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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사설]일부 직종이라도 근로시간 유연제 관철하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13 18:39

수정 2023.11.13 18:39

정부, 근로시간 개편 추진방향 발표
69시간 무리지만 기업애로 고려를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오른쪽)이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및 향후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스1화상
이성희 고용노동부 차관(오른쪽)이 13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로시간 관련 대국민 설문조사 결과 및 향후 정책 추진방향을 발표하고 있다.사진=뉴스1화상
정부가 '주 69시간 노동' 논란을 빚은 근로시간 개편안 원안을 사실상 포기했다. 이성희 노동부 차관은 13일 "국민 60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면조사 결과를 전폭 수용해 주 52시간제를 유지하면서 일부 업종·직종에 한해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근로시간 유연화는 일부 직종에서 주 52시간 근무제에서는 일감을 기한 내에 마무리할 수 없다는 애로를 해소하자는 뜻에서 추진됐다. 현재는 노사 합의에 의해 1주 40시간의 범위 내에서 특정 주 52시간, 특정 일 12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이를 '월·분기·반기·연' 등으로 유연화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가, 주 최대 근로시간이 69시간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반발이 거세지자 원안을 사실상 백지화하고 재검토에 들어갔었다.

당시 정부의 설명대로라면 일할 때 더 많이 일하고 쉴 때 더 많이 쉬는 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더 많이 일한다 해도 사측이 쉬는 날을 보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또한 윤석열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주 최대 69시간 근무는 무리라는 지적이 많았다.

설문조사에서 근로자 41.4%, 사업주 38.2%, 국민 46.4%가 연장근로 단위를 확대하는 데 동의했다고 한다. 과반수의 동의는 아니다. 일부 직종에서 애로를 겪고 있는 것은 이해를 하지만 유연화에 대한 절대적이고 전반적인 동의는 하지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직종에서만 노동시간을 유연화하는 쪽으로 정부가 방향을 잡은 것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일을 많이 하는 나라다. 근면성과 결합된 장시간 노동이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선진국으로 올라서는 데 원동력이 됐지만, 잘살게 된 뒤에도 여전히 다른 나라들보다 일을 많이 하는 국가로 남아 있다. 그런데도 아직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소연하는 사업장이 많다.

근로시간을 유연화하면 당연히 장시간 근로가 늘어나 건강권이 위협받는다. 아무리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는 것이 좋다고 해도 집중 근로는 몸에 무리를 준다. 더욱이 일한 만큼 휴식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문제가 더 커진다.

그러나 일감을 준 쪽에서 원하는 시간 안에 제품을 만들어줘야 하는 등의 특수한 상황이 잦은 일부 제조업의 애로를 그대로 둘 수는 없다. 따라서 설문조사 결과와 아직도 세계 상위권인 한국인의 근로시간을 고려할 때 근로시간 유연화의 전면 개편은 어렵다. 다만 특정 직종을 법으로 지정해서 집중 근로를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정부가 개편 방안을 발표했지만 내년 4월 총선이 예정돼 있어 그전에 노동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새 개편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어 노동시간을 장기적으로는 더 줄여나가야 한다. 그러면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동시간 유연화에 대한 결론을 내야 한다.

어떤 일이든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다. 주 52시간 근무로도 많다는 근로시간을 줄여가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그에 따른 생산성 하락과 소득 감소가 문제다.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근로시간 개편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국민과 근로자의 뜻이다.
여론을 잘 반영해 정교한 결론을 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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