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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하의 본초여담] 공자는 먹는 것에 신중했지만 항상 OO만은 즐겨 먹었다

정명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21 06:00

수정 2023.10.21 10:26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 주>

<논어(論語)>(왼쪽)의 향당(鄕黨)편에는 ‘공자는 항상 생강(生薑)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지만 많이 먹지는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논어(論語)> (왼쪽)의 향당(鄕黨)편에는 ‘공자는 항상 생강(生薑) 먹는 것을 멈추지 않았지만 많이 먹지는 않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공자는 먹는 것에 항상 신중하면서도 까다로웠다. 쌀밥도 현미보다는 껍질을 제거한 백미를 즐겼다. 소고기나 양고기, 그리고 생선도 날로 해서 회(膾)로 해서 먹었는데, 가늘고 얇게 썬 것을 좋아했다.
밥을 짓는 쌀은 정미(精微)로우면 사람을 자양할 수 있고, 회는 거칠면 사람을 해(害)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항상 좋은 음식만을 먹고자 한 것은 아니다. 비록 거친 현미밥과 다른 반찬이 없이 나물국만 있어도 항상 고수레를 하고 나서 마음을 가다듬고 감사한 마음으로 식사를 했다.

그런데도 “나는 정미로운 밥과 잘 썰린 회가 싫지 않구나.”라고 하는 통에 제자들은 어떻게든지 좋은 음식을 올려 드리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공자의 밥상이 그대로 나왔다. 제자들은 ‘스승님이 입맛이 없으신건가? 위에 탈이라도 나신 걸까?’하고 걱정했다. 그런데 다름이 아니라 밥은 이미 쉬어 있었고 날고기와 생선회는 부패해 있었기 때문에 밥상을 물린 것이다. 사실 당시로서는 하루이틀만 지나도 음식이 쉽게 상하기 일쑤였다.

공자는 상하여 쉰밥과 상한 생선, 부패한 고기는 아예 손도 대지 않았다. 그리고 상하지 않았을지라도 음식의 색이 오행(五行) 색을 띠지 않고 빛이 좋지 않은 것과 냄새가 일상적이지 않으면 젓가락을 들지 않았다. 또한 제대로 익히지 않고 음식과 철에 맞게 익지 않은 곡식이나 과실은 먹지 않았다.

사실 공자는 과거에 상한 음식을 먹고 곽란토사(癨亂吐瀉)를 한 적이 있어서 음식을 먹는데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또한 제대로 익히지 않거나 덜 익은 곡물이나 과일에는 식독(食毒)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자는 음식을 가려서 스스로 자신의 건강을 챙기고 있음에도 제자들은 ‘스승의 입맛이 까탈스럽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공자는 심지어 신선하고 빛깔도 좋고 풍미가 좋은 고기일지라도 네모반듯하게 잘라놓지 않으면 먹지 않았다. 또한 고기를 반듯하게 잘라놓았어도 그 고기에 맞는 장(醬)이 없으면 먹지 않았다.

제자들은 ‘스승님이 결벽증이 있는 듯하다.’라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공자가 잘린 고기가 정(正)하지 않으면 먹지 않은 것은 자신의 마음이 한시라도 반듯함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다짐인 것이었다. 그러나 제자들은 스승의 깊은 속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한나라 때 육속(陸續)의 어머니도 육속이 옥에 갇혀 있을 때 고깃국을 넣어 준 적이 있었다. 육속은 고깃국에 들어간 고기와 파의 정갈함만을 보고도 어머니의 칼집임을 알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육속의 어머니가 자른 육고기의 잘림은 정(正)했고 파는 항상 한 치가 기준이 되었다. 육속 또한 어머니가 반듯하게 자른 고기를 보고서 마음을 바르게 가다듬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고기를 찍어 먹는 장도 마찬가지였다. 제자들은 ‘스승의 입이 짧다.’라고 여겼지만, 공자는 모든 것은 자신에게 합당한 바가 있으니 그 합당한 바를 취하고자 했던 것뿐이었다. 그래서 소고기는 천초장(川椒醬), 돼지고기는 대두장(大豆醬), 양고기는 소산장(小蒜醬, 달래장)이 합당하다고 여겨 그렇게 먹고자 했다. 생선회는 개장(芥醬, 겨자장)이 아니면 먹지를 않았다.

공자는 사물에 있어서도 서로 마땅함이 아니라면 함께 두지 않았다. 이러한 것은 몸을 해하지는 않지만 마음을 어수선하게 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고기가 충분하고 맛이 좋다 할지라도 밥의 양을 넘기지 않았다. 공자는 항상 육(肉)의 기운이 곡(穀)의 기운을 이긴다고 생각했고, 육류는 사람을 난폭하게 하고 곡류는 사람을 차분하게 만든다고 여겼다. 고기는 밥과 궁합이 잘 맞고 입맛을 당기게 하며 기운이 나게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욕심내지 않은 것이다.

공자는 과도한 욕심을 부리지 않고 항상 일정한 정도에서 만족하는 법을 알았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에도 항상 배가 불러오기 전에 숟가락을 놓았다. 당연히 고기는 많은 양이 남았다. 그러나 어리석은 일부 제자들은 ‘이 맛있는 고기를 남기시다니… 스승님이 입이 짧구나.’하고 여겼다.

공자는 술도 즐겼지만 취할 정도까지 마시는 법이 없었다. 술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말이 많아지게 한다. 그러나 취하면 그 말이 두서가 없어지고 절도가 없으니 혼란에 빠짐을 경계했다. 적당한 술은 기혈의 순환을 촉진시키지만 과도한 술은 기혈을 어지럽게 하기 때문이었다.

공자는 항상 집에서 만든 육포와 술만을 먹고 마셨다. 시장에서 산 육포와 술은 어떤 재료가 들어가고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를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미혹함이 있었다. 게다가 시장의 음식이 정결하지 않다고 여긴 것이다.

공자는 음식을 먹는 매사에 조심스러워 했다. 사실 항상 누군가 자신을 해할지 모른다는 불안함도 있었다. 한번은 노나라의 계강자가 여러 가지 패물과 함께 약을 보내왔다. 공자는 사신에게 대신 절을 두 번해서 배웅하고서는 패물과 약을 받았다.

그러나 공자는 약을 받고서는 “제가 이 약을 잘 알지 못하니 감히 맛을 보지 못합니다.”라고 정중하게 사양했다.

계강자는 공자의 정적이었다.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를 떠돌게 된 것도 바로 계강자의 계략 때문이었다. 그래서 공자는 계강자가 보낸 약을 안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공자는 항상 먹은 것에 신중했다. 그런데 제자들이 보기에 항상 의아스럽게 생각하는 점이 있었다. 공자는 식사를 마치면 항상 무언가를 씹어 먹었다. 또한 평상시에도 간혹 입안에 무언가를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간간이 가볍게 씹다가 뱉는 것을 반복했다. 특히 책을 읽는 동안에는 반드시 그 무엇을 씹고 있었다. 제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드시는 것일까? 항상 소식하시더니 배가 고파 구복(口腹)을 채우시는 것인가?’하고 궁금해했다.

제자들 중 한 명이 공자가 씹다가 버린 것을 주워 맛을 보았다. 매운맛과 향이 바로 혀와 코에서 느껴졌다. 바로 생강이었다. 공자는 항상 생강을 씹고 있던 것이었다.

제자들은 궁금해서 물었다. “스승님, 항상 생강을 씹으시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배가 고프시면 식사량을 더 올리겠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식사량은 지금도 충분하다. 내가 생강을 씹는 이유는 생강이 신명(神明)을 통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강은 몸의 더러운 기운과 악취를 제거한다. 그래서 항상 생강을 씹는 것이다.”라고 했다. 제자들은 그 좋은 것을 자신들에게는 알려주지 않고 자신만 씹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아무리 스승이지만 서운했다.

제자들도 그 뒤로 스승을 따라서 생강을 씹었다. 책을 읽을 때, 동료들과 강독을 할 때, 심지어 휴식을 취할 때에도 생강을 씹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 전까지 밥 먹는 시간만 빼고 생강을 씹었다. 생강이 신명을 통하게 한다니 그 얼마나 반가운 소리인가.

그런데 제자들은 신명이 통하기는커녕 머리가 멍해지고 산만해졌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부족해지고 판단력이 흐려졌다. 평상시 지혜롭기도 소문난 제자는 갈등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엉뚱한 답을 내기도 했다. 어느 제자는 심기가 불편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밤늦게 책을 읽을 때 씹으면 잠도 오지 않았다.

제자들은 머리가 맑아지기는커녕 부작용까지 심하니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공자에게 따져 물었다. “스승님, 스승님께서 생강을 씹으면 신명이 통한다고 하셨는데, 저희들은 모두 머리가 멍해지고 총명과는 점차 멀어지고 있느니 어찌 된 일입니까?”
그러자 공자는 “생강을 즐겨 먹되 많이 먹으면 안된다. 내가 미처 그것을 말하지 않았구나. 나의 제자라면 이미 모든 것에 욕심을 내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라 여겼다.”하고 답했다.

그러자 생강 씹기에 욕심을 낸 제자들의 얼굴이 붉어졌다. 항상 절제하고 과욕을 부리면 안된다는 스승님의 가르침이 있었기 때문에 창피했다. 다시 한 제자가 물었다.

“생강이 적절한 양에서는 신명을 통하게 하고, 과도한 양에서는 정신을 산만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러자 공자는 “생강의 매운맛 때문이다. 매운맛은 발산을 시킨다. 그래서 생강뿐만 아니라 다른 매운맛도 과도한 양을 먹게 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산만해지는 것이니, 이를 명심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후로 제자들도 생강을 욕심내지 않고 조금씩 씹어 먹었더니 정말 신명이 통하는 것이 느껴졌다. 악기(惡氣)가 제거되어 몸에서 나는 악취가 줄었고 입 냄새도 없어졌다. 특히 으슬거리면서 추운 날이나 습한 날에 생강을 씹으면 몸의 기운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생강은 적당하게 먹으면 정신을 맑게 하지만 그렇다고 과도하게 먹지 말아야 한다. 생강은 적당량에서는 냉증을 제거하며 기침, 두통, 코막힘, 구역감을 없앤다. 그러나 열병이나 눈병, 피부병, 치질에는 꺼린다. 아무리 몸에 좋은 것이라도 써야 할 만한 적응증이 있는 법이고 과하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다.

* 제목의 ○○은 ‘생강’입니다.

오늘의 본초여담 이야기 출처

<논어(論語)> 鄕黨. ○ 食不厭精, 膾不厭細. 食饐而餲, 魚餒而肉敗, 不食. 色惡, 不食. 臭惡, 不食. 失飪, 不食. 不時, 不食. 割不正, 不食. 不得其醬, 不食. 肉雖多, 不使勝食氣. 惟酒無量, 不及亂. 沽酒市脯不食. 不撤薑食. 不多食. 祭於公, 不宿肉. 祭肉不出三日. 出三日, 不食之矣. 食不語, 寢不言. 雖疏食菜羹, 瓜祭, 必齊如也. (향당편. 공자께서는 밥은 정한 것을 싫어하지 않으시고, 회는 가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다. 상하여 쉰밥과 상한 생선, 부패한 고기를 먹지 않으셨으며, 빛깔이 나쁜 것과 냄새가 나쁜 것을 먹지 않으셨으며, 요리를 잘못한 것과 제철에 나지 않는 것을 먹지 않으셨다. 자른 것이 바르지 않으면 먹지 않으시고, 제격에 맞는 장을 얻지 못하면 먹지 않으셨다. 고기가 많더라도 밥보다 많이 잡수시지 않으시고, 술은 일정한 양이 없으셨으나 어지러운 지경에 이르지는 않으셨다. 시장에서 산 술과 포를 먹지 않으셨으며, 생강 먹는 것을 그만두지 않으셨으며 많이 먹지 않으셨다. 나라의 제사를 도울 적에 받은 고기는 그날 밤을 넘기지 않으셨으며, 집에서 제사지낸 고기는 3일을 넘기지 않으셨으며, 3일이 지난 것은 먹지 않으셨다. 음식을 먹을 때는 말씀하지 않으시고, 잠자리에 누웠을 때도 말씀하지 않으셨다. 비록 거친 밥과 나물국이라도 반드시 고시레를 하시되 반드시 마음을 가다듬으셨다.)
○ 問人於他邦, 再拜而送之. 康子饋藥, 拜而受之. 曰丘未達, 不敢嘗. (다른 나라에서 안부를 여쭈면 절을 두 번 하고 배웅하셨다. 계강자가 공자에게 약을 보내자, 공자는 절을 하고 받으시고는 ‘제가 이 약을 잘 알지 못하니 감히 맛을 보지 못합니다.’하고 말씀하셨다.)
<식료본초> 生薑. 食之除鼻塞, 去胸中臭氣, 通神明. 多食少心智. (생강. 복용하면 코가 막힌 것을 제거하고 흉중의 악취를 제거하며 신명을 통하게 한다. 많이 먹으면 총명함을 떨어뜨린다.)
<본초정화> 生薑. 弘景曰, 久服, 少志, 少智, 傷心氣. (생강. 도홍경이 말하기를 오래 복용하면 의미와 지혜가 적어지고 심기를 손상시킨다고 했다.
)
<향약집성방> 生薑. 久服少志少智, 傷心氣. 如此則不可多食. 長御有病者是所宜爾. 今人瞰諸辛辣物, 惟此最常. 故論語云 不撤薑食, 言可常瞰, 但勿過多爾. (생강. 장복하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의지가 약해지며, 심기가 손상되니, 많이 먹으면 안 된다. 하지만 오랫동안 아픈 환자에게는 적합하다.
요즘 사람들은 각종 매운맛을 많이 먹으면서도 생강을 늘 먹는다. 그래서 논어에서 ‘생강 먹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라고 한 것이니, 늘 먹더라도 과하게 먹지는 말라.)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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