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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기의 외교포커스] 이제 남중국해 침묵외교는 그만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09 18:19

수정 2023.11.09 18:19

중국의 국제법 위반 행위
남의 일 치부…방관자 일관
단호한 우리 목소리 내야
[최원기의 외교포커스] 이제 남중국해 침묵외교는 그만
필리핀 어민들이 대대로 자기네 앞바다로 여기고 고기를 잡던 필리핀 근해에서 최근 중국과 영유권 분쟁이 고조되고 있다. 중국 최남단 하이난에서 약 1000㎞나 떨어져 있는 남중국해 세컨드 토마스 암초가 바로 그곳이다. 국제법상 엄연히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속하지만 이제 필리핀 어선들이 함부로 접근하기 힘든 곳이 되었다. 중국 해경선과 해상 민병대 어선들이 떼를 지어 근처 해역에 상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중국해 구단선 주장에 국제법적 근거가 없다는 국제상설재판소(PCA) 결정을 중국이 무시한 지는 오래다. 이미 남중국해 핵심지역인 스프래틀리 군도의 일곱 개 암초를 매립해 군사기지를 구축한 중국은 최근 세컨드 토마스 암초에서 필리핀을 완전히 몰아내려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난 8월 초에는 필리핀 해경선을 물대포로 공격한 바 있고, 지난달 22일에는 급기야 필리핀 보급선을 가로막고 직접 충돌하기까지 했다. 과거 해경과 민병대 어선만으로 '회색지대 전략'을 구사하던 중국은 이제 노골적으로 해군과 공군 전력을 직접 동원한다. 중국 정부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자국 영해'에 들어올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엄포를 놓고 있다. 얼마 전 남중국해에 진입한 미국 함정과 군용기에 근접해서 위협비행을 하는 등 우발적인 군사충돌 가능성도 한층 커졌다.

이러한 중국의 '힘에 의한 일방적 현상변경' 행위는 필리핀 근해에서만이 아니라 남중국해 전역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남중국해는 우리에겐 에너지 수입과 수출입 물자 수송을 위한 핵심 해상교통로이다. 하지만 앞으로 남중국해를 통한 우리 에너지 수입과 수출입 물자 수송이 어려워질 수도 있다. 국제사회가 이런 중국의 현상변경 행위를 계속 용인한다면 중국 정부 허락 없이는 남중국해에서 선박들의 항행의 자유가 불가능해지는 날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는 그동안 남중국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해 왔나. 최근까지 한국은 남중국해 문제에 외교적으로 침묵하는 소위 '조용한 외교'를 해 왔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미중 갈등에 연루되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만 사실상 중국 눈치를 본 것이다. 중국의 국제법 위반행위를 우리와 상관없는 '남의 일'로 치부하고 방관자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

다행히 최근 한국의 남중국해 '침묵외교'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지난 8월 초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이 SNS를 통해 중국 해경의 물대포 공격에 대해 공식적 우려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8월 중순 개최된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공동성명은 한발 더 나아가 중국의 '위험하고 공세적 행위'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지난달 중국 해경의 충돌사건에 대해서도 우리 외교부는 더 분명한 어조로 입장 표명을 하기 시작했다. 남중국해 문제에 그동안의 침묵을 깬 것은 한국 외교의 의미 있는 중요한 진전이다.

한국이 동아시아 지역 안정과 평화에 핵심적인 남중국해 문제에 대해 침묵하면서 외교적 방기를 계속하는 것은 더 이상 곤란하다. 통상국가인 우리의 국익뿐만 아니라 국제해양법 질서 유지를 위해서도 더 이상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외교적 방관과 침묵은 사실상 중국의 행위를 용인하고 그 주장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국제법과 그에 따른 결정을 무시하는 중국의 태도가 남중국해에 국한되지 않고 이어도 문제, 한국의 방공식별구역 침범, 서해에서의 불법조업 등 한반도 주변 상황에도 점차 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엔해양법(UNCLOS) 등 국제법 원칙 준수에 대한 한국의 단호한 입장 표명이 더욱 필요한 이유다.
앞으로도 국제법과 다자주의 원칙에 기초해 남중국해 관련 외교적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제법적 원칙에 근거해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이 정석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우리의 국익과 외교적 입지를 확보하는 길이기도 하다.

최원기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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