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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집 짓고 싶어도 못짓는다

오승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18 17:59

수정 2023.09.18 17:59

[강남시선] 집 짓고 싶어도 못짓는다
집값엔 온기가 도는데 주택공급엔 냉기만 감돈다. 전국 아파트 가격이 9주 연속 오름세를 타고, 전셋값 상승폭 확대로 역전세난 우려는 수그러들고 있다. 반면 주택건설은 잔뜩 움츠러들었다. 국토교통부의 '7월 주택통계' 기준으로 올해 들어 전국 착공 누적물량(10만2299가구)은 전년동기 대비 54.1% 급감, 반토막났다. 같은 기간 전국 인허가 물량도 20만7278가구로 29.9%나 줄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인허가물량 약 30만6000가구에 비해서도 10만채가량 적다.
주택공급 빙하기나 다름없다.

인허가를 받아도 눈앞에 마주하는 현실은 높은 허들의 연속이다. 사업 시작부터 험난하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창구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로 돈 빌릴 곳이 마땅치 않다. 어렵사리 자금조달에 성공해도 손에 쥐기도 전에 취급, 주선 등 각종 수수료를 붙여 연 금리의 두배 이상을 떼가기도 한다.

시공사 모시기도 험로다. 계약금, 중도금 등으로 준공까지 진행하는 이른바 '분양불' 사업장은 아예 건설사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계약률이 낮으면 그만큼 공사비를 떼일 우려가 있어서다. PF 등으로 공사비 상당액을 충당하는 '기성불'만 관심권이다. 하지만 시행사들은 PF 경색으로 엄두도 못 내는 선택지다.

천신만고 끝에 첫삽을 뜨려 해도 치솟은 원가가 사업성의 발목을 잡는다. 대형건설사인 A사의 반기보고서 기준으로 2021년 말부터 올해 6월 말까지 1년6개월간 시멘트 가격은 t당 7만2000원에서 10만원으로 38.8% 치솟았다. 전체 원재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을 넘는 레미콘 역시 ㎥당 7만1000원에서 8만8700원으로 25% 급등했다. 인건비도 뜀박질했다. 같은 기간 작업자 1인당 하루 비용은 형틀(목공), 도배, 타일만 해도 25만원에서 30만원가량으로 20% 이상 올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원가율 점프로 분양가를 높이자니 고분양가 논란과 이에 따른 미분양 리스크 또한 만만치 않다. 대형건설사 임원들도 "짓고 싶어도 못 짓는다"고 토로할 정도다. 실제 지난달에는 서울 용산의 상업시설 개발현장이 브릿지론 연장 무산 등으로 좌초됐다. 우량사업장도 PF 한파와 수익성 악화에 백기를 든 셈이다.

내년부터 공급가뭄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아파트 입주물량은 수도권의 경우 올해 19만3916가구에서 내년 13만2957가구로 31.4% 급감한다. 특히 서울의 내년 입주물량은 7488가구로 조사 이래 역대 최저치다. 올해 3만3038가구와 비교하면 5분의 1가량으로 급격히 쪼그라든다. 관련 지표까지 일제히 곤두박질치면서 향후 최소 3~4년간 주택공급은 악화일로다. 서울 주택보급률(2021년 기준 94.2%) 등을 감안하면 주택수급 불균형이 집값 자극의 뇌관이 될 수 있다.
부실, 우량 사업장 가릴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PF 리스크 잣대를 들이대면 주택공급 시스템 마비는 시간문제다. 우리 주변에는 당장의 가격 변동성과 무관하게 중장기 공급은 원활해야 시장안정을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이 적지 않다.
부동산이라고 다르지 않다.

winwin@fnnews.com 오승범 건설부동산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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