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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몰트 글렌피딕, 어떻게 위스키 붐을 이끌었을까 [내책 톺아보기]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21 18:41

수정 2023.09.22 00:52

유튜버 조승원이 소개하는 스카치가 있어 즐거운 세상
위스키 성지 55곳, 생생한 체험 기록
스코틀랜드 토속주 ‘싱글몰트 스카치’
글로벌 열풍에 없어서 못 파는 귀한 몸
스카치가 있어 즐거운 세상 조승원 싱긋
스카치가 있어 즐거운 세상 조승원 싱긋
'톺아보다'는 '샅샅이 더듬어 뒤지면서 찾아보다'는 뜻을 가진 순우리말이다. '내책 톺아보기'는 신간 도서의 역·저자가 자신의 책을 직접 소개하는 코너다.

"글렌피딕 안 마셔본 술꾼은 있어도 모르는 술꾼은 없을 거야."

글렌피딕을 마실 때마다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이런 얘기를 서슴없이 하는 건 글렌피딕이 세상에서 제일 많이 팔리는 싱글몰트이기 때문이다. 2011년 글렌피딕은 스코틀랜드 위스키 역사에 이정표를 다시 세웠다. 싱글몰트로는 최초로 연 매출 100만 상자를 돌파했기에 그렇다.
2019년에는 150만 상자(1800만병)를 넘게 팔아치워 기록을 다시 썼다.

싱글몰트 스카치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스카치위스키협회 자료를 살펴보면 최근 10년간 싱글몰트 수출액은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코로나로 홈술족이 늘면서 싱글몰트 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세계적인 위스키 유행으로 상당수 싱글몰트 스카치는 없어서 못 파는 '귀한 몸'이 됐다. 하지만 19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싱글몰트는 이름조차 부여되지 못할 정도로 존재감이 없었다. 지금 '싱글몰트'로 불리는 위스키가 제대로 수출된 적이 없어서였다. 그저 스코틀랜드 토속주에 불과했다. 글렌피딕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생산한 몰트위스키 대부분을 블렌디드 회사에 원액으로 팔아넘기는 수준으로 운영됐다. 그런데 어떻게 글렌피딕은 시장의 판도를 뒤흔들며 싱글몰트 붐을 이끌게 된 것일까?

먼저 글렌피딕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글렌피딕은 설립 이후 지금까지 창업자 가문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가족기업이다. 가족 운영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 싶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의미는 생각처럼 작지 않다. 지금 스코틀랜드 증류소 대부분은 디아지오나 페르노리카 같은 거대 주류 기업 소속이다. 웬만큼 이름 있는 증류소 가운데 거대 자본의 합병 공세를 이겨내고 독립 경영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글렌피딕을 더불어 글렌파클라스, 스프링뱅크 정도뿐이다.

창업자 윌리엄 그랜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며, 20대 초중반의 두 아들이 회사의 운영을 맡게 됐다. 풋내기가 운영하긴 버거울 것이라는 예측과는 달리 형제는 놀라운 속도로 위스키 생산과 경영을 배워갔다. 훗날 '싱글몰트 시장 개척자'로 칭해지는 샌디 그랜트 고든은 우연히 증류소를 찾은 주류 거래상들의 반응에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글렌피딕 몰트위스키를 맛보고 감탄한 그들의 모습을 보고 제조용 원액이 아닌 별도의 상품화를 통한 판매를 계획하게 된 것이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뚝심 있게 밀어붙인 샌디 고든은 8년 이상 숙성된 글렌피딕 몰트위스키를 시제품으로 만들어 240병 한정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이렇게 힘을 얻은 샌디 고든은 해외 진출에 박차를 가하기로 한다. 이후 새로운 위스키의 개념을 제시한 글렌피딕은 미국에서 크게 히트하며 블렌디드가 독식해 온 위스키 시장에 싱글몰트라는 항목을 만들어냈다.

글렌피딕 품질의 비결 중 하나는 '로비 듀' 샘물에 있다. 또 증류를 마친 스피릿을 오크통에 넣을 때나 숙성을 끝낸 위스키를 병에 담을 때에도 이 샘물로 도수를 맞춘다. 맑고 깨끗하고 부드러운 로비 듀 샘물을 당화에서 병입까지 모든 공정에 사용한다는 것은 글렌피딕의 큰 자랑거리다.

생산 설비 역시 압도적인 수준이다. 지난 2015년 말부터 설비 확장에 나서 무려 4년이 넘도록 확장 공사를 끝낸 공장은 연간 스피릿 생산 가능 규모를 2100만L까지 끌어올렸다. 이게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는 다른 유명 증류소 몇 곳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한창 잘나가는 맥캘란의 스피릿 생산 가능 규모가 1년에 1500만 정도이니 말이다.

'이참에 스코틀랜드 한번 다녀올까'라는 생각으로 시작된 취재는 과정부터 험난했다. 화창하던 날씨는 갑자기 비바람으로 바뀌고 뼛속까지 파고드는 시린 바람을 견뎌내야만 했다. 증류소 장인들을 만나고 위스키를 맛보는 건 행복이었지만 증류소 밖을 나오면 고통의 연속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총 55곳의 증류소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집필된 '스카치가 있어 즐거운 세상'에는 26곳의 증류소 기록이 담겨있다.

나는 '위스키 전문가'라는 표현을 단 한 번도 쓴 적이 없다.
유튜브 채널 '주락이 월드'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지만 결국 구독자들과 나는 같은 처지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위스키의 세계는 넓다.
그렇게 알아가는 과정에서 동료이자 친구로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여유를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조승원 유튜브 주락이월드 진행자



rsunjun@fnnews.com 유선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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