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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전단’ 위헌 결정과 성찰 [fn기고]

이종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07 06:00

수정 2023.10.07 06:00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대북 저자세 기조, 국익 잠식 넘어 안보 저해 
 -대북전단살포금지법 위헌, 먼 길 돌아 제자리 
 -보편적 가치 외면 ‘수단’ 위해 ‘목적’ 포기한 모순 
 -남북합의서 특정, 헌법에 보장한 표현의 자유 위배 
 -대북전단살포금지, 안보와 연결하는 논리적 모순·오류 
 -무너뜨리긴 쉬우나 복원은 고되고 힘들어 반면교사 삼아야 
[파이낸셜뉴스]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지난 정부에서 대북 저자세가 도마에 오른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북 저자세 기조나 인식은 분명 국익 잠식을 넘어 안보를 저해하는 사안이었다. 그런데 ‘대북 저자세 vs. 남북협력’의 주장이 대치를 벌이는 혼돈 속에서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따져 묻는 노력은 정교하지도 단호하지도 못했다. 이러한 빈틈 속에서 2020년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국회에서 처리되어 신설되었다. 상식을 벗어난 정부와 국회의 일탈이었지만 북한이탈주민과 대북 인권활동가의 한숨과 눈물은 외면되었다. 그리고 여러 해가 지나면서 대북전단살포금지가 ‘뉴노멀(New Normal)’이 된 것처럼 다수의 국민들에게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분위기마저 나타났다.
다행히 지난 9월 26일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상식에 벗어난 법’이 ‘뉴노멀’이 아니라 ‘재노멀화(원상복귀)’되는 기회의 길이 열렸다.

헌재의 판단으로 정상화의 길은 열렸지만 단순히 기뻐할 일도 아니고 이제 안심할 일은 더욱 아니다. 지극히 당연한 것을 되찾는데 너무 멀리 돌아왔다는 반성과 성찰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와 유사한 행태가 언제라도 다시 부상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둘러싼 문제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첫째,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은 남북협력을 위해 북한인권을 외면하는 모순 그 자체였다. 남북협력은 우리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한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할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런데 잘 사는 세상을 위해서 인권 등 보편적 가치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런 의미에서 ‘인권’은 목적에 해당된다. 대북전단을 통해 북한주민이 폐쇄된 공간 밖의 세상에 대해 알게 되고 이런 정보가 누적되면서 북한정권도 주민들의 인권을 함부로 유린하지 못하게 종용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 남북협력을 운운하고 접경지역 안보를 위한다는 회색지대 주장으로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을 처리한 것은 ‘수단’을 위해 ‘목적’을 포기한 모순 그 자체였다.

둘째, 대북전단살포금지와 표현의 자유 간 충돌을 묵과했다는 점이다. 헌재는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서 ‘제24조(남북합의서 위반행위의 금지) 3항 전당 등 살포’를 특정하여 헌법에 어긋난다는 결정했다. 대한민국헌법 제21조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헌법을 위배하는 무리수를 두면서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번영을 이루고 자유민주주의의 롤모델이 된 대한민국이 이런 법을 냈다는 것은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당연히 한국의 소프트파워도 흠집이 생기고 말았다.

셋째, 대북전단살포금지와 안보를 연결시키는 논리적 모순이다. 대북전단이 살포되면 북한이 군사적 대응에 나서게 되고 이는 결국 지역주민을 위태롭게 한다는 논리를 들어 이를 강행 처리했다. 이러한 논리는 GFP(Global Fire Power) 기준 세계 6위 군사강국인 한국이 북한의 접경지역 내 전술적 도발에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런 전제가 아니라면 단호하게 대응하면 안 된다는 주문의 성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은 태생부터 모순과 오류로 가득했다.
태생이 잘못된 법을 정상화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그것이 상식에 부합하는 세상의 모습이다. 상식을 무너뜨리는 것은 쉽지만 복원하는 길은 고되고 힘들다.
상식이 무너진 후에 후회하거나 불필요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어리석음이 없도록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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