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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는 없는 지사제...안전상비약 품목 확대는 '요원'

이정화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09.30 13:30

수정 2023.09.30 13:30

편의점에 진열돼 있는 안전상비의약품들. /사진=뉴시스
편의점에 진열돼 있는 안전상비의약품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 서울에 사는 서모씨(32)는 매운 치킨을 먹은 뒤 시작된 설사가 멎지 않아 지사제를 사기 위해 밤늦게 편의점을 찾았다. 하지만 각종 진통제와 감기약, 밴드 사이에서 지사제는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지사제는 편의점에서 팔지 않는다고 해서 사지 못했다"며 "결국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고 토로했다.

편의점에서 진통제, 소화제 등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한 안전상비의약품(안전상비약) 제도 도입 후 10년이 넘도록 구매할 수 있는 약 종류는 도입 당시 정했던 13종에 머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제도가 안정적으로 운영돼 온 만큼 상비약 종류를 늘려 약 접근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안전상비약 제도 도입 10여년...품목 논의는 '멈춤'

30일 업계에 따르면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상비약 종류 확대 등을 논의하는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는 2018년 8월 6차 회의를 끝으로 5년째 열리지 않고 있다.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는 시민단체, 약학회, 의학회 등의 위원 추천을 받아 총 10명으로 꾸려진다. 6차 회의 당시 제산제, 지사제 등을 추가하는 안건이 유력하게 거론됐으나 위원들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최종 무산됐다. 제산제와 지사제는 안전상비약 제도를 도입할 당시부터 추가 지정이 필요하다고 언급됐던 품목이다.

안전상비약 제도는 약국과 병원이 문을 닫는 밤에도 국민이 의약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편의점에서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2012년 제도 도입 당시 타이레놀, 판콜에이, 판피린 등 의사 처방이 필요하지 않은 13개 일반의약품이 편의점에서도 판매할 수 있는 상비약으로 지정됐다. 안전상비약 제도는 병원과 약국이 문을 닫는 심야 공백을 효과적으로 메우며 약 접근성을 크게 확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래건강네트워크, 소비자공익네트워크 등 9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가 지난 5월 전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4.4%가 안전상비약 제도에 대해 알고 있고, 71.5%가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약을 구입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소비자 "안전상비약 제도, 약국 심야 공백 효과적으로 메워...품목 확대해야"

[서울=뉴시스]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가 지난 7월 열린 대표자 모임에서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를 위한 지정심의위원회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안전상비약 네트워크
[서울=뉴시스]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가 지난 7월 열린 대표자 모임에서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를 위한 지정심의위원회 재개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안전상비약 네트워크

문제는 이런 평가와는 별개로 품목 수 확대가 좀처럼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약사법상 상비약 품목은 20개까지 정하도록 돼 있다. 보건복지부는 제도 시행 1년 후 품목을 재조정하기로 하면서 품목 조정을 위한 검토와 논의를 지속하겠다고 했지만, 제도 도입 당시 정해진 품목 수 13개는 제도 도입 1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 사이 안전상비약 제도의 편의성을 경험한 소비자들은 정부에 안전상비약 품목 확대를 요구하고 나섰다.
안전상비약 시민네트워크는 품목 수를 법에 규정된 20개로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시민네트워크는 "국민들은 약국이 영업하지 않는 심야시간에 열이 나거나 몸이 아프면 편의점에서 안전상비약을 구입해 병의원 및 약국의 공백시간을 해결하고 있다"며 "안전상비약 제도는 안전성 담보가 가능한 선에서 국민들의 의견을 고려한 품목 확대 및 재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안전상비약은 엄격한 심사과정을 바탕으로 이미 국민의 자기투약이 승인된 품목인데도, 의약품의 오남용과 안전성 우려를 핑계로 품목 확대를 지연시키는 것은 이미 10년 전 도입된 제도의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clean@fnnews.com 이정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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