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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규칙기반 질서 위기 [fn기고]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17 06:00

수정 2023.10.17 08:01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신냉전 국제정치, 선전포고도 명분도 없는 규칙기반 질서 위기 직면 
 -하마스의 무차별 예방타격은 전쟁이전과 전쟁 수행간 원칙 모두 위반 
 -이스라엘의 반격 작전은 자국민 보호와 국제법 보장한 자위권에 해당 
 -다만 이스라엘 전쟁의 목적을 넘어선 대규모 보복과 '점령'은 완전히 달라 
 -이스라엘, 전쟁수행의 명분을 잃게 되면, 권위주의 진영 더욱 결속 나설 우려 
 -이·하 전쟁 5차 중동전쟁으로 비화되는 파국 막는 성찰과 대책 마련 절실
[파이낸셜뉴스]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반길주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 국제기구센터장
신냉전 국제정치에서 규칙기반 질서가 위기에 직면한 상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러시아는 2022년 2월 24일 상대국의 주권을 군사력을 강탈하는 전쟁을 개시했다. 러시아의 침공은 ‘정의의 전쟁론(Just War Theory)’을 통해 국제사회에 자리를 잡아 온 전쟁규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었다. 침략국 러시아는 ‘개전 조건’에 해당하는 선전포고도 하지 않았고, 전쟁 개시를 위한 정당한 명분도 없었다. 전쟁 이전의 전쟁규칙 위반뿐 아니라 러시아는 ‘전쟁수행’ 간 규칙도 정면으로 위배했다. 무력사용의 ‘비례성’도 위반했고, 일반시민을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구분성’도 위반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후 불과 1년 7개월 남짓 된 시점에 이번에는 중동에서 전쟁규칙 위반 상황이 발생했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군사적 공격을 감행한 것이다.
하마스의 공격은 선전포고도 없었고 정당한 명분도 부재했다는 점에서 전쟁 이전의 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했다. 특히 이스라엘이 애초에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를 공격할 계획이 없었다는 점에서 하마스의 공격은 그 성격상 ‘선제타격(Preemptive strike)’이 아닌 ‘예방타격(Preventive strike)’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법적으로 예방타격은 자위권에 해당되지 않는다. 나아가 하마스는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고 인질전을 벌이고 있다는 점에서 ‘구분성’도 정면으로 위반했다. 즉 하마스는 전쟁 이전과 전쟁 수행 간 원칙을 모두 위반한 것이다.

기습공격을 받은 이스라엘이 반격작전에 나선 것은 국제법으로 보장한 ‘자위권’에 충분히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추가 공격을 막고 자국의 국민을 지키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할 권한이 있다. 한편 이스라엘의 반격이 레드라인 없이 무한정으로 보장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에도 전쟁수행 원칙인 ‘비례성’과 ‘구분성’을 준수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지상군 투입 및 작전은 비례성과 구분성을 판단하는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이다.

무장정파가 기습전을 감행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자위권 차원에서 반격하는 것과 전쟁의 목적을 넘어서서 대규모 보복이니 심지어 ‘점령’까지 나서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만약 이스라엘이 후자를 선택하게 된다면 전쟁수행의 명분을 잃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더욱이 이 경우 자유주의 진영의 국가도 규칙기반 질서를 위반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호를 제공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되면 권위주의 진영은 더욱 결속에 나서게 되고, 앞으로 규칙 위반에 일상화되는 국제사회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일부 거점에서 펼쳐지는 소전쟁으로 끝날수도 있고 아니면 5차 중동전쟁으로 비화되는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다. 소전쟁으로 끝나더라도 이미 그 피해가 막심하다는 점에서 성찰과 후속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런데 심지어 5차 중동전쟁으로 번지게 되면 국제질서에 전쟁의 시대가 부상하는 비극이 도래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이 ‘비례성’과 ‘구분성’이라는 전쟁수행 원칙을 준수하는 지 여부는 이러한 방향성에 상당히 영향을 줄 것이다. 나아가 이스라엘의 선택지는 규칙기반 국제질서 향방에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미칠 것이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하루속히 종료되고 시민에게 일상을 되돌리려는 노력이 국제사회 전체와 무관치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wangjylee@fnnews.com 이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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