 남승룡 코치 겸 선수 그리고 서윤복 선수는 미국 보스턴까지 가는 데 닷새가 걸렸다. 서윤복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고 다시 한국에 돌아오는 데는 보름이 걸렸다. 육상 경기 중 가장 긴 거리인 42.195㎞를 달려야 하는 마라톤, 게다가 오고 가는 데만 20일이 걸린 여정을 생각하면 참 멀리도 돌고 돌아 이뤄낸 성취였다. 영화 '1947 보스톤'(9월27일 공개)은 마치 이 작품이 담고 있는 이야기처럼 오랜 기다림 끝에 나왔다. 연출을 맡은 강제규(61) 감독은 "힘들긴 힘들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1947 보스톤'은 2019년에 촬영을 마쳤다.
강 감독은 "그때만 해도 아무리 늦어도 2021년 구정 쯤엔 개봉할 거라고 봤다"고 말했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200억원이 넘는 제작비를 쓴 영화였기에 공개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승룡'을 연기한 배우 배성우 음주운전 사건이 터졌다. 지난해 개봉을 고려하다가 아무래도 배성우를 향한 대중의 불편함이 가시지 않았다고 판단해 또 공개를 미뤘다. '1947 보스톤'은 촬영이 끝나고 4년을 버틴 뒤에야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출처=뉴시스/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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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답답하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영화를 완성해 놓고 이렇게 오래 개봉하지 못 한 건 처음이었거든요. 저 뿐만 아니라 배우들이나 스태프 다 똑같은 마음이었죠. 그래도 여유가 많으니까 내실을 다질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정말 답답했지만, 돌이켜보면 참 값진 시간이기도 했어요."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1947 보스톤'은 1947년 보스턴마라톤대회에 참가한 대한민국 선수단의 이야기를 그린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땄지만 시상대에서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가렸다는 이유로 강제 은퇴 당한 뒤 의욕 없이 살고 있는 손기정, 손기정과 함께 나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고 이제는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는 남승룡, 두 국민영웅은 베를린올림픽 10년 뒤 마라톤에 타고난 재능을 가진 청년 서윤복을 만난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들이 못이룬 꿈, 태극마크를 달고 나가 조국을 위해 뛰는 그 꿈을 서윤복이 실현해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사실 이분들은 각각 한 편의 영화로 만들어도 될 만한 훌륭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세 분을 하나로 묶어주는 보스턴마라톤대회가 있어서 한 편에 담을 수 있었던 거죠. 세 분을 영화에 담을 수 있다는 건 큰 행복이고 축복이었습니다."

굳이 나누자면 영화는 1부와 2부로 구성돼 있다. 1부가 보스턴으로 향하기 전까지 험난한 준비 과정을 그린다면 2부는 보스턴에 도착해서 또 한 번의 우여곡절 끝에 대회에 참가해 금메달을 따기까지를 담는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마라톤 경기 장면. 1940년대 보스턴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 신(scene)들은 보스턴이 아닌 호주 질롱에서 촬영했다. 강 감독은 "보스턴을 재현해서 마라톤 장면을 찍는 게 이 영화에서 가장 힘든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출처=뉴시스/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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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에 호주에 엄청나게 큰 산불이 났습니다.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다닐 수가 없을 정도였죠. 청정한 호주 자연에서 찍었을 때 나오는 그 빛을 활용해서 찍어보고 싶었는데, 바람만 불면 시커먼 연기로 뒤덮이더라고요. 2주 안에 모든 촬영을 무조건 마쳐야 하는데, 막막했습니다. '제발 바람아 불지 마라'라고 빌면서 찍었습니다.(웃음) 정말 운이 좋게도 2주 간 하루 빼고는 바람이 안 불어서 촬영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천운이었죠."

강 감독은 한국영화 상징적 존재다. '은행나무 침대'(1996)로 한국영화 장르물 시대를 열었고, '쉬리'(1999)로 한국영화 르네상스를 열어젖힌 장본인이며, '태극기 휘날리며'(2004)로 1000만 관객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이런 강 감독이지만 '1947 보스톤'을 만들 땐 어떤 작품보다 스태프·관계자 의견을 경청했다. 최근 젊은 관객이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이른바 신파와 국뽕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피해가기 위해서였다. 이를 위해 블라인드 시사회만 네 차례 열기도 했다. 실제로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엔 공개되지 않은 '1947 보스톤'에 대해 신파·국뽕 영화일 거라고 짐작하는 게시물이 종종 올라온다.

"로그 라인만 보면 제가 봐도 국뽕이에요.(웃음) 그런데 이건 실화잖아요. 만약에 픽션이라면 제 마음대로 이야기를 바꿀 수 있겠죠. 하지만 실화라서 그럴 수 없더라고요. 탈출구는 적고 해결해야 할 일은 많았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자꾸만 물어봤던 겁니다. '이거 거북하지 않니?' '이정도면 괜찮니?' 하고요.(웃음)"

그래서 강 감독에게 '1947 보스톤'은 신파·국뽕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냐고 묻자 그는 "좋은 국뽕 나쁜 국뽕으로 나눌 순 없겠지만"이라면서도 "궤가 다른 국뽕"이라고 했다. "물론 보는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에 달린 문제이긴 합니다만 저희가 작위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이건 실화이고 팩트이니까요. 국뽕이라고 할 분도 있겠지만, 궤는 분명히 다른 국뽕이라고 보는 거죠."
(출처=뉴시스/NEW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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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강 감독은 '1947 보스톤'이 신파·국뽕 영화라기보다는 우리가 살아온 궤적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했다. 그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지나온 일들에 자꾸 애착을 갖게 된다"고 말하며 웃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개념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시간이라는 게 그렇게 딱 구분될 순 없잖아요. 이건 하나의 띠 같은 거니까요.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이 띠의 궤적이 어디로 가는지 짐작해볼 수 있는 건 당연하겠죠. 그래야 앞날을 더 멋지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1947 보스톤'은 평소 마라톤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던 강 감독의 바람이 담긴 작품이기도 하다.
강 감독은 거의 매일 같이 걷고, 종종 뛴다고 했다. 손기정 역을 맡은 배우 하정우 역시 시간이 날 때마다 걷는 걸로 잘 알려져 있다.
강 감독은 "정말 묘한 공통점으로 묶여 있는 영화"라며 웃었다. "하정우씨를 만나기로 했는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오더라고요.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걸어왔다고 했어요.(웃음) 저도 걷는 걸 참 좋아하긴 하는데, 하정우씨는 좀 심해요. 희한한 건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도 걷는 걸 참 좋아하셨다는 거예요. 제 아들은 마라톤 대회에 주기적으로 나가서 하프 마라톤을 해요. 임시완씨도 원래 달리기를 좋아했다고 하더라고요. 이 영화를 찍고 나서는 완전히 달리기 마니아가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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