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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식의 과학2030] 노벨 과학상을 위한 '한 우물 파기'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19 18:40

수정 2023.09.19 18:40

일본 '연구의 대물림' 성과
한국은 연구비 따내기 바빠
우직하게 일할 환경 조성을
[이태식의 과학2030] 노벨 과학상을 위한 '한 우물 파기'
최근 내년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방침으로 국내 과학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는 가운데 2023년 노벨상 발표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아쉽게도 현재까지 대한민국은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다. 혹자는 한국은 기초과학 분야가 약해서라고 하고, 또 단기적인 성과를 내기에 급급해서라고도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노벨상을 꿈꿀 수 있을까.

우선 연구환경을 주목해 보자. 당장 옆 나라인 일본만 봐도 한국과 완전히 다르다. 단기성과에 치중하고 교수들이 연구비 따기에 바쁜 우리나라 연구환경에 비해 일본의 연구문화는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연구의 대물림'이다.

한 예로, 중성미자가 질량이 있음을 밝혀낸 공로로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가지타 다카아키 교수는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고시바 마사토시 교수의 연구를 이어 발전시켰다.
고시바 교수는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난부 요이치로 교수의 지도 아래 방향을 잡았다. 난부 교수는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도모나가 신이치로 교수의 영향으로 물리학에 발을 들여놓았다. 결국 가지타 교수의 연구는 선배 과학자들이 일구어 놓은 중성미자 관측연구를 후배 과학자들이 이어 연구한 결과인 것이다.

두 번째 요소는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이다. 역시 일본의 예를 들어보자. 가미오칸데는 중성미자를 관측하기 위해 도쿄대학이 일본 가미오카 광산 지하 700m에 설치한 장치다. 슈퍼 가미오칸데는 기존 가미오칸데보다 약 3배 거대한 장치로, 5년간 공사 후 1996년부터 가동을 시작했다. 그러나 2001년에 수조 물을 배출하고 교환하는 작업이 이루어지던 중 시설 일부가 깨지면서 시설의 70%가 파손됐다. 하지만 슈퍼 가미오칸데는 1년도 지나지 않아 복구 완료하여 관측을 재개하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당시 일본 정부는 '잃어버린 10년'이라 불릴 만큼 경제가 어려웠던 1990년대였음에도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슈퍼 가미오칸데를 지원하였고, 빠르게 재건을 도왔다. 도쿄대의 진지한 대물림 연구에 정부의 든든한 지원으로 이뤄낸 성과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여러 세대에 걸친 대물림 연구나 정부의 꾸준한 지원을 찾기 어렵다. 이른바 '한 우물 파기'의 부재인 셈이다. 교수들의 이직은 연봉과 처우에 따라 심심찮게 이루어진다. 우직하게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정부가 연구자에게 제공하는 정책이나 환경은 더욱 거리가 멀다. 정부가 원하는 과학은 대부분 당장 실용화할 수 있는 과학기술, 즉 응용과학이다.

하지만 실망하기엔 이르다. 우리나라는 분명한 과학 강국이다. 과학기술처에서 과학기술부로 격상된 1998년 당시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 대신 상용화가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고 벤처를 창업하는 것이 정부의 방향이었고 국가에 필요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는 반세기 만에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성장했다.

한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노벨상이 아직이라면 다른 목표를 세울 수도 있다. 울프상과 래스커상은 노벨상급의 연구 업적에 대한 시상으로 권위가 높아 '프리 노벨상'으로도 불린다.
이렇듯 바깥쪽 과녁에서 시작하여 점차 안쪽으로 목표를 좁혀 나가면 어떨까. 과학자와 정부의 '한 우물 파기'가 뒷받침된다면 노벨상은 우리의 생각보다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태식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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