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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리더의 오판] 타성이 된 침묵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03 18:09

수정 2023.10.03 18:09

조직의 다양성 용인 않고
리더의 관점만 '정통' 인식
조직의 극단화…인재 떠나
[유효상 리더의 오판] 타성이 된 침묵
19세기 독일의 통일을 이끈 비스마르크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러시아 황제의 여름별장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다. 황제 알렉산드르 2세와 함께 산책하며 담소를 나누던 그는 중무장한 경비병들이 텅 빈 정원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 의아스러웠다. 비스마르크는 정원을 삼엄하게 지키는 이유를 물었지만 황제도 그 까닭을 몰랐다. 부랴부랴 연유를 알아보도록 지시했으나 경비대조차 무엇 때문에 경비를 서는지 알지 못했고, 그냥 오랜 관행이라고 했다.

사실 경비병이 정원을 지키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러시아의 여황제 예카테리나 2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른 봄 어느 날, 여황제가 정원을 산책하다 눈 속에 핀 설강화를 발견했다.
추운 날씨에 핀 설강화를 귀하게 여긴 황제는 정원에 초소를 세워 꽃을 지키도록 명령했다. 이후 꽃은 시들었고 예카테리나 2세도 꽃을 잊었다. 하지만 경비병들은 매일 보초를 섰다. 100여년이 흘러 비스마르크가 '왜?'라고 묻기 전까지, 그 누구도 빈 정원을 지키는 무장경비대의 이상한 전통을 문제 삼지 않았다. 이유를 몰라도 묻지 않고 무조건 따르는 집단의 관성, 바로 집단적 타성의 모습이다.

요즘 종이신문은 인기가 없다. 속도와 정보량에서 온라인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크기도 커서 펼쳐 읽기도 거추장스럽다. 도대체 신문은 왜 이렇게 크게 만든 걸까. 시작은 19세기 영국이다. 당시 영국 정부는 지식세를 도입하고, 신문의 페이지 수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신문사들은 세금부담을 낮추기 위해 신문을 크게 만들어 페이지 수를 줄였다.

당시 만들어진 신문의 크기는 21세기 현재 신문의 크기와 별로 다르지 않다. 가독성을 떨어뜨리는 비효율적인 크기의 종이신문은 왜 변하지 않은 걸까. 변화의 요구가 전혀 없었던 걸까? 물론 그렇지는 않다. 다만 변화의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신문은 (전통적으로)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 즉 타성의 힘이 변화를 막았을 뿐이다. 타성은 자주 '전통' 혹은 '정통'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된다. 타성이 견고해질수록 집단 내 다른 목소리는 무시되고, 침묵은 자연스럽게 조직문화로 자리 잡는다.

조직에서 타성이 강한 부류는 힘과 권한을 가진 리더들이다. 과거의 방식이 익숙한 이들은 기존 체제를 고수하려는 현상유지 편향이 매우 강하다. 과거 성공 경험을 통해 축적한 직관과 지식을 지나치게 과신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리더의 편향성이 빠르게 조직문화로 확산되는 것이다. 나쁜 리더십은 좋은 리더십보다 더 빠르게 조직을 오염시킨다. 사람들은 긍정적 경험보다 부정적 경험에 더 민감하고, 부정적 경험은 사고와 활동의 범위를 축소시킨다. 부정적 경험을 극복하려면 무려 5배의 긍정적 경험이 필요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관점, 프레임에 따라 세상을 해석하지만 조직의 다양성을 용인하지 않고 리더의 관점만 정상으로 인식하는 조직은 결국 극단화된다. 그래서 직원들의 뛰어난 아이디어나 의견도 소수의 리더가 만든 정상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만다. 하버드대 선스타인 교수는 조직의 모든 멍청한 의사결정은 집단의 극단화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프레임이 작동하는 순간, 구성원은 입을 닫게 되고 결국 침묵은 타성이 된다. 새로 영입된 젊고 능력 있는 인재들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결국 유능한 직원은 떠나고 무능한 리더만 남는다.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약력 △64세 △연세대 공학사 △연세대 공학석사 △서강대 경제학석사 △한국외대 경제학박사 △UC어바인 emba △차의대 경영대학원장 △일진창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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