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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포럼] 규제혁신 챔피언이 필요한 대한민국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3.11.16 18:08

수정 2023.11.17 12:53

[서초포럼] 규제혁신 챔피언이 필요한 대한민국
'일론 머스크의 규제 전쟁(Elon Musk's War on Regulators)'. 몇 년 전 월스트리트저널 헤드라인이다.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 오리진, 리처드 브랜슨의 버진 갤럭틱 등 우주기업들이 민간 주도로 유인우주선 상용화에 나서자 미국 정부는 기존 규제를 대폭 없애고 우주 관련 제도를 신속히 정비했다. 이 과정에서 우주에서의 채광방식, 우주택시, 주유 등에 대한 새로운 제도가 만들어졌고 전 세계 우주 스타트업을 자석처럼 미국으로 빨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도개선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8월 대통령 주재 규제혁신전략회의에서는 1400여건의 규제혁신 성과가 발표되었다. 하루 3건 넘는 규제가 개선된 셈이다.
정부는 여기에 더해 환경규제, 입지규제, 고용규제 등 기업의 투자나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되는 규제를 킬러규제로 명명하고, 다시금 규제혁신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업계가 주목할 만한 성과도 있었다. 광양 산업단지에 첨단산업 입주를 허용해 4조4000억원 규모 투자에 물꼬를 터주고, 규제애로를 해소해 3100억원 규모의 폐플라스틱 열분해공장이 착공될 수 있었다. 또 첨단산업단지 생산시설 용적률의 1.4배 상향 조정, 자율주행로봇의 보도통행 허용 등 미래산업 육성에 필요한 의미 있는 규제개선도 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규제혁신을 체감했다는 기업을 찾기 어렵다. 규제개선 대부분이 기업 민원 해소나 기존 규제를 손질하는 수준에 그치다 보니 실질적 개선효과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파급력이 큰 규제혁신은 법률 개정이나 법령 폐지로 가능한데, 최근 국회에서 규제혁신을 위해 법이 고쳐졌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정부가 규제혁신 방안을 발표하고도 관련 법률이 국회에 계류된 과제만 145건에 이른다. 이에 정부는 시행령, 시행규칙 등 하위법령 개정에 의존해 규제를 개선하지만 근본적인 문제점은 고쳐지지 않고 있다.

어렵게 추진한 규제혁신을 기업이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이야말로 어떻게 체감도를 높일지 고민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규제개선 노력은 건수 위주, 쉬운 과제 개선에 치중해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 역대 정부의 방식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제부터라도 파급력 있는 규제혁신 사례를 하나씩 만들어 가야 한다. 예를 들면 규제혁신 현안으로 거론되는 킬러규제 혁파, 파격적 세제지원과 규제특례를 위한 기회발전특구 조성, 오랜 기간 논란 속에 있는 대형마트 규제개선, 비대면진료 허용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가 만족하는 규제혁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규제혁신이 성공하려면 혜택을 받는 기업의 적극적인 지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예컨대 특정 지역 규제를 풀 경우 지역주민, 지자체, 환경단체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낼 텐데, 수혜기업이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압도할 수 있도록 규제혁신의 주도자(Champion)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머스크의 기업가정신이 미국 우주산업 규제혁신의 실마리가 된 것처럼 말이다.

글로벌 표준에 맞는 법령 정비도 중요하다. 새로운 규제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개별 규제를 하나하나 뜯어고치는 것만으로는 기업이 체감하기 어렵다. 작동하지 않거나 중복된 규제를 찾아내 과감히 폐지하거나 통폐합해야 한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 외국보다 과도한 묻지마 규제들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외국에선 우리 규제여건을 여전히 후진국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23년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평가한 국가경쟁력 순위 28위이지만, 기업여건은 53위에 불과하다.
기업의 체감도 제고가 정책의 제1 기준이 되는 윤석열 정부표 규제혁신을 기대해 본다.

우태희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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