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기고

[특별기고] 지방시대를 위한 법 체계 혁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17 18:00

수정 2023.09.17 18:00

[특별기고] 지방시대를 위한 법 체계 혁신
산행하기 좋은 계절인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군 복무 시절 제대로 된 등산로가 아닌 이정표 없는 산줄기를 타는 훈련을 받았는데 이때 필수적인 것이 지도를 읽는 독도(讀圖) 능력이었다. 지도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나의 현 위치와 목적지 그리고 두 곳 사이의 경로를 지도에 정확히 표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렇게 산에서 지도로 길을 찾을 때는 계곡과 능선의 흐름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지금 내가 어떤 능선을 따라가고 있는지 알아야 산행을 끝낼 때까지 길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직의 길을 걸어오면서 나에게는 헌법이 마치 지도와 같고, 헌법에 명시된 원칙들은 산의 계곡과 능선 같았다.
헌법에 담긴 원칙을 되새길 때마다 지금 하는 일의 방향과 목적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은 국가 차원의 민주주의와 더불어 지방 차원의 민주주의인 지방자치를 국가의 운영 원리로 명시하고 있다. 지방자치라는 능선의 흐름을 따라 윤석열 정부는'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를 실현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 힘쓰고 있다.

법치국가에서 국정과제와 정책은 대부분 법제화되어 실현된다. 이에 법제처는 정부의 법제업무를 총괄하는 기관으로서 국정과제인 지방시대 실현을 위해 법체계를 혁신하고 있다.

중앙집권적 행정에서 출발하여 시대의 변화를 겪으며 점차 지방자치를 확대해 온 경우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을 법령으로 제약하거나 그 권한 행사의 기준을 엄격하게 보는 경향이 있다. 우리 법령에서도 이러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헌법에서 재산 관리를 자치사무로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가 소유한 건물이나 시설의 사용료 감면에 관한 사항을 법령에서 너무 상세하게 정하고 있어 정작 조례로 정할 수 있는 내용이 별로 없는 실정이다. 그리고 과거 지방자치단체를 중앙정부의 하부 행정기관으로 보는 시각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지방 사무를 수행하려면 중앙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하거나 지방 사무의 추진 계획을 중앙정부에 보고하도록 한 규정이 아직도 현행 법령 곳곳에 남아 있다.

우리 헌법은 지방자치단체가 자치에 관한 규정을 제정할 수 있도록 자치입법권을 보장하고 있다. 자치입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의 입법 기능을 과감하게 지방에 이양해서, 지방 사무에 관한 규범은 지방이 스스로 정립하여 집행할 수 있도록 법체계를 개선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법제처는 행정안전부, 대한민국 시도지사협의회와 협업하여 법령의 사항을 조례로 대폭 위임하고,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관계를 대등하고 협력적인 방향으로 설정하기 위한 법령 정비를 추진하고 있다.

먼저, 정비 대상 법령을 발굴하기 위해 현행 법령에 대한 전수조사를 했으며, 제도 개선의 방향이 중앙정부의 시각에 치우치지 않도록 17개 시·도, 228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정비에 대한 수요조사도 실시했다. 뿐만 아니라 지방 4대 협의체(시도지사협의회, 시도의회의장협의회,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시군자치구의회의장협의회)와 업무 협약을 맺어 지방이 원하고 지방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개선과제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 결과 법률 84개 등 260여 개의 정비과제가 선정되었다. 체육관, 수영장과 같은 생활체육시설의 사용료 감면에 관한 법령상 기준들을 삭제하고 조례로 대폭 위임하여 지방자치단체가 자신의 규범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주말농장을 개설하기 전에 국가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사전 승인 제도를 사후 통보로 전환하는 등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국가의 관여를 최소화하려는 내용이다.

법제처는 올해 안에 정비 대상 84개 법률을 국회에 제출하고 하위법령 중 66개는 개정을 완료할 계획이다. 지방시대 구현을 위한 법체계 개선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도록 앞으로도 관계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와 지속적으로 협업하여 지역 주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법령 개선 작업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고교 시절부터 천문학에 관심이 많아 가끔 별자리 보는 것을 좋아한다.
계절마다 다른 별자리가 보이는 것은 지구의 공전 때문인데 그 궤도는 구심력과 원심력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유지된다. 중앙집권적 행정은 구심력을 닮았고 지방분권적 행정은 원심력을 닮았다.
구심력과 원심력이 동시에 작용해야 공전 궤도가 유지되는 것처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권한이 합리적으로 배분될 때 민주주의 국가의 운영 원리가 제대로 작용할 것이다.

이완규 법제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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