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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 이제 책상머리 떠나 시장에서 민생 챙길 때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17 18:33

수정 2023.10.17 18:33

성장서 물가관리로 피버팅
서민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물가안정 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민생·물가안정 관계장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가 성장 일변도에서 물가 관리로 피버팅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과 소통을 주문한 데 이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17일 열린 민생물가 안정 관계장관회의에서 서민물가 안정에 총력을 쏟을 것을 강조했다. 정책기조의 무게중심 이동이 읽힌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이날 "서민 장바구니 물가 안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민생 안정을 도모할 규제혁신을 과감히 추진하겠다"며 민생 안정에 힘을 쏟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대통령실과 정부 그리고 집권여당이 모두 민생경제 살피기를 우선에 두겠다는 공통된 스탠스를 보이고 있다. 서민들은 왜 이제 와서야 민생을 챙기냐는 반응이다. 강서구청장 선거 완패가 아니었다면 이런 태도 변환이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민생을 챙기겠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여론에 화답하는 민생 챙기기에 나서려면 보여주기식 구호로 될 일이 아니다. 몇 가지 마인드셋의 전환이 요구된다. 먼저, 모범생 사고방식으로 민생을 챙기려는 태도다. 지금까지 정부는 민생 챙기기를 지표 중심으로 따지려는 성향이 강했다. 올 상반기부터 정부는 줄곧 물가가 하반기에 안정화될 것이란 이야기만 되풀이했다.

물가는 2%대로 안정화되는 추세도 보였으나 다시 3%대로 고개를 드는 형국이다. 이 상황에 대해 정부는 뭐라고 답할 것인가. 물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치상으로 연간 물가상승률을 전망치 범위 내로 잡을 길도 있다. 그러나 지표상 통제 관리한 물가 수치와 서민이 체감하는 물가 부담이 다르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지표 관리가 탁상행정이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민생의 체감은 숫자로 찍히는 지표와 성질이 다르다.

하루빨리 성장해야 한다는 조급성도 물가를 놓치는 요인이다. 유류세 인하 연장 논란이 대표적이다. 상반기에 유류세 인하 연장을 끝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제기된 바 있다. 물가가 하반기에 안정세에 접어들 것이란 예단만 믿고 이런 주장들이 나왔다. 세수가 펑크날 것이란 우려가 커지자 세입 확대 차원에서 이런 주장은 더욱 탄력을 받았다.

탁상행정의 전형이다. 실제로 물가가 다시 고개를 드니 이런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물가가 어디로 튈지 단기적으로 예단하는 건 어리석은 행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에 돌입한 탓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늘어놓을 수 있다. 그러다 이번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 돌발변수로 등장했다.

외부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유가는 또 치솟기 시작했다. 실제로 국제유가가 재급등하면서 수출·수입 제품 물가가 석 달 연속 상승했다. 9월 기준 수입물가지수는 8월보다 2.9% 올랐다. 지난 7월부터 석 달 연속 상승세다. 9월 기준 수출물가지수도 전달보다 1.7% 올라 역시 7월부터 상승랠리다. 하반기에 물가안정이 예상됐는데 또 다른 대외 돌발변수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할 것인지 묻고 싶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민생 안정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하다는 입장을 내놓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의 남은 역할은 무엇이란 말인가. 민생 챙기기의 마지막 보루는 현장과의 소통이다.
김장비용이 너무 올라 부담이 크다는 이야기나 과일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 사 먹을 수 없을 지경이란 하소연은 귀가 닳을 만큼 흔하다. 체감물가 부담의 원인과 처방책은 현장에 이미 나와 있다.
바닥정서를 모르고 민생 실천과 혁신을 내세우는 헛된 구호는 이제 그만 외쳐야 할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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