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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시선] ‘가석방 없는 종신형’ 피해자 관점서 고민해야

김성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08 18:27

수정 2023.11.08 18:27

[강남시선] ‘가석방 없는 종신형’ 피해자 관점서 고민해야
"피고인은 교화 가능성이 없습니다. 영원한 격리가 필요한데 무기징역형은 가석방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 6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정유정 사건 결심공판에서 검사는 사형을 구형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유정은 과외교사를 찾는다며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접촉해 그를 살해하고 유기해 세상에 충격을 줬다. 정유정은 우발적 범행과 심신미약 등을 주장했지만 검찰 측은 계획적 범행이라고 본다. 살해동기야 어찌 됐건 유족 입장에선 피해회복이 불가능한 사건이다.
검찰이 "가석방 가능성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끔찍한 범행임에도 이 정도 수위로는 사형까지 선고되는 일이 드물기 때문이다.

유사 사건 중 무기징역에 그친 판결이 많다. 남편 살해 후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된 고유정은 무기징역이 확정되는 데 그쳤다. '계곡살인' 이은해 사건도 같은 형량을 받았다. 이은해는 물을 무서워하는 남편을 계곡으로 데려가 다이빙을 종용하고, 남편이 죽자 사망보험금을 노렸다. '어금니아빠' 이영학 역시 범행동기와 잔혹성을 따진다면 이미 확정된 무기징역형만으로 만족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역대 잔혹범죄 중 사형선고를 받은 사례는 주로 2명 이상을 살해하는 등 그 동기와 범행 정도가 더 심각한 경우였다. 사형선고를 내려도 사형이 집행되지는 않는다. 한국은 장기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 폐지국가로 불리고 있다. 26년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사실상 사형선고 역시 무기징역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대한민국 범죄자 입장에서 사형과 무기징역의 유일한 차이는 가석방 유무밖에 남지 않았다. 무기형을 받을 경우 운이 좋으면 가석방 기회가 주어지는데, 이는 제도상 교화 가능성을 염두에 둔 시스템이다. 큰 잘못을 했어도 반성하는 태도가 보이면 다시 사회 일원으로 받아주자는 의미다. 그런데 연쇄살인을 하고도 무기징역을 받은 사례가 있다. 처제 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을 받았던 이춘재는 나중에는 화성 연쇄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밝혀졌다. 연쇄살인범임에도 공소시효가 지나 사형을 받지 않은 살인범이 되었다. 그가 받은 유일한 추가 처벌은 독방으로 옮겨진 것뿐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부산교도소에서 20년 이상 '1급 모범수'였다는 사실이다. 추가 살해혐의가 밝혀지지 않았더라면 가석방으로 출소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논의되는 제도가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다. 법무부가 지난 8월 입법예고했던 형법 개정안은 판사가 무기징역을 선고할 때 가석방이 가능한지 옵션을 명시토록 했다. 현재 입법예고기간이 끝났지만 대법원 등 여러 곳의 반대에 부딪혔다.
사형제가 폐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과적으로 종신형이라는 죄형이 추가된다는 게 대법원의 주장이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 제도가 있더라도 범죄예방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반대 여론도 무시할 수 없으니 개정안이 속히 시행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다만 논의 과정에서 교화 효과를 고려할 것인지, 피해자 보호를 고려할 것인지를 생각해본다면 결론을 좀 더 빨리 내릴 수 있지 않을까.

ksh@fnnews.com 김성환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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