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경제 식품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앎'과 '맛'의 상관관계[이환주의 생생유통]

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29 13:30

수정 2023.09.29 13:30

6900만원 와인의 맛은 어떨까? : 3화
[파이낸셜뉴스]
태국 끄라비의 카페 '카오통힐'에서 마신 커피 / 사진=이환주 기자
태국 끄라비의 카페 '카오통힐'에서 마신 커피 / 사진=이환주 기자

지난 2017년 11월, 세계 최고의 바리스타를 가리는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여하는 바리스타를 만나 인터뷰를 했었다.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WBC) 이란 대회로 우리나라에 있는 커피 브랜드 '폴 바셋'은 이 대회의 4회 우승자다. 2017년 18회 WBC에는 방준배 바리스타가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인터뷰는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진행했는데 방 바리스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자 마자 "로부스타(커피 종류)네요."라고 말했다. 커피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기자가 바리스타는 타고난 미각이 있어야 하는지 묻자 아주 간단하게 설명해 줬다.

방 바리스타는 "현재 우리가 카페에서 먹는 식용 원두는 크게 2종,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라며 "기자님이 생김치로 끓인 김치찌개와 묵은지로 끓인 김치찌개를 구별할 수 있는 것처럼 어렵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커피의 맛을 내는 원두는 크게 3종류다. 아라비카종 원두는 제일 많이 사용되는 원두로 커피 향이 좋고 쓴맛이 적어 부드러운 맛을 낸다. 현재 대부분의 커피전문점이 아라비카종 원두를 사용한다. 전 세계 60개국에서 나라별 1명씩만 출전해 최고의 바리스타를 가리는 월드바리스타 챔피언십도 아라비카종을 사용한다. 로부스타종 원두는 구수하고 쓴맛이 강해 묵직하다. 비레리카 원두도 있지만 전 세계 생산량은 2~3% 정도로 잘 쓰이지 않는다.

2017년 11월 3일자 파이낸셜뉴스 29면. 그 해에 서울에서 열린 WBC 대회 소개와 방준배 바리스타의 인터뷰 등이 실려 있다.
2017년 11월 3일자 파이낸셜뉴스 29면. 그 해에 서울에서 열린 WBC 대회 소개와 방준배 바리스타의 인터뷰 등이 실려 있다.

■알고 마시면 '아아'도 그냥 '쓴물'은 아니다

방준배 바리스타와 인터뷰 이후 커피와 원두의 세계에 대해서도 몇몇 가지 사실들을 더 알게 됐다.

'스페셜티커피'란 일정 환경에서 자란 커피 중 '미국 스페셜티 커피 협회(SCAA)'의 평가를 거쳐 기준점수 80점 이상을 받은 우수한 등급의 커피다. 서울 교대역 인근에서 초밥을 먹고 한 스페셜티커피 전문점에 들린 적이 있다. 스페셜티커피 중에서 특정 국가의 희귀한 원두만 사용한다는 그 가게의 커피 1잔 가격은 1만3000원으로 당시 스타벅스 커피 가격보다 2.5배 정도 비쌌다. 같은 원두를 사용하는 커피일 지라도 커피 원두 뒤에 'D'와 'W'라는 말이 적혀 있어 무슨 뜻인지 물었다.

카페 주인은 "원두를 수확해서 물로 씻은 원두는 'W(워터)', 원두를 수확해서 물로 씻지 않은 것은 'D(드라이)'라고 표기한다"며 "원두 수확 후 관리 방법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다"고 설명해줬다.

실제로 같은 아라비카 커피라고 할 지라도 품종에 따라,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재배하느냐에 따라, 어떻게 수확하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고 한다. 원두를 수확할 때 기계로 수확하면 비용은 줄지만 잘 익은 원두와 설 익은 원두가 섞여 맛이 줄어든다. 사람이 손으로 원두를 수확하더라도 손으로 훑어서 수확(스트립 피킹)하느냐, 손가락으로 하나씩 따서 수확(핸드 피킹)하느냐에 따라 또 차이가 있다.

또 단순히 '비싼 것이 더 맛있는 것'이라는 공식도 맞지 않다. 방 바리스타는 "세계 3대 커피는 지금처럼 스페셜티 커피가 다양하지 않던 시절 희소성이 높은 커피가 좋은 커피라는 인식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최근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세계 3대 커피의 의미가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당시 세계 3대 커피는 하와이안 코나, 예멘의 모카 마타리,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으로 알려져 있었다. 최근 가장 값비싼 식재료로 알려진 화이트 트러플 역시 맛과 향이 좋아서라기 보다 희소성이 높은 가격의 이유로 지적된다.

방 바리스타와의 만남 이후 가장 큰 수확이라면 이후 종종 소개팅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쓸 수 있는 레퍼토리가 하나 추가됐다는 것이다,는 농담이고, 커피를 마실 때면 조금 더 맛을 음미하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 그 전까지 '아아'는 기자에게 단순히 '쓴 물', 혹은 '졸릴 때 먹는 약' 같은 음료였다면 이후에는 조금 더 즐기기 위한 음료료 변했다.


스타벅스 바리스타가 다양한 커피를 만들고 있다.
스타벅스 바리스타가 다양한 커피를 만들고 있다.

■맥주, 소주에 타 먹지 말고 제대로 즐기는 법은?

같은 해 11월, 기자는 당대 세계 최고의 스타 셰프 중 한 명이었던 고든 램지를 직접 보게됐다. 미쉐린 3스타를 받은 영국 출신 셰프 고든 램지는 당시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오비맥주 초청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오비맥주의 '카스' 광고 모델을 한 그는 간담회 현장에서 "한국 맥주가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고 한 기자의 엉덩이를 걷어차주겠다"고 말하며 "한국의 맥주는 어떤 한국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훌륭한 맛"이라고 칭찬했다.

그 발언의 배경은 영국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 출신이었던 다니엘 튜더라는 기자가 칼럼을 통해 "북한 대동강 맥주 보다 맛없는 한국 맥주"라고 비판하면서 불거졌다. 이후에 한국 맥주는 '밍숭하다'거나 심지어 '오줌맛이 난다'는 등 한국 맥주는 맛이 없다는 선입견이 퍼졌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모르는 사실 중 하나는 다니엘 튜더는 해당 칼럼을 쓰고 얼마 지나 수제 맥주 브랜드를 론칭하고 가게를 차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2017년 11월 1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처음 내한한 영국 스타 쉐프 고든 램지(오른쪽)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램지는 "한국 맥주가 맛 없다고 말한 영국 기자의 엉덩이를 차주겠다"고 말했다. /사진=이환주 기자
2017년 11월 18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처음 내한한 영국 스타 쉐프 고든 램지(오른쪽)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램지는 "한국 맥주가 맛 없다고 말한 영국 기자의 엉덩이를 차주겠다"고 말했다. /사진=이환주 기자

한국 맥주는 강한 맛을 내는 에일 맥주와 달리 깔끔하고 신선한 맛을 내는 라거 맥주가 중심이다. 유럽 등 서구 국가들은 강한 맛의 맥주 자체를 즐기는 음주 문화로 인해 에일 맥주에 대한 선호가 높은 편이다. 하지만 한국은 치킨, 삽결살 등 다른 음식과 맥주를 함께 먹기 때문에 프레시한 맛의 라거가 적합하다는 설명은 생략된 것이다.

올해 다시 생활경제부를 출입하게 되면서 지난달 오비맥주가 진행하는 '비어마스터 클래스'를 참석했다. 맥주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쌓을 수 있었다.

원료와 발효법에 따라 맥주는 라거와 에일로 구분할 수 있다. 라거와 에일을 나누는 기준은 효모, 발효 온도, 발효 기간 등이다. 라거는 8~12도의 온도에서 25~30일의 발효 기간이 필요하다. 에일은 15~20도에서 10~14일의 상대적으로 짧은 발효 기간이 필요하다. 라거가 낮은 알코올 도수로 깔끔하고 청량한 느낌을 가진 반면, 에일은 알코올 도수가 높고 과일향이나 꽃향의 깊은 풍미를 가진다.

당시 교육을 진행했던 오비맥주 이예승 맥주문화교육팀 부장은 "음식과 맥주를 조합할 때는 크게 3가지 방식이 있는데 △강대강 △반대 △상호보완 등이다"며 "예를 들어 직화 고기처럼 강한 음식엔 강한 흑맥주(강대강)를, 느끼한 음식에는 청량한 맥주(반대)를 조합해 즐기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보통 매운 닭발을 먹을 때 반대로 시원하고 단 쿨피스를 많이 먹는데 부드러운 밀맥주 호가든과도 잘 어울린다"고 덧붙였다.

'호가든 보타닉'
'호가든 보타닉'

와인이든 커피든 맥주든 위스키든, 알고 먹으면 더 맛있다. 나태주 시인은 "오래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고 말했다. 이 말을 살짝 바꾸면 "오래 보아야 너를 더 잘 알 수 있다.
너를 더 잘 알게 되면 더 예뻐 보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hwlee@fnnews.com 이환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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