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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빚은 ‘움직이는 조각품’… 시네티즘의 대가 [Weekend 문화]

유선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22 04:00

수정 2023.09.22 12:08

세계 최고 조각가와 K-조각 <1> 현대 키네틱 아트 선구자 조지 리키
공간 지휘하듯 철저하게 계산된 움직임
동적인 움직임 통해 정적인 공간감 경험
과학·미학 조화 이룬 한국현대조각 교본
조지 리키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올림픽조각공원에 남긴 작품 '비스듬히 세워진 두 개의 선들' 소마미술관 제공
조지 리키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해 올림픽조각공원에 남긴 작품 '비스듬히 세워진 두 개의 선들' 소마미술관 제공

파이낸셜뉴스는 K-스컬프처조직위원회와 함께 오늘부터 내년 2월까지 '세계 최고 조각가와 K-조각'이라는 타이틀로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미학, 미술사, 미술평론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국내 전문가 7인의 글을 통해 세계 조각의 흐름을 주도한 조각가의 작품세계를 조망하고 그를 통해 한국 조각이 나가야 할 발전적인 미래를 전망합니다. <편집자주>

움직이는 조각의 살아 있는 전설로 불리었던 아티스트이자 미술사가 그리고 기계공학도였던 조지 리키(1907~2002). 별이 된 지금도 하늘 저 높이 어디선가 이 소란스럽고 분주한 세상을 유연하고 리드미컬하게 조율하고 있을 것 같다.

러시아 구성주의(Constructivism)와 바우하우스(Bauhaus) 철학에 대한 연구와 이해로부터 빛과 색 등 조형의 기본요소에 대한 과학적, 수리적 분석과 해석에 이르는 광범위한 지적 관심과 연구자로서의 태도. 철저하고 치밀하게 그리고 섬세하게 계산된 작품의 공학적, 역학적 변위(transposition), 작품의 구성 요소들이 서로 부딪히거나 겹치지 않는 물리적 동선과 움직임의 심리적 궤적. 이들이 창출하는 총체적 아우라와 탄탄한 철학적 존재율은 현대조각에 있어 리키를 전설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충분했다.

리키의 움직이는 조각이 연출하는 심리적·물리적 변위, 끊임 없이 변하는 표정은 일견 아리송하지만, 정해진 듯 자유롭게 펼쳐진 드로잉 궤적과 그 '경우의 수'를 따라잡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동선과 규칙을 추출할 수 없을 만큼 간단없는 움직임을 보이지만, 생각보다 그 호흡이 빠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느림의 미학'을 선보이는 리키의 움직이는 조각은 일견 단순한, 정해진 궤적을 반복하고 있어 보이지만, 미세한 변위를 끊임없이 연출하며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과 몸짓을 선보인다. 영혼이 있는 생명체처럼 생각하며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다만 호들갑을 떨거나 요란을 피우지 않고 제법 느릿하게 움직인다. 다분히 철학적이다. 리키 조각이 다른 조각과 분명하게 구분되는 매력적 요소다.

주지하다시피 조각은 대표적인 공간예술이다. 그러나 리키는 공간보다는 시간이라는 요소를, 시간과의 관계성을 주목해 조각이 느릿하게 흐르듯 움직일 수 있다는 다소 황당한 상상을 현실화했다. 회화와는 달리 물리적으로 3차원인 조각을 통해, 그것도 움직이는 조각을 통해 공간 속 시간의 흐름과 지속이라는 과정을 대중적으로 경험하게 한 것이다. 그의 작품이 동적이지만, 상대적으로 정적인 공간감을 연출하는 이유다.

이른바 '키네틱 아트(Kinetic Art)'로 불리는 움직이는 조각은 철저하게 외부의 동력에 의해 움직인다. 바람, 물, 빛, 전기, 사람의 힘 등 외부에서 동력을 공급받아 일정한 물리적 움직임을 획득하거나 선사하는 조각을 말한다. 작품은 실제로 움직이지 않지만,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심리적 움직임을 경험하는 형식인 '옵티컬 아트(Optical Art)'와 구분된다. 키네틱 아트와 옵티컬 아트를 합쳐서 시네티즘, 즉 움직이는 미술이라고 통칭하기도 한다.

현대 키네틱 아트를 대표하는 조지 리키의 조각은 일견 관절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구체관절 인형' 효과를 연상시킨다. 마치 고생대 대형 시조새, 혹은 외계 생명체를 보는 듯 대단히 원시적이고 미래적인 알레고리와 유기적 호흡을 보인다. 눈으로 볼 수 없고 확인할 수 없는 다른 차원, 이를테면 평행세계를 연출하는 듯하다. 안타깝게도 작가는 세상에 없으나, 그가 남긴 수많은 움직이는 조각은 하늘을 도화지 삼아 쉼없이 공간을 가르며 공감각적 드로잉을 창출하고 있다.
약한 바람에도 반응하며 공간을 지휘하듯 리드미컬한 음악적 변주를 선보이고 있다.

21세기, 문화의 세기 들어 K-컬처에 대한 관심과 함께 한국현대조각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제고되고 있다.
시류와 단순한 발상의 전환을 넘어 과학적, 미학적 나아가 수학적, 음악적 연구와 이해가 상호 뒷받침된 탄탄한 조형 어법과, 개인과 사회의 기억과 경험, 상상력을 미래적 조형 언어로 풀어내는 창의적 노력이 보다 필요한 때다.

박천남 2023한강조각프로젝트 예술감독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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