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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자 리커창 전 中총리 사망 "심장병".. 경제 엘리트[종합]

정지우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27 10:26

수정 2023.10.27 10:26

- 후진타오 만나면서 정치적 급성장.. 시진핑 시절에도 경제 위한 독자적 목소리 내며 호응
- 포털사이트 바이두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 흑백으로 처리하며 '애도'
흑백으로 처리된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 바이두 캡처
흑백으로 처리된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 바이두 캡처

【베이징=정지우 특파원】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사망했다고 관영 중국중앙방송(CCTV)이 보도했다.

27일 매체에 따르면 리 전 총리는 최근 상하이에서 휴식을 취해왔으며, 전날 갑작스러운 심장병이 발생했고, 이날 0시 10분 6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부고는 추후 발송될 예정이라고 CCTV는 전했다.

중국 최대 포털사이트 바이두의 인물 정보 검색 등을 보면 리 전 총리는 중국 안후이성 동부 추저우의 딩위안현에서 1955년 7월에 출생했다.

안후이성 명문인 허페이 8중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졸업 후인 1974년 19세의 나이로 당시 마오쩌둥의 “지식청년은 농촌으로 가서 배우라”는 ‘상산하향’ 운동에 동참해 펑양현 다먀오공사 다먀오대대 생산대에서 근무한 뒤 1976년 다먀오대대 당지부 서기를 지냈다.

중국 공산당에 입당한 것은 같은 해 5월이다.
1982년 베이징대학교 법학과를 거쳐 1988년 베이징대학교 경제학 석사와 1994년 베이징대학교 경제학 박사를 각각 졸업했다.

정치적으로 급성장한 계기는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중앙학교부 부장으로 있을 때인 1983년이다. 리 전 총리는 그해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였던 후진타오를 만났다. 두 사람은 동향의 선후배다.

이후 공청단 중앙서기처 서기와 공청단 중앙서기처 제1서기, 허난성 당위원회 서기를 역임했다. 44세 때는 허난성의 최연소 성장이 되기도 했다. 그 뒤로도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주임,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을 거쳐 후진타오 전 국가 주석 시기인 2008년부터 국무원 부총리를 맡는 등 출세 가도를 달렸다.

중국 최고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연례회의가 2022년 5월 개막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리커창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중국 최고 입법기관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연례회의가 2022년 5월 개막한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이 리커창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취임한 뒤인 2013년부터 올해 3월까지 ‘중국 2인자’인 국무원 총리직을 수행하면서 중국 경제 정책을 총괄했다. 영어에 능통하며 연설도 가능하다.

한때 시 주석의 경쟁자이기도 했던 리 전 총리는 재임 시절 ‘시진핑 1인 체제’가 공고화된 이후에도 민생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며 중국 민중들의 호응을 얻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해 4월 코로나19 확산과 엄격한 방역 통제로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 등이 전면 봉쇄돼 경제가 충격을 받자 “과도한 방역으로 물류가 차질을 빚고, 농업 인력과 농자재 이동 통제로 곡물 수확이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소신을 밝힌 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집단지도체제가 약화하고 시 주석에 권력이 한층 집중되면서 리 전 총리의 영향력은 갈수록 약해졌다. 그는 올해 3월 리창 총리에게 자리를 넘기고 퇴임했다.


바이두와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는 리 전 총리 사망 소식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렸으며, 인물 검색과 관련 소식을 흑백으로 처리하며 애도하고 있다.

jjw@fnnews.com 정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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