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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의원은 〇〇이 들어간 백과정천탕으로 가문을 일으켜 세웠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30 06:00

수정 2023.09.30 06:00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본초강목>에 그려진 은행(銀杏)(왼쪽)과 은행나무에 달려 있는 은행열매. 은행은 모양이 살구씨[杏]를 닮았고 색은 흰색[銀]이어서 은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본초강목> 에 그려진 은행(銀杏)(왼쪽)과 은행나무에 달려 있는 은행열매. 은행은 모양이 살구씨[杏]를 닮았고 색은 흰색[銀]이어서 은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먼 옛날 약방에 한 환자가 어느 사내의 등에 업혀서 실려 왔다. 사내는 등에 업힌 남자가 구토와 경련, 복통이 있어서 부리나케 업고 왔다고 했다. 의원이 환자를 보아하니 안색은 창백하고 숨 쉬는 것도 약간 힘들어하면서 정신도 몽롱한 상태였다.


의원이 급하게 물었다. “어떻게 된 것이오?” 그러자 남자를 업고 온 이가 “이 남자는 내 옆집에 사는 사람인데, 갑자기 마당에서 배를 움켜쥐고 경련을 일으키며 꼬꾸라져 있어서 이렇게 업고 왔소이다. 마루에 보니 바가지에 은행들이 들어 있는 것을 보아서 아마도 은행을 먹고 체한 것 같소. 마당에는 구토물도 있었소.”라고 답을 했다.

의원은 은행이란 말에 깜짝 놀랐다. 남자는 은행을 먹고 중독된 것이다. 의원은 약방에 미리 만들어 두었던 지장수(地漿水)와 함께 감초를 서둘러 끓여서 그 물을 남자에게 먹였다. 의서에는 지장수와 감초가 은행독을 해독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지장수는 좋은 황토를 물에 풀어 놓았을 때 시간이 지나면 위에 뜨는 맑은 물을 말한다. 옛날에는 독버섯을 먹고서 중독되었을 때도 지장수로 해독을 하곤 했다. 남자에게 지장수와 감초물을 먹이자 다행히 의식이 되돌아 왔고 숨 쉬는 것도 편해졌다.

의원은 남자에게 물었다. “은행을 얼마나 먹은 것이요? 생것을 먹었소? 익힌 것을 먹었소?” 그러자 남자는 “우리 동네에 은행나무가 하나 있는데, 배가 고파서 은행을 한 되 정도 따다가 불에 구워서 한 100개 정도를 먹었소이다. 은행을 먹고 시간이 한 일식경(一食頃) 정도 흘렀는데, 그런데 갑자기 배가 아파지면서 토하고 팔다리가 떨리는 증상이 나타나지 뭐요. 그 뒤에는 잘 모르겠소. 눈을 떠보니 이곳 약방이요.”라고 했다.

식경(食頃)은 밥 한끼를 먹을 정도 걸리는 시간으로 요즘으로 따지면 약 30분 정도에 해당한다.

의원은 다시 “혹시 다람쥐들이 은행을 먹지 않는 사실을 알고 계시오? 다람쥐들은 도토리는 먹는데, 비슷하게 생긴 은행은 먹지 않는 것은 냄새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은행이 독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요. 그래서 산속 은행나무 아래에 은행알이 떨어져 지천에 깔려 있어도 다람쥐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것이요.”라고 했다.

의원은 이어서 “그래도 익힌 은행이어서 다행이요. 은행은 독이 있어서 절대 생으로 먹으면 안되고 익힌 은행이라도 많이 먹으면 중독이 됩니다. 옛 서적에 보면 익힌 은행이라도 천개를 먹으면 사람이 죽는다고 했소.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백개라도 사람을 죽일 수 있소. 심지어 의서에 보면 오래 전에 흉년이 들어 마을 사람들이 은행을 밥 대신에 삶아 먹고 모두 죽었다는 내용도 전해지고 있소.”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은행은 많이 먹을수록 그리고 어릴수록 독성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은행밥을 해 먹고 죽은 마을 사람들 중에서도 유독 욕심껏 많이 먹은 자들과 어린아이들이 많았던 것이요. 어린아이들이 은행을 먹으면 경기(驚氣)를 일으키고 감병(疳病)이 생기기 때문에 아이들은 은행을 익혀서라도 먹이면 안될 것이요.”라고 했다.

감병(疳病)은 위장질환으로 배가 불러오는 창만증이 생기면서 몸이 마르는 병증을 말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남자는 다행스럽다고 여기면서 한숨을 내쉬며 십년감수했다고 했다.

그 때 약방에서 일을 봐주는 젊은이가 무언가를 볶고 있었다. 남자가 자세히 보니 바로 자신이 먹고 중독된 은행이었다.

남자는 “아니 은행에 독이 있다고 하면서 약방에서는 은행을 볶고 있다니, 이것은 어찌 것 된 일입니까?”하고 의아해하면서 물었다.

그러자 의원은 “은행은 독이 있지만 약으로도 사용하고 있소이다. 원래 기침과 천식의 특효약이요. 중요한 것은 은행을 약으로 사용할 때는 반드시 볶아서 초황(炒黃)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요. 그 양도 과량을 사용하지 않고 한 첩에 단지 21개만을 넣고 있소. 독성이 있다 할지라도 효과가 좋아서 그 독을 제거해서 약용하고 있는 것이요.”라고 설명했다.

의원은 눈을 감고 자신이 어릴 적 있었던 옛날 일을 떠 올리면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의원이 어릴 때 고향 마을에는 은행나무가 많았다. 은행은 독특한 악취가 많이 났고 생은행을 먹고서 탈이 난 사람들이 있었다는 소문도 자주 있어서 아무도 은행을 먹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가을날 뒷산에 큰 불이 났다. 은행나무는 모두 타 버렸고, 은행알들도 불에 구워져 떨어졌다. 그런데 생은행은 먹지 않는 다람쥐들이 불에 익은 은행을 먹는 것을 보고 사람들도 불에 구워진 은행알을 먹어 봤더니 탈이 나지 않는 것이다.

당시 그 마을에는 가래가 그르렁거리고 항상 숨이 차서 고생을 하는 노인이 있었다. 그 노인은 며칠 동안 불에 익은 은행을 하루 수십 개를 먹고서는 가래가 줄어들고 숨찬 것도 잦아드는 경험을 했다. 이 일이 있고 난 이후 사람들은 은행을 잿불에 구워 먹었고, 특히나 기침가래가 있으면서 숨찬 증상이 있는 폐병 환자들은 더더욱 은행을 챙겨 먹기 시작했다. 모두들 효험이 있었다. 생은행에는 독이 있지만 익힌 은행은 약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마을에는 불에 익힌 은행을 먹고서 많은 경험담이 쏟아졌다. 감나무집 여섯살배기 막내아들은 야뇨증이 있었는데, 익은 은행을 하루에 5개 정도씩 먹었더니 이후로는 밤사이 이불에 실수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어른들도 소변을 자주 보는 소변빈삭 증상에 좋다고 떠들어댔다. 은행이 시도 때도 없이 소변을 자주 보는 것을 막아준다는 효능이 알려지면서 새색시가 가마를 타고 시집을 갈 때, 일부러 은행을 먹이기도 했다. 요즘으로 보면 은행을 섭취하면 일시적으로 항이뇨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었다.

의원은 어른이 되어서 약방을 차린 후 어릴 적 경험이 떠올라 기침가래와 숨찬 환자들에게 은행이 군약(君藥)으로 들어간 백과정천탕(白果定喘湯)을 처방했다. 처방 이름을 보면 백과(白果)가 포함된 천증(喘症)을 안정시키는 처방이란 의미다. 백과는 바로 은행이다. 은행(銀杏)이란 이름은 살구씨[행(杏)]처럼 생겼는데, 색이 은색[은(銀)]이여서 붙어진 이름이다. 또한 색이 흰색이여서 백과(白果)부른다.

백과정천탕은 효천(哮喘)에 특효였다. 효천은 기관지에 가래가 가득 차서 기침가래가 심하고 숨이 찬 증상을 말한다. 요즘으로 보면 만성기관지염이나 천식과 관련된 병증이다.

기침가래와 숨참을 치료하는 처방에 원래 정천탕(定喘湯)이 있지만, 은행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백과정천탕(白果定喘湯)이라고 이름이 지었다. 특정 약재 이름이 처방이름에 들어가 있다면 그 약재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처방에서는 백과, 바로 은행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마을에는 이 약방에 효천을 치료하는 귀신같은 처방이 있다고 소문이 나서 환자들이 구름처럼 몰려왔다. 의원은 백과정천탕으로 부(富)를 쌓고 가문을 일으켜 세웠다. 은행이 누군가에게는 독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나무에서 갓 떨어진 은행은 악취나는 냄새를 풍기지만 속씨는 익으면 영롱한 에메랄드처럼 보여 경계심을 허물기 충분하다. 아무렇지도 않으니 어서 먹어보라고 유혹하는 듯하다. 맛도 좋다. 그러나 익힌 경우라도 간식으로 함부로 먹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은행나무마다 독성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고용량에서는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은행은 독성이 강하지만 약용으로도 가치가 높다. 요즘도 약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생으로 먹으면 절대 안 되고, 불에 익히더라도 독성이 모두 제거되지 않기 때문에 과용하면 안 된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말은 특히 은행을 두고 하는 말 같다.

* 제목의 〇〇은 ‘은행’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본초강목> 〇 物類相感志, 言銀杏能醉人. 而三元延壽書, 言白果食滿千個者死. 又云, 昔有飢者, 同以白果代飯食飽, 次日皆死也. (물류상감지에서는 ‘은행은 사람을 취하게 할 수 있다.’라고 말하였고, 삼원연수서에서는 ‘백과(白果)를 천 개 먹으면 죽는다.’라고 말하였고, 또 ‘옛날에 굶주린 사람들이 모두 백과를 밥 대신 배불리 먹자 다음 날 모두 죽었다.’ 하였다."라고 하였다.)
〇 哮喘痰嗽. 又金陵一鋪治哮喘, 白果定喘湯, 服之無不效者, 其人以此起家. 其方, 用白果二十一個炒黃, 麻黃三錢, 蘇子二錢, 款冬花ㆍ法制半夏ㆍ桑白皮蜜炙各二錢, 杏仁去皮尖ㆍ黃芩微炒各一錢半, 甘草一錢. 水三鍾, 煎二鍾, 隨時分作二服. 不用薑. 並攝生方. (숨을 헐떡이고 그르렁거리면서 가래가 끓는 증상. 또 금릉의 어떤 약방에서 효천을 치료할 때 쓴 백과정천탕은 복용하면 효과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없는데, 그 사람은 이것으로 집안을 일으켰다. 그 처방은, 백과 노랗게 볶은 것 21개, 마황 3돈, 소자 2돈, 관동화, 반하법제, 꿀로 볶은 상백피 각 2돈, 행인, 황금초 각 1돈 반, 감초 1돈. 이상의 약미에 물 3잔을 넣고 2잔이 될 때까지 달인 다음 때에 따라 두 번에 나누어 복용한다. 생강을 쓰지 않는다. 모두 섭생방에 나온다.)
<동의보감> 銀杏. 性寒, 味甘, 有毒. 淸肺胃濁氣, 定喘止咳. 一名白果, 以葉似鴨脚, 故又名鴨脚樹. 其樹甚高大, 子如杏子, 故名爲銀杏. 熟則色黃, 剝去上肉, 取子, 煮食或煨熟食. 生則戟人喉, 小兒食之發驚. 食銀杏中毒, 香油多飮吐之. 又地漿, 藍汁, 甘草汁飮之. (은행. 성질이 차고 맛은 달며 독이 있다. 폐위의 탁한 기운을 맑게 하고 천식과 기침을 멎게 한다. 백과라고도 하고, 잎이 오리발과 비슷해서 압각수라고도 한다. 이 나무는 매우 큰데, 씨가 행인과 비슷해서 은행이라고 한다. 열매가 익으면 누렇게 된다. 살을 제거한 후에 씨를 삶아 먹거나 잿불에 묻어 구워 먹는다.
생것으로 먹으면 목을 자극하고, 소아가 먹으면 경기를 일으킨다. 은행을 먹어 중독되었을 때는 참기름을 많이 마셔 토하게 한다.
또, 지장수나 쪽즙이나 감초즙을 마신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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