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업과 옛 신문광고

[기업과 옛 신문광고] 43년 만에 사라진 서울은행

손성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14 18:19

수정 2023.09.14 18:19

[기업과 옛 신문광고] 43년 만에 사라진 서울은행
국내 최고(最古) 은행은 1897년 한성은행으로 출발한 조흥은행(신한은행에 합병)이다. 우리은행의 기원은 1899년 고종의 명으로 세워진 대한천일은행(상업은행의 전신)이다. 고종의 아들로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이 2대 은행장을 역임했다. 이런 연유에서 우리은행 수뇌부들은 매년 새해 첫날 고종의 묘소인 남양주 홍유릉을 참배한다.

KB국민은행의 모태인 국민은행은 1963년 서민금융 전담 국책은행으로 설립됐다. 그보다 전에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서울은행(하나은행에 합병)이 창립됐다(조선일보 1959년 11월 28일자·사진). 이름에 보이듯이 서울은행은 창업 당시 영업구역이 서울로 제한된 지방은행이었다.
1962년 전국 은행으로 발전했다. 광고를 보면 서울은행 본점의 최초 위치는 서울 소공로 한국은행 옆이다. 그 일대는 여러 은행 본점이 들어선 한국 금융의 중심지였다. 약도의 오른쪽에 '치과대학'이라고 적혀 있는데 서울대 치대를 말한다. 전신인 경성치과의학교는 1922년 개교해 소공동 저경궁터에 부지를 마련했다. 저경궁은 조선 선조의 후궁이자 인조의 할머니인 인빈 김씨의 궁묘다. 서울대 치대는 1969년 12월 연건동으로 옮겼다.

서울은행 초대 은행장은 윤호병씨로 일제강점기에 은행원으로 시작해 상업·한일은행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4·19혁명 직후 재무부 장관을 겸임하기도 했다. 서울은행 본점은 1975년 명동으로 옮겼고 이듬해 신탁은행과 합병, 서울신탁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1995년 서울은행으로 이름이 환원됐다.

몇 년 후 터진 외환위기로 시중은행들은 급전직하의 운명을 맞게 된다. 기업들이 도산하면서 자금을 빌려준 은행들도 돈을 떼이게 됐고 줄줄이 같은 길로 들어섰다. 은행들의 주가는 1000원 아래로 떨어졌고 감자로 거의 휴지 조각이 됐다. 투자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다. 은행마다 수백, 수천명이 명예퇴직으로 직장을 떠났다. 한일은행은 상업은행과 합병해 한빛은행으로 바뀌었다가 완전감자를 거쳐 정부가 전체 주식을 소유한 우리은행이 됐다. 외환은행은 론스타에 매각됐다가 하나은행으로 넘어갔다. 제일은행은 영국의 스탠다드차타드에 매각돼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으로 거듭났다.

서울은행은 1999년 HSBC에 매각이 추진되다 여러 조건에서 이견을 보여 무산됐다. 정부는 공적자금을 투입해 경영을 정상화한 뒤 해외 매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2000년 도이체방크에 경영을 위탁하고 강정원 도이체방크 서울지점 대표를 은행장으로 선임해 회생을 모색했다.
서울은행은 2002년 월드컵이 끝난 직후 하나은행에 합병돼 창립 43년 만에 간판을 내렸다. 한국투자금융이 모태인 하나은행은 외환은행까지 인수, KEB하나은행으로 거대 은행 반열에 올랐다.
KEB는 외환은행의 영어 표기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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