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범람하는 'K-'표기, 이대로 괜찮을까

장인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14 18:11

수정 2023.09.15 09:29

[기자수첩] 범람하는 'K-'표기, 이대로 괜찮을까

한국 대중문화 역사에서 영문 글자 '케이(K)'가 일반인에게 제대로 각인된 건 K팝 열풍이 전 세계로 뻗어나갈 때와 맞물린다. 2012년 여름 발매된 가수 싸이의 신곡 '강남스타일'은 경쾌한 멜로디와 리듬, 당시로선 다소 파격적인 말춤 동작, 또 유튜브라는 글로벌 영상 플랫폼에 힘입어 새로운 한류를 일으켰다. 한국의 드라마와 아이돌 그룹이 일부 중화권에서 인기를 끈 데 비해 '강남스타일'은 미국과 유럽에까지 전파되며 한국을 알리는 데 일조했다.

1990년대 말부터 쓰이기 시작한 한류의 영문 표기는 'Korean Wave'인데 앞에 쓰인 'Korean'은 '한국의'라는 의미의 형용사로 쓰였다. 하지만 K팝의 인기를 타고 한국 문화의 모든 분야를 해외에 알릴 필요성이 커지면서 대문자 K의 활약이 시작된다.

K팝을 필두로 K-드라마, K-뷰티, K-푸드, K-스포츠에 이어 외국인 관광객의 방한여행은 K-관광, 한국에서 하거나 한국이 주관하는 대규모 행사는 K-박람회라고 부른다.
최근엔 북한산 등산코스 답사 행사를 K-클라이밍으로 표기한 문화체육관광부 자료가 배포됐다. K-컬처는 이 모든 K군단의 대장 노릇을 한다. 한국에 관한 주제라면 분야를 막론하고 K만 붙여 쓰면 되니 사실상 무한조합이 가능한 언어체계다. 신분도 형용사에서 복합명사로 바뀌었다.

문체부와 관광공사, 레저·관광 분야를 취재하면서 하루에도 수십 번 K를 만난다. 기자란 언어 표현의 적확성과 정치함을 다루는 직업이기에 정책 담당자들 사이에 어떤 통일된 개념 부여나 사용원칙이 있을지 궁금했다. 그때부터 업무상 만나는 이들에게 K를 왜 쓰는지 물었다. K 허리에 달린 하이픈(-) 기호를 쓰고 안 쓰고의 의미 차이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여론조사의 결말은 다소 허망했다. '간단하게 줄여 표기한 건데 뭐가 문제냐'는 의견부터 '한국을 쉽게 알리기 좋은 브랜드 전략'이라는 모범답안에 이어 '다들 쓰니까 그냥 쓰는 거 아니냐'와 '나도 왜 쓰는지 모르겠다'는 답변이 다수를 이뤘다. 어떤 독자는 기사 댓글에 '그놈의 K 좀 그만 붙여라'는 쓴소리를 남겼다.

'K-'은 이제 프리미엄 상품 인증마크가 됐다. 다만 그 배지에 혹해 '이만하면 됐다'는 자기만족을 추구하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에게 소중한 K-컬처는 외국인에겐 그냥 남의 문화일 뿐인데 K를 강조해 얻는 효과를 다각도로 분석해봐야 한다. 10쪽에 달하는 2024년 문체부 예산안에는 약 30개의 K가 등장한다.
반복된 횟수만큼 K군단의 매력이 외국인들의 마음에 가닿기를 응원할 뿐이다.

en1302@fnnews.com 장인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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