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선발전서 늑골 부상…이 악물고 10살 이상 어린 선수들과 경쟁
"아내에게 금메달 걸어준다고 약속했는데…아내 덕분에 마지막까지 최선"
[아시안게임] 레슬링 김현우, 무통주사 맞고 출전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국가대표 선발전서 늑골 부상…이 악물고 10살 이상 어린 선수들과 경쟁
"아내에게 금메달 걸어준다고 약속했는데…아내 덕분에 마지막까지 최선"
(항저우=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2012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레슬링 간판 김현우(34·삼성생명)는 '화려한 피날레'를 하길 바랐다.
최고의 위치에서 후회 없이 모든 기량을 쏟아낸 뒤 깨끗하게 선수 생활의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그러나 김현우는 은퇴 무대로 삼은 대회마다 지독한 불운에 시달리며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초 은퇴 대회로 여겼던 2020 도쿄 올림픽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1년 연기됐고, 김현우는 출전조차 못 했다.
2021년 5월 불가리아 소피아에서 열린 도쿄 올림픽 세계 쿼터 대회 경기 전날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출전권 획득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김현우는 은퇴를 미루고 다시 훈련에 매진했다. 도쿄에서 풀지 못한 한을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쏟아내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김현우가 예비 신부 정영지 씨와 결혼을 2022년 연말로 잡은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는 아시안게임서 금메달을 딴 뒤 아내에게 걸어주며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으려고 했다.
그러나 항저우 아시안게임마저 1년이 연기됐다.
김현우는 심각하게 은퇴를 고민하다 다시 도전을 택했다. 그리고 이를 악물며 다시 훈련을 시작했다.
레슬링 선수에겐 '환갑'이나 다름없는 30대 중반의 나이지만, 그는 20대 후배들도 버티기 어려운 강도 높은 맹훈련을 소화했다.
올해 5월에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김현우를 넘은 국내 선수는 없었다.
그는 10살 이상 어린 청년들을 압도했다.
문제는 결승전이었다. 그는 박대건(제주도청)과 결승전 막판 갈비뼈를 다쳐 쓰러졌다.
경기는 승리했지만, 그는 일어나지 못했다. 인터뷰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고통에 시달렸다.
경기 직후 병원으로 이송된 김현우는 늑골막이 손상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김현우는 한동안 회복과 치료에만 전념했다.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일은 점점 다가왔고, 그는 훈련해야만 했다.
부상은 완쾌되지 않았다. 항저우에 도착한 뒤에도 통증은 계속됐다.
김현우는 경기가 열리는 4일 오전까지 통증이 따라오자 무통 주사까지 맞았다.
그는 그렇게 경기 출전을 강행했다.
메달 도전은 쉽지 않았다. 김현우는 이날 중국 저장성 항저우 린안 스포츠문화전시센터에서 열린 대회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77㎏급 1라운드 16강에서 자신보다 10살이 어린 이란의 아민 카비야니네자드에게 3-9로 패했다.
김현우는 포기하지 않았다. 패자부활전 1라운드에서 12살이 어린 딜쇼드 오몽겔디예프(우즈베키스탄)를 6-3으로 누르며 동메달 결정전에 진출했다.
그리고 마지막 동메달 결정전에서 중국의 류루이에게 3-5로 패하며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경기 후 만난 김현우는 "선발전 과정에서 늑골을 다쳐 파테르 방어 훈련을 거의 못 했고, 오늘도 무통 주사를 맞고 경기에 나섰다"라며 "이겨내 보려고 노력했으나 경기 결과가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대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라며 "이번 대회가 마지막 아시안게임인 만큼 후회 없이 뛰어보려고 했는데 아쉽다"고 덧붙였다.
그는 2024 파리 올림픽 도전에 관한 질문엔 "이 몸으로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라고 생각한다"라며 "휴식을 취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금메달을 목에 걸어준다고 약속했는데…"라며 아쉬워하다 "늑골을 다쳤을 때 혼자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아내가 씻겨주는 등 헌신적으로 도와줬다. 아내 덕분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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