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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적 고립 우려한 하마스, 이스라엘 혼란 틈타 선제공격[글로벌 리포트]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12 18:59

수정 2023.11.12 18:59

아랍권과 관계 정상화 추진하던
네타냐후 공격적 행보 눈엣가시
서안지구 합병 움직임도 자극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군사조직 AF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군사조직 AFP연합뉴스

지난 10월 7일(이하 현지시간) 새벽,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는 인접한 이스라엘 남부 지역을 향해 약 5000발의 로켓을 발사했다. 최소 2000명이 넘는 하마스 무장 병력이 헹글라이더와 불도저 등을 이용해 이스라엘의 봉쇄선을 뚫고 이스라엘 정착촌과 군사 시설을 공격했다. 이스라엘에서 최소 1200명이 사망하고 약 3200명이 다쳤다. 이스라엘군은 즉각 반격에 나서 1500명이 넘는 하마스 병력을 제거했지만 이미 239명의 인질들이 하마스에 의해 가자지구로 끌려갔다.

■'고립' 위기의 하마스, 벼랑 끝 도발

17만명의 현역병을 보유한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도발 직후 36만명의 예비군을 추가로 소집하면서 가자지구를 공격했다. 1987년 창설된 하마스의 전투 병력은 약 3만~4만명으로 추정된다.
외신들은 하마스가 가자지구 안팎으로 절망적인 처지에 몰려 위험한 '도박'을 감행했다고 분석했다.

가장 눈에 띄는 원인은 외교적 고립이다. 하마스는 이집트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인 '무슬림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에서 출발한 조직이다. 이집트는 하마스가 2007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를 몰아내고 가자지구를 점령하자 이스라엘과 함께 가자지구 국경을 봉쇄했다. 2013년 무슬림형제단을 축출하고 집권한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지난 10년 동안 하마스를 곱게 보지 않았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2018년 보도에서 중동의 이슬람 수니파 국가들이 시아파 맹주인 이란의 세력 확장과 튀르키예의 군사 작전에 불안감을 느낀다며 미국 및 이스라엘과 가까워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스라엘과 대립하는 팔레스타인 지원에 부담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은 2020년 미국의 중재로 '아브라함 협정'을 맺어 바레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과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수교를 추진 중이다.

수니파 맹주인 사우디의 경우 가뜩이나 하마스가 이란의 지원으로 활동하는 상황이 거북한 데다 하마스의 도발로 수교 협상이 중단되자 더욱 심기가 불편해졌다. 사우디는 지난달 24일 카타르와 UAE 등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들을 소집해 하마스 비자금 차단에 합의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은 지난달 16일 평론에서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반격으로 인명 피해가 커지고 아랍 세계에서 이스라엘 비난 정서가 증폭되기를 기대한다고 진단했다. 동시에 비난 여론 때문에 사우디가 이스라엘과 수교를 포기하는 상황을 바란다고 전했다.

■내부 불만 증폭...이란 눈치도 봐야

하마스는 누적되는 내부 불만 때문에라도 행동에 나서야 했다. 가자지구는 이집트 북쪽 국경에서 지중해 연안을 따라 좁고 길게 설정된 구역으로 한국의 세종시와 비슷한 면적(365㎢)이다. 약 230만명의 주민들은 국제사회의 지원 및 이스라엘에서 노동 허가를 받은 가족들의 외화벌이로 연명하고 있다.

무장집단으로 시작한 하마스는 2007년 PA와 결별 이후 외부 지원이 급감하자 가자지구의 경제난에 대처하지 못했고, 지난해 가자지구 실업률은 45%에 달했다. 하마스의 정치국 대표들은 가자지구가 아닌 카타르의 호화 주택에 살고 있고 주민들 사이에서는 하마스의 부패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마스 내부에서도 이스라엘과 정치적 협상을 통한 '2국가 건설'을 추진하는 세력과 무장투쟁을 요구하는 강경파의 반목이 거세졌다.

강경파들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정부가 본격적으로 우파 정책을 밀어붙이면서 힘을 얻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2021년 동예루살렘에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쫓아내고 이슬람 성지인 알 아크사 사원에 경찰을 보내 신도들을 강제 해산했다. 이에 하마스는 2021년 5월에 '11일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하마스의 레바논 지부를 대표하는 오사마 함단은 8일 미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2021년 충돌이 분기점이었다며, 이스라엘이 더 이상 팔레스타인의 대의를 신경 쓰지 않는다고 확신했다고 밝혔다.

이후 이스라엘은 올해 초부터 네타냐후가 사법 개혁을 강행하면서 극심한 내부 혼란에 빠졌다. 외신들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이 혼란한 시기를 노려 도발에 나섰다고 지적했다.

또한 범아랍매체인 알자지라방송은 지난달 11일 보도에서 하마스가 이란 때문에 움직였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마스는 비록 이란의 지원을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수니파 단체다. 하마스는 지난 2011년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이란이 지원하는 시아파 정부군 대신 수니파 반군의 편을 들어 이란과 사이가 틀어졌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겨우 관계 회복을 시작했으며 하마스는 이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이란과 적대 관계인 이스라엘을 상대로 행동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

■계속 관심 끌며 범아랍 봉기 기대

NYT는 8일 하마스 관계자들을 인용해 하마스 강경파가 이번 도발로 팔레스타인 독립을 위한 대의를 되살리고 무장 조직으로서 하마스의 정체성을 확립하려 했다고 분석했다.

하마스 최고 지도부의 일원인 칼릴 알하이야는 카타르에서 NYT와 만나 "단순 충돌이 아니라 전체 방정식을 바꿀 필요가 있었다. 방정식을 바꾸려면 위대한 행동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에 대한 (이스라엘의) 반응이 크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면서 "우리는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의 대의가 죽지 않았다고 말해야 했다"고 강조했다.

알하이야는 "우리는 세계를 깊은 잠에서 깨웠고 팔레스타인 문제가 계속 논의돼야 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마스의 목표는 가자지구를 통치하며 물과 전기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다. 이번 전투는 연료나 노동자를 얻고 가자지구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마스의 언론 고문인 타헤르 엘누누 역시 NYT를 통해 "이스라엘과의 전쟁상태가 국경 전체에서 영구적으로 이어지고 아랍 세계가 우리와 함께하기를 바란다" 밝혔다.

2명의 아랍 정부 관계자는 NYT에 지난달 7일 공격 당시 하마스의 최우선 목표가 최대한 많은 인질을 납치하는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지난 2006년 갈리드 샬리트 상병이 하마스에 납치되자 그를 구출하기 위해 2011년 1000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죄수들을 석방했다. 현재 하마스 무장 조직의 최고 실권자인 야히아 신와르도 당시 풀려났다. 하마스의 전 수장인 칼레드 메샤알은 지난달 16일 사우디 알아라비야TV를 통해 가자지구 인질과 이스라엘 감옥에 있는 팔레스타인 죄수 약 6000명을 교환하자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언론인이자 이스라엘 하이파 대학의 아랍어 교수인 야론 프리드먼은 지난달 24일 이스라엘 경제지 글로브에 게재한 칼럼에서 하마스가 1차 목표인 인질 납치에는 성공했지만 2차 목표에는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계획의 2번째 단계는 모든 팔레스타인 전선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연합 공격을 통해 (1973년) 욤 키푸르 전쟁과 같은 효과를 내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프리드먼은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아랍인과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팔레스타인인 등 팔레스타인 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이 전투에 참여하면 욤 키푸르 전쟁을 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하마스의 구상은 헤즈볼라와 이란이 이스라엘과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무산됐다. 헤즈볼라와 이란 관계자들은 지난달 서방 언론들을 통해 레바논과 이란의 경제 사정이 좋지 않고 참전 여론이 크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괜히 전선을 확대할 경우 미국이 참전할 구실을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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