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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핵잠재력이 부상하는 배경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08 18:30

수정 2023.11.08 18:30

[fn광장] 핵잠재력이 부상하는 배경
국제정치에서 '억지(抑止·deterrence)'란 적성세력이 군사적 도발과 같은 우리가 원치 않는 행동을 억눌러 못하게 하는 전략을 일컫는다. 억지는 능력과 의지의 함수라고 할 수 있다. 적성세력이 도발하려 할 때 이를 응징할 수 있는 압도적인 능력이 있어야 하고, 이러한 능력을 사용할 정치적 의지가 있어야 한다. 억지란 또한 인지의 문제이기도 하다. 적성세력이 이러한 능력과 의지를 인지하고 있어야 억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확장억제(지)'란 억지를 동맹국에서 상당 부분 위탁하는 개념이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하고 있는 확장억제가 대표적이다. 한국은 핵무기가 없다. 그래서 북한의 핵 도발을 억지하기 위해 미국의 핵억지(핵우산)에 의존하고 있다. 확장억제의 경우 확장억제 수혜국의 인식 또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데, 수혜국이 확장억제 제공국의 능력과 의지를 신뢰해야 억지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한국 국민은 미국의 능력을 의심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의지를 100% 신뢰하지는 않는다.

미국으로서는 조금 억울하고 섭섭하기도 할 것이다. 한국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확장억제를 강화하는 조처를 해왔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워싱턴 선언을 도출했고, 워싱턴 선언에 담긴 내용을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한미 핵협의그룹(NCG)도 발족, 운용하고 있다. 미국의 확장억제 수단 중 핵무기, 즉 핵억지만을 별도로 다룬 한미 협의체를 가동한다는 것은 이례적이다. 미국은 전술핵탄두를 탑재한 전략핵잠수함(SSBN)을 한반도에 자주 오래 배치하기로 했다. 상시배치는 아니지만 북한의 핵위협을 더 강화된 확장억제로 대응하겠다는 미국의 공약을 실제로 실행에 옮긴 조치다.

하지만 다수 여론조사에 의하면 워싱턴 선언 이후에도 여전히 절반 이상의 한국 국민이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확장억제 제고 노력이 미진했기 때문도 아니고, 한국인이 핵 만능론을 믿고 있기 때문도 아니다. 확장억제는 제공국이 아무리 많은 억지력을 제공해도 수혜국은 늘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는 확장억제의 태생적 한계다. 미국이 아무리 한국의 혈맹이라 하더라도 결국은 남의 나라이고, 따라서 미국이 제공하는 억지력은 우리의 자체 억지력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프랑스는 "미국이 파리를 구하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1960년 자체 핵무장을 감행했다. 더군다나 한국은 핵 선제공격을 법제화한 북한이 실존적 위협을 가하고 있지 않은가. 북한이 7차 핵실험이라도 감행하고, 내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면 자체 핵무장론이 다시 비등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한국의 지속적인 핵무장론은 한미동맹의 균열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렇다고 확장억제에만 의존한다면 한국 국민은 계속 불안할 수밖에 없다. 다수 전문가가 한국의 핵무장 대신 한국의 핵잠재력 증진을 대안으로 제안하고 있는 배경이다. '브레이크아웃 타임'은 핵무기 제조를 결심한 시점부터 '무기급 핵물질'을 확보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일컫는다. 핵잠재력이란 핵무기를 실제로 만들지는 않아 NPT를 위반하지 않지만, 브레이크아웃 타임을 최소화해 단기간에 핵무기를 제조해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한국이 핵잠재력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우라늄 농축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천연우라늄을 수입해 전량 농축을 위탁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물론 한국은 강화된 핵잠재력, 즉 우라늄 농축 권한을 평화적 목적으로 사용할 것이라고 천명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안보 상황이 악화할 때 핵잠재력을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할 것이라는 점을 부인할 필요도 없다.
한국이 핵잠재력을 갖출 경우, 잠재력이지만 '우리 것'이라는 인식이 발생할 것이기 때문에 대북 억지 강화로 귀결될 것이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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