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집 주변 골목도 못 가겠어요"… 1년째 정신과 치료 중 [이제 1년, 이태원 참사는 진행중]

노유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0.31 18:14

수정 2023.10.31 18:14

<4> 상처 속 살아가는 생존자
골목 가면 공황… 좁은 탈의실도 불안
"이태원에서 지인 만나 식사했을 뿐
그곳에 갔다는 이유로 비난 너무해"
"좋은 시간 보내려 갔다가 사고 당한 게 죄라니요.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은 집에서 안나와야 되는것 아닌가요."

이태원 참사 생존자인 20대 여성 김모씨의 이야기다. 그는 당시 지인들과의 모임을 하기 위해 이태원에 가 있다가 사고를 당했다. 다행히 살아남았지만 여전히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상처가 아물지 않는 것은 '2차 가해' 때문이라고 했다. 김씨는 "내가 한 일이라면 그날 이태원에 가서 사람을 만나고 식사하며 시간을 보낸 것 뿐"이라며 "비난하는 사람들도 평소 가족들이랑 영화도 보고 다니고 놀러 다닐 것 아닌가. 단지 휴일에 그곳에 갔다는 이유만으로 욕을 먹는건 너무하다"고 말했다.

■ "집 주변 먹자골목도 못 가"

지난해 10월 29일 오후 10시 20분께 김씨는 인파에 휩쓸려 골목으로 딸려갔다.
김씨는 세계음식문화거리에서 사고가 난 골목으로 들어가는 초입 부근에서 사람들 사이에 끼었다. 군중들 사이에서 신음소리와 비명이 이어졌다. 30분 뒤인 오후 10시 50분께 경찰의 지시에 따라 사람들이 움직여 길을 내주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나마 골목 안쪽까지 밀려 들러가지 않았기에 화를 면할 수 있었다. 다만 전신근육통으로 일주일 내내 전신에 파스를 붙였다고 했다.

살았다고 해서 김씨가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김씨는 그날 이후 지금까지 급성 스트레스 증후군 등으로 3주에 1번씩 병원에 내원해 정신과 진료받고 있다.

김씨는 "집 주변에 먹자골목이 있는데 그곳도 못 가겠다"며 "한번은 하필 그쪽에서 약속이 있어 가다가 갑자기 공황이 찾아왔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정신이 멍해지고, 이 장소를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안 들고 손이 벌벌 떨리고 심장이 쿵쿵쿵 뛰는 게 느껴졌다"며 "지금도 최대한 번화가는 피해 다닌다"고 덧붙였다.

조금이라도 몸을 압박하는 느낌이 들면 불안하다고도 했다. 김씨는 "와이어가 있는 브래지어도 다 버렸고 옷 가게의 좁은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도 불안할 때가 있다"며 "일회용 마스크보다 조금 도톰한 정도인 KF94 마스크도 숨이 답답한 느낌 때문에 못 썼다"고 했다.

■ "현장에서 본 경찰 1명 뿐"..."왜 이태원 참사를 천안함과 비교하며 욕하나"

1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몸과 마음이 다친 부분은 치유의 과정에 있다. 하지만 정작 김씨를 계속해서 괴롭히는 것은 사람들의 '말'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생각 없이 쉽게 내뱉는 말이 계속해서 상처로 남는다는 것.

김씨는 "주변 사람들한테 '유가족이랑 민주당이랑 한패 아니냐'는 소리도 들어봤고 살아났다고 글을 올리니 자랑하냐는 댓글도 달린 적이 있다"고 전했다. 특히 "놀러 나갔다가 사고 당했다"며 비난하는 목소리가 유독 상처가 된다고 했다.

김씨는 "천안함이랑 비교하는 사람도 있다. 천안함은 당연히 우리나라를 지키다 돌아가신 거니까 당연히 추모하고 기억하는 게 맞다"면서도 "그런데 그게 우리 피해가 잊혀야 되는 이유는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래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고 당신들도 이런 사고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남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말고 기억해달라'고 2차 가해자에게 말하고 싶다"고 지적했다.


또 김씨는 사회적 재난에 대한 국가의 책임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이 많이 몰릴 게 예상되는 축제라면 누군가 가서 교통 통제해야 했다"며 "현장에서 본 경찰은 단 한명뿐"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사고 이후에 제가 겪은 사건이 정치화되고 있다는 느낌"이라며 "'이게 너희 잘못이냐' '아니냐' 이런 정쟁거리로 삼지 말고 다시 참사가 나지 않을 대안을 여야가 같이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yesyj@fnnews.com 노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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