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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상머리 교육' 해보셨습니까

김관웅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25 11:57

수정 2023.10.25 16:36

[연합뉴스 자료사진]
[연합뉴스 자료사진]


[파이낸셜뉴스] 어릴적부터 어른들과 밥상을 마주할 때는 늘 엄청난 인내가 필요했다. 커다란 상에 빽빽하게 자리한 숟가락을 찾아 앉을때면 늘 조바심이 났다. 입에 맞는 반찬이 올라있으면 특히 더 그랬다. 주린 배를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어른들은 왜 그렇게 숟가락을 늦게 드는지, 숟가락을 들기 전에 웬 말이 그렇게 많은지' 때론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눈만 반짝일 뿐 어른에 앞서 숟가락을 먼저 들지 못했다. 어린시절 이미 여러 번 혼났기 때문이다.


밥상머리는 인내와 절제를 익히고 더 나아가 배려와 양보를 배우는 곳이다. 많은 젓가락이 오가는 밥상에서 맛있는 반찬에만 계속 손이 가는 것도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아무리 가족이라 하더라도 밥상을 같이 받아든 처지에 이는 분명 예절에 어긋나는 일이다. 인내와 절제를 이 과정에서 배우게 된다. 접시의 바닥이 드러나기 전에 젓가락질을 줄이는 것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배려와 양보를 배운다.

밥상머리는 작은 사회다. 그 곳에서 배운 인내와 절제, 양보와 배려는 사회화의 가장 중요한 과정으로 나중에 인품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동서양 모두 밥상머리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해왔다. 우리 선조들은 좋은 가문일수록 자식 교육을 시작할때 '글 공부'에 앞서 '사람 공부'를 먼저 시켰다. 남다른 교육방법을 자랑하는 유대인들은 식사시간에 가족들이 한 자리에서 모여 여러 현안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다양한 생각을 교환한다. '하브루타 교육'이다. 2006년 하버드대학교의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어린 아이들은 가족과 식사를 하는 과정에서 어휘를 익히고, 이야기 하는 방법을 체득하고, 상식과 지식을 섞어 문화적으로 말하는 방법을 체득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가족이 모두 모이는 밥상을 마주할 일이 많지 않다. 핵가족화로 가족 구성원이 적어진 탓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입시 위주의 학원 문화 때문이다. 요즘 주부는 저녁 밥상을 두세 번 차린다고 한다. 학교를 마치고 학원을 향하는 자녀에게 한두 번,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또 한 번 차린다. 어린 학생들이 혼자 밥상을 받는다는 것은 무얼 의미할까. 독상을 받는다는 것은 식탁 전체를 지배할 수 있기 때문에 인내와 절제, 배려와 양보 미덕이 필요없다. 학원 시간에 맞추기 위해, 혹은 학원 가기 싫어하는 자녀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상황이면 더욱 그렇다.

얼마 전 서울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 그동안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던 학부모들의 갑질에 사회가 놀라고 있다. 내 자식만 중요하고 다른 사람의 자녀는 안중에도 없었다. 교사가 자기 자녀의 잘못된 행위를 저지하거나 정당한 훈계를 해도 자기 자식을 무시하거나 학대한다고 몰아부쳤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못한 자녀보다 부모가 더 문제였다. 젊은 부모세대들 자체가 제대로 된 밥상머리 교육을 받지 못한 탓이다.
인내와 절제를 배우지 못했으니 사회생활에서 만나는 어려운 상황을 참지 못하고, 배려와 양보를 해본 적이 없으니 약자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없는 것이다.

자녀는 어른을 비추는 거울이다.
교육이란 선생님에게 배우는 것을 의미하지만, 진짜 교육은 부모의 삶을 밥상머리에서 배우는 것이다.

kwkim@fnnews.com 김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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